계백
백제 장군, 군인, 역사적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6:32
- 백제 말기 군인 계백은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맞서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최후의 항전을 펼쳤습니다. - 가족의 목숨을 희생하며 충성을 다했으나, 신라군 5만과의 격전 끝에 전사했습니다. -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의 충신으로 기억되며, 후대에도 그 충절은 높이 평가되어 여러 사당에서 추모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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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황산벌 전투: 백제군의 맹렬한 항전]
계백은 월나라 구천이 5천의 군사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한 일을 언급하며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세 곳에 나뉘어 진을 친 백제군은 신라군과의 네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초반 우세를 점했습니다.
황산벌에서 계백은 월나라 왕 구천이 5천의 군사만으로 오나라의 70만 군사를 격파한 일을 언급하며, 병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 싸울 것을 독려했습니다. 이때 세 곳에 나뉘어 진을 친 백제군은 신라군과 네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맹렬히 항전했습니다.
[나·당 연합군의 백제 침공과 계백의 출진]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수군과 신라 김유신이 지휘하는 5만 육군이 백제를 침공했습니다.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660년 당나라 신구도대총관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수군과 신라의 상장군 김유신이 지휘하는 5만 육군이 수륙 협공으로 백제를 침공했습니다. 이때 계백은 충상의 지휘 하에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나아가 신라군을 만났습니다.
[관창의 죽음과 신라군의 사기 진작]
신라군 대장군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의 아들 반굴과 김품일의 아들 관창이 차례로 맹렬히 돌격하다 전사하거나 사로잡혔습니다. 계백은 어린 관창의 용맹함에 감탄하여 돌려보냈으나, 그가 다시 돌격해오자 결국 처형했습니다.
신라군은 대장군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의 아들 반굴이 1인 돌격 전술을 구사하며 전사했고, 이어서 좌장군 김품일의 아들 관창도 선봉에 나서 돌격하다 사로잡혔습니다. 계백은 관창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품과 용맹에 감탄하여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관창은 다시 백제 진영으로 돌격해왔고, 결국 계백은 관창을 잡아 처형했습니다. 관창의 죽음은 신라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족을 희생하며 결전을 다짐하다]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계백은 "작은 나라의 병사로 당의 대군과 신라를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쾌히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며 직접 자신의 처자식을 죽였습니다.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계백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처자식이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될지도 모르는 치욕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칼로 직접 처자식을 죽이는 비장한 결단을 내리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황산벌 전투의 패배와 계백의 전사]
관창의 죽음으로 용기를 얻은 신라군의 맹렬한 공세에 백제군은 결국 패배했습니다. 충상, 상영 등 일부 항복자를 제외한 4,980명의 백제군이 전사했으며, 계백 역시 장렬히 싸우다 황산벌에서 전사했습니다.
관창의 죽음으로 크게 고무된 신라군은 백제군과 더욱 맹렬히 싸웠습니다.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백제군은 충상, 상영 등 신라에 항복한 20인을 제외한 4,980명의 결사대가 모두 사망하며 패배했습니다. 계백 역시 이 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황산벌에서 전사하며 백제 최후의 불꽃을 태웠습니다. 이로써 백제의 운명은 기울게 되었습니다.
1575
[계백 추모 사당, 의열사 건립]
선조 8년에 부여 현감 홍가신이 계백을 비롯한 백제 충신들과 고려 충신 이존오를 제사 지내기 위해 용정리 망월산에 의열사를 건립했습니다. 이는 계백을 추모하는 최초의 사당 중 하나입니다.
선조 8년(1575년) 당시의 부여현감 홍가신이 용정리 망월산에 의열사를 처음 지었습니다. 이곳은 백제의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제사 지낸 것을 시초로 합니다.
1680
[계백 추모 서원, 충곡서원지 건립]
숙종 6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계백과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인 충곡서원지가 건립되었습니다.
숙종 6년(1680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계백과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충곡서원지가 세워졌습니다.
1957
[부소산성 내 삼충사 건립]
부소산성 내에 성충, 흥수, 계백 삼충을 기리는 삼충사가 처음 건립되었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1981년에 다시 지어진 것입니다.
부소산성 내에 1957년에 처음 삼충사가 지어졌습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백제문화제 때 삼충제를 지내며, 현재의 모습은 1981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안에는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