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사회운동가, 정치인, 국회의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5:10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89년 정부 허가 없이 방북하여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한국전쟁 후 최초로 휴전선을 걸어 넘어 귀환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 후 사면 복권되었으며 사회운동가로 활동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탈북자 폭언 및 북한 선전 매체 리트윗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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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임수경은 1967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89
[전대협 대표로 방북 결정]
대학교 4학년 재학 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열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하기로 선발되었고, 전대협 측은 비밀리에 파견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이던 198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선발되었고, 전대협 측은 비밀리에 파견 계획을 세웠습니다. 임수경은 서울을 떠나 출국하였는데, 출국 당시 행선지를 일본으로, 출국 목적을 관광으로 밝혔습니다. 그러다가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동베를린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한국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89년 6월 30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휴전선 귀환 및 구속]
문규현 신부와 함께 휴전선을 걸어서 대한민국으로 귀환하여 안기부에 구속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공개적으로 휴전선을 걸어서 넘은 최초의 민간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평양 장충성당 축성 10주년 기념미사 봉헌'의 명목으로 공식 파견한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한국으로 귀환하였고, 동시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 군사 분계선이 가로막힌 이후 공개적으로 휴전선을 걸어서 넘은 최초의 민간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90
[국가보안법 위반 징역 선고]
국가보안법상의 탈출과 잠입, 회합, 고무 찬양, 금품 수수 등 13가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에서 지령수수 문제와 관련하여 평양축전 참가가 반동적 통일논의를 배격하고 대중을 의식화시키는 과정으로 활용함으로써 반미투쟁과 대정부 투쟁을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피고인이 검찰조사 과정에서 시인한 사실에 비추어 판문점을 통해 들어온 것도 북한의 통일정책에 따른 반미 반정부투쟁을 계속하라는 지령에 따른 것이라면서 체포 중에 북한당국자 학생들을 만나 격려를 받고 조선학생위원회 간부들로부터 공동선언문 실천을 위해 투쟁하라는 등의 말을 들은 사실이 지령수수를 명백히 입증하는 것이고 전대협 등 남한 학생운동 동향 등을 말한 사실이 군사상 이익공여죄를 인정한 것은 당연하다며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을 수여하였습니다. 이는 북한 당국이 비사회주의적 행동으로 간주하던 반팔 티셔츠를 허용하게 할 만큼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그녀의 방북 행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열린 제43회 대학 졸업식에서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임수경에게 졸업증을 수여했습니다. 박관오 총장이 수여하고 외국 졸업증은 명예졸업증이 아닌 정규졸업증이었습니다.
1992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3년 5개월간 교도소 옥살이 후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1999
1992년 12월, 가석방으로 풀려 난 이후, 1999년 김대중정권때 복권되었습니다.
사면 복권된 같은 해 8월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뒤늦게 졸업했고,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미국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공부했습니다.
2001
[정부 허가 하 민족통일대축전 참석]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했습니다.
2003
《참 좋다! 통일 세상》 (황소걸음, 박재동 그림)을 출간했습니다.
2005
[외아들 익사 및 악성 댓글 논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초등학생 외아들이 현지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보도 후 악성 댓글이 달리자 고소했으며, 댓글 작성자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5년에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초등학생 외아들이 현지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임수경의 방북 전력과 관련하여 악성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에 임수경은 댓글을 단 네티즌을 고소하였고, 이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11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 개최]
함세웅, 고은, 윤민석 등과 함께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함세웅, 고은, 윤민석 등과 함께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2012
[제19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국립묘지 안장 반대 논평을 요구하며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가 되어 제19대 국회의원이 됩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탈북자인)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했을 당시 나는 민주당에 쫓아가 대표 면담을 제의했다. 국립묘지 안장 반대 논평을 왜 안 내느냐고, 정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었다." 라며 탈북자인 황장엽씨가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을 보고 이에 반대하기 위해 직접 정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발언했습니다.
[탈북 대학생 폭언 논란]
한 술좌석에서 탈북자 백요셉 씨와 하태경 의원 등을 '변절자'라고 비하하는 폭언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했지만, 이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당당했습니다.
한 술좌석에서 탈북자 백요셉(28·한국외대)씨와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등을 '변절자'라고 비하한 것이 논란이 일었습니다. 임수경은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 청년이 보좌관에게 '북한에서 총살감'이라고 한 발언에 감정이 격해져 나온 발언이었다"고 해명하고, "변절자라는 표현 역시 학생운동, 통일운동 한 하태경 의원에 대한 표현이었을 뿐 탈북자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불찰이며, 부적절한 발언으로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드린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결국 임수경을 출당시킬 수밖에 없게 되었고 임수경은 출당당했습니다.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논란]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글과 북한의 체제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에 올라온 남한 정부 비난글을 리트윗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성격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주로 리트윗 하고 "일부러 국가보안법을 위반한다"는 트위터 글을 덧붙였습니다. 북한의 체제 선전사이트 '우리민족'에 올라온 남한 정부 비난글을 리트윗하면서 북한에 대신 사과 드린다고 썼습니다. 트위터상에서는 이런 임 의원의 활동을 "북한 대변인이냐" "섬뜩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임수경은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북한 체제를 풍자·조롱할 목적으로 리트위트했다는 이유로 박정근이 구속(국가보안법 위반)된 데 대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일종의 불복종운동 성격의 퍼포먼스에 동참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경비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임수경의원등 52명)
2013
[김일성 호칭 관련 명예훼손 소송 패소]
1989년 방북 당시 김일성을 '아버지'로 불렀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습니다. 재판부는 임수경 의원 측의 입증 부족과 언론 보도의 상당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임수경은 1989년 방북 때 김일성을 '아버지'로 불렀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등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는 임수경이 새누리당과 전광삼 당시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 조선일보 등 5명을 상대로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방북 당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임 의원 측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탈북자단체들의 답변에 의하면 새누리당, 조선일보 등은 이 발언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2016
제19대 국회의원 임기가 만료되었습니다.
2021
부친 임판호 씨가 사망했습니다.
2024
2024년 8월 18일에 열린 촛불행동 집회에 참석한 임수경 씨의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