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덴 전쟁
전쟁, 국제 분쟁, 군사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3:30
오가덴 전쟁은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을 둘러싼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간의 국제 분쟁입니다. 초기에는 소말리아가 우세했으나 소련의 정책 변화로 에티오피아가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으며 전세가 역전됩니다. 쿠바군까지 가세한 에티오피아는 오가덴을 탈환하고 소말리아군을 완전히 축출합니다. 이 전쟁은 소말리아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혔으며, 시아드 바레 정권의 몰락과 내전 발발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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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들의 압력과 소말리아에 대한 실망으로 영국은 1897년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맺은 조약에 의거하여 하우드 지역과 오가덴 지역을 에티오피아에 반환했습니다. 이는 에티오피아 황제 메넬리크 2세와 에티오피아의 영토 경계선을 합의했던 조약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1950
[유엔, 이탈리아령 소말릴랜드 신탁 통치 허가]
파리 평화 조약의 결과로 유엔이 이탈리아령 소말릴랜드에 대한 신탁 통치를 허가했습니다.
1950년 파리 평화 조약의 결과로, 유엔은 이탈리아령 소말릴랜드에 대한 신탁 통치를 허가했습니다. 당시 소말리아 청년 동맹(SYL), HDMS, 소말리아 전국 연맹(SNL) 등 초기의 소말리아 정치 단체들은 면밀한 감독하에 소말리아를 10년 안에 독립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1960
영국령 소말릴랜드는 1960년 6월 26일에 소말리아 주로 독립했습니다. 이는 5일 뒤 이탈리아령 소말릴랜드의 독립에 앞선 조치였습니다.
1961
1961년 7월 1일에 영국령 소말릴랜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랜드가 통합하여 소말리아 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압둘라히 이사를 비롯한 신탁 통치와 보호국 정부의 구성원들이 소말리아의 정부를 구성했으며, 하지 바시르 이스마일 유수프가 국회의장, 아덴 압둘라 오스만 다르가 대통령, 압디라시드 알리 셰르마르케가 총리를 맡았습니다.
1969
[셰르마르케 대통령 암살]
소말리아의 압디라시드 알리 셰르마르케 대통령이 라스아노드를 방문하던 중 경호원에게 암살당했습니다.
1969년 10월 15일, 소말리아의 당시 대통령이었던 압디라시드 알리 셰르마르케가 라스아노드를 방문하였다가 자신의 경호원 중 한 명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의 암살은 다음 날 군사 쿠데타로 인해 잊혀져 갔습니다.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의 군사 쿠데타]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무혈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최고혁명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셰르마르케 대통령 암살 다음 날인 1969년 10월 16일,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으며 권력을 장악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군대를 지휘하던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주도했으며, 최고혁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명을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으로 바꾸고 의회와 대법원을 해산시켰으며 헌법마저 정지시켰습니다.
1977
[오가덴 전쟁 발발, 소말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소말리아 국군이 에티오피아의 오가덴을 침공하며 오가덴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소말리아군은 병력 7만여 명, 전투기 40대, 전차 250대 등을 동원하여 대규모 공세를 펼쳤습니다.
1977년 7월 12일, 소말리아 국방부 문서에 따르면 소말리아 국군이 에티오피아의 오가덴을 침공했습니다. 이 침공은 소말리아 국군 거의 전체가 나선 대규모 작전으로, 병력은 총 7만여 명, 전투기 40대, 전차 250대, APC 350대, 포병 병력 6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소련, 소말리아에 대한 지원 중단 및 에티오피아 지원]
소련이 전쟁 양측을 모두 보급하던 상황에서 중재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소말리아 지원을 중단하고 에티오피아를 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1977년 8월, 구소련은 전쟁의 양쪽을 모두 자신들이 보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쟁의 휴전을 통해 두 국가를 중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구소련의 중재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구소련은 소말리아를 버리고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대신 에티오피아에 대한 무기 수송을 늘렸으며, 약 1만 5천여 명의 쿠바 전투부대와 소련의 군사 지원 및 군사적 자문 위원들이 에티오피아로 들어왔습니다.
[소말리아군, 디레 다와 외곽 진격]
소말리아 군대가 에티오피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디레 다와의 외곽 지역까지 진격했습니다. 이곳은 에티오피아 제2 공군 기지와 홍해로 향하는 철도가 관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1977년 8월 17일까지 소말리아 군대는 에티오피아의 전략적 도시인 디레 다와의 외곽 지역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지역은 에티오피아의 제2의 공군 기지와 오가덴 교차로는 물론 홍해로 향할 수 있는 에티오피아의 철도가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령될 경우 에티오피아는 농작물 수출이나 전쟁 물자 수급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소말리아군, 지지가 전투에서 승리]
SNA-WSLF군이 지지가를 겨냥한 두 번째 공격에서 승리하며 에티오피아군은 하라르와 지지가 중간 지점의 마르다 고개로 철수했습니다.
1977년 9월 중순, SNA-WSLF가 승리했던 가장 큰 전투는 지지가를 겨냥한 두 번째 공격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전투에서 에티오피아 군은 철수를 하고 말았고, 현지 에티오피아 방어군도 소말리아 군을 물리치는 데 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에티오피아군은 하라르와 지지가의 중간 지점에 고개라는 전략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는 마르다 고개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라르 전투 발발, 소말리아군의 고전]
소말리아군은 하라르 전투에서 4만 명의 에티오피아군과 1만 6천여 명의 쿠바군, 소련 고문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소말리아군은 도시 외곽까지 진격했으나, 연료 소모, 공습, 장마 등의 악조건으로 인해 지쳐 철수했습니다.
1977년 10월부터 1978년 1월까지 SNA-WSLA군은 하라르 전투에서 4만 명의 에티오피아군은 소련에게서 제공받은 대포와 갑옷들로 무장하고 1500명의 소련 고문들과 약 1만 6천여 명의 쿠바 군인들을 상대로 잔인한 전투에 가담했습니다. 11월까지 소말리아 군은 도시의 외곽에 도착했지만, 연료 소모, 에티오피아군의 공습, 장마로 인한 도로 사정 악화 등 많은 악조건에 지쳐 에티오피아 군의 반격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8
[에티오피아-쿠바 연합군의 지지가 재탈환]
에티오피아군과 쿠바군이 합동 공격을 개시, '집게발 작전'으로 지지가를 양방향에서 공격하여 단 이틀 만에 재탈환했습니다. 이로 인해 소말리아군의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소말리아군이 예상했던 에티오피아와 쿠바의 합동 공격은 곧이어 일어난 2차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에티오피아군과 쿠바군의 사령탑이 마르다 고개를 방어하고 있는 SNA-WSLF군을 우회하여 지지가와 소말리아의 국경 지대 사이의 고지대를 향해 북동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밀 Mi-6 헬기는 적진 뒤의 쿠바 BMD-1과 ASU-57 장갑차를 공수했습니다. 공격군은 '집게발' 작전으로 양방향에서 공격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수비군 3000명을 사살한 후 단 이틀 만에 지지가를 재탈환했습니다.
[오가덴 전쟁 종전, 에티오피아의 승리]
마지막 소말리아군 부대가 에티오피아를 떠나면서 오가덴 전쟁이 종전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지가가에서의 패배로 소말리아군의 방어선이 무너져갔고, 그후 몇 주 만에 소말리아의 주요 도시들이 에티오피아군과 연합군에 의해 속속 점령되어 갔습니다. 힘없이 무너진 소말리아군을 본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는 SNA-WSLF군에게 소말리아로 철수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소말리아군 부대가 1978년 3월 15일에 에티오피아를 떠나면서 이 전쟁은 종전을 맺고 에티오피아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1979
[소말리아 최초 반정부 단체 결성]
오가덴 전쟁의 패배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며 소말리아 최초의 반정부 단체가 육군 장교들에 의해 결성되었습니다.
오가덴 전쟁의 패배는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에 대한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상황은 소말리아 최초의 반정부 단체가 1979년 소말리아 육군 장교들에 의해 결성되는 사태까지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1988
[에티오피아-소말리아 국경 무력 충돌 및 합의]
오가덴 전쟁 종전 이후에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국경 지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지만, 양국이 군대 철수에 합의하며 분쟁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오가덴 전쟁이 종전된 이후에도 1988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근처의 국경 지대에서 두 군대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양국이 국경 지대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하면서 더 이상 양국 간의 무력 충돌이나 분쟁은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