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전쟁
종교 전쟁, 프랑스 역사, 내전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2:33
위그노 전쟁은 1562년부터 1598년까지 프랑스에서 벌어진 가톨릭과 개신교(위그노) 간의 종교 전쟁입니다. 바시 학살로 촉발되어 앙리 4세의 즉위와 낭트 칙령 반포로 종결되었습니다. 종교적 대립 외에 신흥 부르주아와 구체제 간의 사회·경제적 갈등도 내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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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5
[프랑스 개신교, 츠빙글리 신학 따름]
프랑스 개신교도들이 마르틴 루터의 루터주의에서 울리히 츠빙글리의 신학으로 전환하며 개신교 사상이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는 위그노 전쟁 발발의 중요한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프랑스에 처음 소개된 마르틴 루터의 루터주의 형태의 개신교는 1535년 1월부터 울리히 츠빙글리의 신학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프랑스 개신교도들이 루터의 주장보다 더 근본적인 개혁을 희망했음을 보여주며, 이후 칼뱅주의 확산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562
[바시 학살 발생]
프랑스 가톨릭 세력이 개신교도(위그노)들에게 학살을 자행하여 위그노 전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는 프랑스 내 종교 갈등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1562년 3월 1일, 프랑스 가톨릭 세력이 개신교도(위그노)들을 학살하는 바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종교 전쟁인 위그노 전쟁의 직접적인 시작점이 되었으며, 프랑스 사회에 깊은 종교적 분열과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1592
[앙리 4세의 가톨릭 개종]
위그노의 수장이었던 앙리 4세가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이는 종교적 화해를 도모하고 30년 넘게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위그노의 수장이었던 앙리 4세는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한 후, 1592년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오랜 종교 전쟁으로 분열된 프랑스 사회의 화해와 안정을 모색했습니다. 이 개종은 낭트 칙령 반포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598
[낭트 칙령 반포로 전쟁 종결]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반포하며 위그노(개신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했고, 36년간 지속된 위그노 전쟁은 마침내 종결되었습니다. 이 칙령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타협을 이끌어냈습니다.
앙리 4세는 1598년 4월, 개신교도(위그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낭트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이로써 1562년부터 시작된 36년간의 위그노 전쟁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고, 프랑스 내 가톨릭-개신교 간의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