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엔슈타우펜가
왕조, 독일 제후 가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가문, 시칠리아 왕가, 슈바벤 공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1:56
호엔슈타우펜가는 독일의 유서 깊은 제후 가문입니다. 1138년부터 1254년까지 독일 왕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배출하며 유럽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194년부터는 시칠리아 왕도 겸임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슈바벤 공작위를 세습하며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가문의 이름은 슈바벤에 위치한 성 '슈타우펜'에서 유래했습니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호엔슈타우펜가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1079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1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05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이는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강력한 제후 가문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105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4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슈바벤 공국의 안정을 유지하고 가문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138
[독일 왕 콘라트 3세 즉위]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트 3세가 독일 왕위에 오르며, 이 가문이 독일의 주요 제후 가문으로서 왕권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트 3세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152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이는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독일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147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3세(이후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52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곧 독일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며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1152
[독일 왕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즉위]
콘라트 3세의 뒤를 이어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독일 왕위에 오르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권력을 확고히 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190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독일과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4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6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슈바벤 지역의 지배력을 유지했습니다.
1155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 즉위]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등극하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위상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독일 왕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제국의 권위를 재건하려 노력했으며,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습니다.
1167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5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70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가문의 영토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170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6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91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슈바벤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1190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하인리히 6세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19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제국의 권위를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1191
독일 왕 하인리히 6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교황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이탈리아 정책에 집중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트 2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196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슈바벤 지역의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1194
[시칠리아 왕 엔리코 1세 즉위]
하인리히 6세가 시칠리아 왕 엔리코 1세로 즉위하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시칠리아 왕위까지 차지하여 그 세력을 남부 이탈리아까지 확장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시칠리아의 왕 엔리코 1세로 즉위하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시칠리아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196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필립이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208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이후 독일 왕으로도 선출됩니다.
1197
독일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시칠리아의 왕을 겸했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하인리히 6세가 1197년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제국에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1198
[시칠리아 왕 페데리코 2세 즉위]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 왕위에 오르며,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여 1250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시칠리아를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슈바벤 공작 필립이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208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점철되었습니다.
1208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독일 왕 필립이 1208년에 사망하며 그의 통치가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죽음은 독일 왕위 계승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250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곧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도 등극하게 됩니다.
1212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인 하인리히 7세가 시칠리아 공동왕으로 즉위하여 121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이는 호엔슈타우펜 가문 내에서 권력 계승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7세(프리드리히 2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216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문의 주요 직책을 맡았습니다.
1216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하인리히(이후 독일의 하인리히 7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235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슈바벤을 다스렸습니다.
1217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하인리히 7세가 시칠리아 공동왕으로서의 통치를 1217년에 마쳤습니다. 이후 그는 독일 정치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1220
[프리드리히 2세 황제 즉위]
프리드리히 2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등극하며, 교황과 대립하며 '세상의 경이'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통치를 펼쳤습니다.
독일 왕 프리드리히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그의 통치는 교황과의 복잡한 관계, 문화적 업적,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화로 특징 지어졌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하인리히 7세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235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의 부재 시 독일을 통치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1235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독일 왕 하인리히 7세가 1235년에 통치를 마쳤습니다. 그의 통치 말년에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트 3세(콘라트 4세)가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25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이후 독일 왕으로도 즉위하게 됩니다.
1237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트 4세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하여 125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의 뒤를 이어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1250
[프리드리히 2세 서거]
독일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하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절정기가 끝나기 시작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가장 강력한 황제 중 한 명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가 1250년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은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세력이 약화되고 중세 제국의 분열이 가속화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트 4세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여 125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시칠리아를 다스렸습니다.
1254
[독일 왕 콘라트 4세 서거 및 호엔슈타우펜 통치 종료]
콘라트 4세가 사망하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독일 왕 통치가 막을 내리고 중세 제국은 대공위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콘라트 4세가 사망하면서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1138년부터 이어오던 독일 왕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세 독일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후 '대공위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콘라딘이 슈바벤 공작으로 즉위하여 1268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가문의 마지막 적법한 영주로서 슈바벤을 다스렸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마지막 적법한 계승자인 콘라딘이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여 1258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258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서자 만프레디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여 1266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가문의 쇠퇴기 속에서 시칠리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1266
시칠리아의 왕 만프레디가 1266년에 사망하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시칠리아 통치도 종언을 고했습니다. 이는 가문의 몰락을 더욱 재촉했습니다.
1268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종언]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마지막 적법한 상속자인 콘라딘이 사망하며, 12세기부터 유럽을 지배했던 위대한 왕조의 역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마지막 적법한 상속자인 콘라딘이 1268년에 사망하면서, 12세기부터 유럽을 지배했던 위대한 왕조의 역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죽음은 중세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치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1943
나치 독일 시대, 무장 친위대는 역사적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을 기리기 위해 펜저 '호엔슈타우펜' 기갑사단을 창설했습니다. 이 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주요 전선에서 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