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루아가
왕가, 왕조, 프랑스, 유럽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1:53
발루아가 왕조는 프랑스의 카페 왕조 방계 가문으로, 1328년부터 1589년까지 프랑스를 통치했습니다. 필리프 6세가 살리카 법을 기반으로 왕위에 오르며 시작되었으며, 직계 단절 후 오를레앙, 앙굴렘 등의 방계가 왕위를 이었지만 앙리 3세의 사망으로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의 왕위를 두고 잉글랜드와 백년 전쟁을 치르는 등 프랑스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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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
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아들이자 발루아 가문의 시조인 샤를 드 발루아가 1270년에 태어났다.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발루아 영지는 훗날 그의 후손들이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하는 발판이 되었다.
1284
[발루아 가문의 형성]
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아들 샤를 드 발루아가 영지 '발루아'를 바탕으로 가문을 형성했다. 이 가문은 이후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아들 샤를 드 발루아가 발루아라는 영지를 기반으로 가문을 건립했다. 그의 이름에서 발루아라는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이 가문은 훗날 프랑스 왕위를 차지하게 될 카페 왕조의 한 계열이 된다.
1325
발루아 가문의 시조이자 필리프 6세의 아버지인 샤를 드 발루아가 1325년에 사망했다.
1328
[카페 왕조 직계 단절과 왕위 계승 위기]
카페 왕조의 마지막 직계 왕인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며 프랑스 왕위 계승에 큰 위기가 닥쳤다. 이로 인해 여러 인물들이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다.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가 아들 없이 사망하면서 카페 왕조의 직계가 단절되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은 샤를 4세의 조카인 필리프 드 발루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나바라 왕 펠리페 3세 등 여러 인물에게 열리게 되었고, 이는 후에 백년 전쟁의 씨앗이 된다.
[필리프 6세 즉위, 발루아 왕조 개창]
살리카 법에 따라 필리프 드 발루아가 필리프 6세로 즉위하며 프랑스 발루아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는 잉글랜드와의 백년 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샤를 4세 사망 후, 필리프 4세의 동생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인 필리프 드 발루아가 살리카 법을 근거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 등을 제치고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그는 필리프 6세로 즉위하며 발루아 왕조의 시대를 열었지만, 잉글랜드 왕의 프랑스 왕위 계승권 주장은 이후 백년 전쟁의 원인이 된다.
1364
[발루아 부르고뉴 가문의 시작]
프랑스의 장 2세의 아들 필리프에게 부르고뉴 공작 작위가 주어지면서 발루아 부르고뉴 가문이 시작되었다. 그는 필리프 2세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아들 필리프가 부르고뉴 공작 작위를 받으며 발루아 부르고뉴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필리프 2세로 즉위하여 1364년부터 1404년까지 부르고뉴를 통치했다.
1498
[샤를 8세 사망, 발루아 직계 단절]
이탈리아 원정 후 샤를 8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발루아 직계 왕조가 단절되었다. 이로 인해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12세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1498년, 프랑스 국왕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원정 후 앙부아즈 성에서 사고로 후사 없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발루아 직계 왕조의 대가 끊어졌으며, 샤를 5세의 아들 루이 1세 드 발루아의 손자인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12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루이 12세 즉위, 발루아-오를레앙 왕조 시작]
발루아 직계의 단절로 인해 루이 12세가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며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국민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했다.
1498년, 샤를 8세의 사망으로 발루아 직계가 단절된 후, 샤를 도를레앙의 아들인 루이 12세가 프랑스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의 첫 프랑스 국왕으로, 1515년까지 통치하며 '국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1515
[프랑수아 1세 즉위, 발루아-앙굴렘 왕조 시작]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의 대가 끊기자, 발루아-앙굴렘 가문의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1515년부터 1547년까지 통치했다.
1515년,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의 대가 끊어진 후, 루이 1세 오를레앙 공작의 아들인 장의 손자인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로써 발루아-앙굴렘 가문이 프랑스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그는 1547년까지 프랑스를 통치했다.
1573
[앙리 3세, 폴란드 국왕 헨리크 1세로 즉위]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 전 앙리 3세가 폴란드 국왕 선거에 선출되어 헨리크 1세로 즉위했다. 이는 발루아 가문의 국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1573년, 앙리 3세는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 전 폴란드 국왕 선거에서 당선되어 헨리크 1세로 즉위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 샤를 9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프랑스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폴란드 국왕직은 자동적으로 폐위되었다.
1574
[앙리 3세,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
폴란드 국왕으로 있던 앙리 3세가 프랑스 샤를 9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된다.
1574년, 폴란드 국왕 헨리크 1세로 재위 중이던 앙리 3세는 형 샤를 9세의 사망 소식에 급히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1589년까지 프랑스를 통치하며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된다.
1589
[앙리 3세 사망, 발루아 왕조 완전 단절]
앙리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발루아 가문의 모든 방계마저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로써 261년간 프랑스를 통치했던 발루아 왕조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1589년,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앙리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발루아 가문의 직계 및 모든 방계 가문이 완전히 단절되었으며, 같은 해 앙리 드 나바라가 앙리 4세로 즉위하여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이는 발루아 왕조의 261년간의 통치가 막을 내린 역사적인 사건이다.
1589년,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앙리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한 직후, 앙리 드 나바라가 앙리 4세로 즉위하여 프랑스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이로써 프랑스는 발루아 왕조 시대를 마감하고 부르봉 왕조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