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 전투

전쟁사, 전투, 해전

num_of_likes 59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0:14:31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기벌포 전투
전쟁사, 전투, 해전
report
Edit

676년 신라와 당나라가 금강 하구 기벌포에서 벌인 나당 전쟁의 마지막 해전이다. 신라는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7년간의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고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서해 제해권 장악에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660

[백제 멸망의 서막]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대규모 함대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기벌포 연안에 처음 상륙합니다. 백제군은 강변의 진흙벌을 방패 삼아 저항했으나 당나라의 물량을 막아내지 못하고 패배합니다.

기벌포는 금강 하구로, 당시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으로 진입하는 핵심 요충지였습니다.
백제군은 갯벌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당군의 상륙을 지연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소정방은 육지에 멍석을 깔고 강행 돌파를 시도하여 상륙에 성공하며 사비성으로 진격했습니다.

668

[고구려의 함락]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시키며 한반도 내 경쟁 세력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당나라는 신라까지 지배하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고구려 옛 땅과 신라를 동시에 통제하려 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를 모두 차지하려는 태도에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동맹이었던 신라와 당나라가 적대 관계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670

[나당전쟁의 전면전]

신라가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하여 당나라가 점령 중이던 요동과 백제 옛 땅을 선제 타격합니다. 이로써 한반도의 주권을 놓고 벌이는 신라와 당나라의 7년 전쟁이 시작됩니다.

문무왕은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를 공격하며 실질적인 지배권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신라군은 압록강을 넘어 당나라군과 직접 교전하며 강력한 자주 국방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당나라는 신라의 반역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증원군 파병을 준비하게 됩니다.

671

[웅진 수군의 격파]

신라 수군이 웅진 부근 해상에서 당나라 보급 함대를 격파하여 승리합니다. 서해안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한 신라의 전략적 공세가 성공을 거둡니다.

이 전투를 통해 신라는 당나라 함대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백제 유민들로 구성된 당나라 협력군을 무력화시키며 민심을 신라로 돌리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신라 수군이 장거리 항해와 해상 전투에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음을 입증한 사례입니다.

[사비성 탈환과 설치]

신라군이 백제의 옛 수도 사비성을 완전히 점령하고 소부리주를 설치합니다. 당나라가 세운 괴뢰 정권인 웅진도독부를 무력화하며 남부 지배권을 확립합니다.

신라는 이곳에 지방 행정 조직을 갖추어 당나라의 간섭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사비성의 함락은 당나라가 백제 땅을 통해 신라를 압박하려던 계획에 큰 차질을 주었습니다.
이제 전쟁의 주 무대는 임진강 유역의 중부 지방으로 북상하게 됩니다.

672

[석문 전투의 참패]

황해도 석문 들판에서 신라군이 당나라 기병 대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패배합니다. 전쟁 초기 승승장구하던 신라의 기세가 한풀 꺾이며 국가적 위기에 봉착합니다.

신라의 주요 장수들이 전사하고 군사력이 크게 약화된 뼈아픈 패배였습니다.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은 이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파문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이후 신라는 성곽 방어 위주의 수비 전략으로 전환하며 힘을 비축하게 됩니다.

673

[서해 방어망의 강화]

신라가 당나라 함대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서해안 포구마다 전함을 배치하고 요새를 구축합니다. 해군력을 대폭 증강하며 미래의 해전을 대비하기 시작합니다.

문무왕은 당나라가 해로를 통해 대규모 병력을 보낼 것을 예견하고 수군을 정비했습니다.
석문 패배 이후 위축된 육군력을 해군력으로 보완하려는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이때 다져진 해군 조직과 선박 건조 기술이 훗날 기벌포 승리의 근간이 됩니다.

[임진강 방어선 형성]

남하하는 당나라 육군을 막기 위해 신라군이 임진강 유역에 견고한 성들을 쌓고 장기전에 돌입합니다. 대륙 세력의 침공을 막아내는 최전방 방어선이 구축됩니다.

당군은 육로를 통해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신라의 철저한 방어에 가로막혔습니다.
양측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루한 대치와 소규모 교전을 이어갔습니다.
이 방어선은 훗날 매소성 전투에서 당군을 격퇴하는 핵심 기지가 됩니다.

674

[김인문의 국왕 임명]

당나라 고종이 문무왕의 관작을 박탈하고 당에 머물던 김인문을 신라 왕으로 봉합니다. 신라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여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는 책략을 구사합니다.

당나라는 유인궤를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김인문을 호위하며 신라로 진격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지배층과 백성들은 문무왕을 중심으로 더욱 강력하게 결속했습니다.
이러한 당의 도발은 오히려 신라의 항전 의지를 불태우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675

[유인궤의 북방 침공]

당나라 노장 유인궤가 칠중성에서 신라군을 격파하며 북쪽 방어선을 위협합니다. 신라는 외교적 사죄를 병행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유인궤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본국으로 소환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이근행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 정벌의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신라는 이근행의 대군을 맞이하여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준비하게 됩니다.

[매소성에서의 대역전]

신라군이 매소성에서 이근행의 당나라 20만 대군을 상대로 기적 같은 대승을 거둡니다. 당나라 육군은 주력 병기를 잃고 대패하여 북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합니다.

신라는 당나라 기병의 위력을 상쇄하기 위해 보병 전술과 지형지물을 활용했습니다.
전투 결과 3만여 마리의 말과 엄청난 양의 병기를 획득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승리로 당나라는 육로를 통한 신라 정복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당나라 함대의 남하]

육전에서 패한 당나라가 바닷길을 통해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서해안으로 보냅니다. 전쟁의 승패는 이제 바다 위에서의 마지막 대결로 좁혀집니다.

당나라는 매소성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수군 명장 설인귀를 투입했습니다.
그들은 금강 하구인 기벌포를 통해 내륙으로 진입하려 했습니다.
신라 수군은 이에 맞서 기벌포 연안에 대대적인 함대를 집결시켰습니다.

676

[설인귀의 기벌포 진입]

당나라 최고의 장수 설인귀가 수천 척의 전함을 이끌고 기벌포 해역에 나타납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나당전쟁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설인귀는 과거 고구려 멸망에 큰 공을 세운 유능한 지휘관이었습니다.
당군은 기벌포를 장악하여 사비성 유민들과 합류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신라 수군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설인귀의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출격했습니다.

[김원술의 명예 회복]

과거 석문 전투의 패배로 파문당했던 김원술이 신라 해군의 일원으로 기벌포 전투에 참전합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으로 전장의 선봉에 섭니다.

김원술은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한 한을 전장에서 풀고자 했습니다.
그의 필사적인 항전은 신라 수군 전체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습니다.
그는 이번 전투를 통해 가문의 수치를 씻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고자 했습니다.

[1차전의 아쉬운 패배]

신라 수군이 기벌포 앞바다에서 당군과 첫 교전을 벌였으나 함대의 규모에 밀려 후퇴합니다. 강력한 화력을 앞세운 당나라 전함들의 위세에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당시 당나라 전함들은 신라 배들에 비해 거대하고 견고했습니다.
초반 패배로 기세가 위축될 수 있었으나 신라 지휘부는 이를 전열 재정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신라 수군은 갯벌과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새로운 전술을 구상했습니다.

[신라 수군의 재정비]

패배를 딛고 일어선 신라 함대가 기벌포 수로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유인책을 마련합니다. 당군을 좁은 해역으로 끌어들여 기동력의 우위를 점하려 합니다.

신라의 전함들은 작지만 빨라 복잡한 수로에서 움직이기 유리했습니다.
지휘관들은 당나라 함대의 대열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치밀하게 계산했습니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함선 수리와 보급이 신속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처절한 22번의 격전]

신라와 당나라 함대가 기벌포 인근에서 무려 22차례나 쉴 새 없이 맞붙으며 혈투를 벌입니다. 신라군은 지치지 않는 기세로 당군을 끈질기게 몰아붙입니다.

이 기록은 삼국사기에 명시된 내용으로, 세계 해전사에서도 보기 드문 격렬한 소모전이었습니다.
반복되는 교전 속에서 당나라 수군은 점차 보급품과 사기가 고갈되어 갔습니다.
신라군은 현지 지형의 이점을 극대화하며 당군의 허점을 지속적으로 공략했습니다.

[당나라 함대의 붕괴]

지속된 교전 끝에 당나라 함대의 진형이 완전히 무너지고 신라군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됩니다. 당나라의 자랑하던 명장 설인귀도 패배를 직감하고 후퇴를 준비합니다.

신라 수군은 화공과 원거리 사격을 병행하여 당나라 대형 전함들을 무력화했습니다.
지휘 체계가 마비된 당군 선박들은 서로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순간은 나당전쟁의 승패가 완전히 결정되는 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정점이었습니다.

[기벌포의 최후 승리]

신라군이 당나라 군사 4,000여 명의 목을 베며 기벌포 전투의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설인귀는 남은 병력을 이끌고 패주하며 한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납니다.

4,000명의 전사자는 당시 수군 규모로 볼 때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피해였습니다.
신라는 이 전투로 당나라의 해상 보급로와 상륙 계획을 완전히 궤멸시켰습니다.
기벌포의 붉은 노을 아래 신라의 함성만이 가득하며 전쟁의 끝을 알렸습니다.

[7년 전쟁의 종지부]

기벌포 승리 소식이 전국에 퍼지며 나당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사실상 마무리됩니다. 당나라는 더 이상 신라를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승리는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 얻어낸 최초의 완전한 자주적 승리입니다.
전쟁을 주도했던 문무왕과 여러 장수,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들의 헌신이 일궈낸 결과입니다.
신라는 이제 한반도의 유일한 주권 국가로서 평화의 시대를 준비합니다.

677

[안동도호부의 축출]

당나라가 평양에 두었던 통치 기구인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기며 한반도 철수를 단행합니다. 기벌포 전투의 결과가 가져온 당나라의 공식적인 패배 인정이었습니다.

당나라는 한반도 지배를 포기하고 국경 밖으로 통치 거점을 이전했습니다.
이로써 대동강 이남의 영토는 온전히 신라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끝났음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678

[통일 신라의 기틀 마련]

외세를 완전히 몰아낸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아우르는 대통합 정치를 시작합니다. 전쟁의 상처를 씻고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는 시대가 열립니다.

문무왕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고구려와 백제 출신 장수들에게 관직을 내렸습니다.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세금을 감면하고 행정 구역을 전국적으로 재편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통일 신라' 역사가 기벌포의 승리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681

[문무왕의 호국 유언]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문무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며 서거합니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는 영원한 전설이 됩니다.

왕의 시신은 불교식으로 화장되어 동해 대왕암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기벌포와 매소성에서 보여준 호국 정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신라 백성들은 그를 기리며 감은사를 짓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1145

[삼국사기의 기록 전승]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며 기벌포 전투의 22회 교전과 승리 기록을 정사로 남깁니다. 사라질 뻔한 고대의 위대한 전쟁사가 후세에 전해지게 됩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 상세한 전투 경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은 기벌포 전투가 허구가 아닌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벌포의 승리를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문헌적 근거입니다.

1930

[민족 사학의 재발견]

일제강점기 민족 사학자들이 기벌포 전투를 한국사의 자주적 독립 투쟁의 상징으로 조명합니다. 억압받던 민족에게 과거의 승리라는 자긍심을 심어줍니다.

신채호 등은 이 전투를 외세를 이겨낸 민족적 자존심의 원천으로 평가했습니다.
당나라라는 거대 제국을 굴복시킨 신라의 역량은 독립 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역사 교육을 통해 기벌포 전투는 우리 민족의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1990

[전투 현장의 비정]

현대 사학계에서 기벌포 전투의 실제 위치를 현재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일대로 비정합니다. 고고학적 조사와 지명 연구를 통해 현장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금강 하구의 갯벌과 수로 지형은 기록된 전투 양상과 완벽히 일치했습니다.
장항읍 장암리의 '기벌포' 지명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기벌포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으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2005

[기벌포 해전 기념비 건립]

서천군 장항읍 기벌포 해안가에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거대한 기념비가 세워집니다.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1,300년 전의 영광을 알리는 교육의 장이 됩니다.

기념비에는 나당전쟁의 경과와 기벌포 전투의 의의가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매년 이곳에서는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위령제와 문화 행사가 열립니다.
서천군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2

[기벌포 역사 축제 개최]

기벌포 전투를 테마로 한 대규모 역사 축제가 서천군 일대에서 처음으로 개최됩니다. 전투 재현 퍼포먼스와 학술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역사적 가치를 전파합니다.

나당 연합군과 신라군의 해상 대결을 배 위에서 재현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역사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2018

[장항 브라운필드 재생]

기벌포 전투의 무대였던 장항 일대의 오염된 부지를 친환경 역사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됩니다. 고대 승전지와 근대 산업 유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장항 제련소 주변의 아픈 근대사와 기벌포의 영광스러운 고대사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역사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나당전쟁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스토리텔링이 적용되었습니다.
기벌포는 이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꿈꾸는 평화의 공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2024

[디지털 역사관 개관]

기벌포 전투를 VR과 AR로 체험할 수 있는 디지털 역사관이 서천군에 문을 엽니다. 최첨단 기술을 통해 누구나 1,300년 전 해전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복원된 신라 함선을 타고 설인귀의 당나라 군대를 격퇴하는 시뮬레이션이 인기입니다.
삼국사기의 어려운 한문 기록들을 쉽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냈습니다.
미래 세대들에게 기벌포 전투의 가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2026

[평화와 자주권의 상징]

오늘날 기벌포 전투는 단순한 전쟁 기록을 넘어 한반도 자주권 수호의 상징으로 교육됩니다. 외세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던 신라의 역량은 현대 대한민국에도 큰 교훈을 줍니다.

기벌포는 우리가 주인이 되어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낸 역사적 증거입니다.
나당전쟁의 종결은 한민족 형성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벌포의 승리를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