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
쿠데타, 정변, 왕조 교체, 정치적 사건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9:19
1388년, 요동 정벌 중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개경으로 회군한 사건입니다.이 사건으로 고려의 구세력인 최영-우왕 세력이 제거되었고,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 집권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결과적으로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결정적인 발판이 된 한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정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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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
[고려-명나라 외교 관계 시작]
고려가 명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명나라는 무리한 세공과 고압적인 태도로 고려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민왕 18년, 고려는 명나라와 외교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왕 시기 명나라는 철령위 설치 요구 외에도 무리한 세공을 요구하고 고려 사신의 입국을 거절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고려를 압박했습니다.
1388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요구와 요동 정벌 결정]
명나라 홍무제가 철령위 설치를 요구하며 고려의 영토 반환을 주장하자,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결정하며 명나라와의 실력 대결을 준비했습니다.
명나라 홍무제가 "철령 이북은 원래 원나라 땅이었으니 명나라에 속해야 한다"며 철령위 설치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고려 우왕과 최영은 명나라의 고압적인 태도에 맞서 요동 정벌을 단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반대했으나, 우왕과 최영은 이를 강행했습니다.
[요동 정벌군 평양 출발]
팔도 도통사 최영, 좌군 도통사 조민수, 우군 도통사 이성계가 이끄는 요동 정벌군이 평양을 출발하여 요동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왕은 서경(평양)에 머물며 전국에서 5만여 명의 군사를 징발하고 압록강에 부교를 만들었습니다. 최영은 팔도 도통사, 조민수는 좌군 도통사, 이성계는 우군 도통사를 맡아 요동 정벌군을 구성하고 평양을 출발했습니다.
[요동 정벌군 위화도 진주]
요동 정벌군이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 도착했으나, 장마로 인한 강물 범람과 군사들의 질병 발생으로 진군이 어려워졌습니다.
요동 정벌군은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 진주했습니다. 당시 큰 비를 만나 강물이 범람하고 군사들 중 환자가 발생하여 더 이상 진군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감행]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는 등 4가지 불가론을 내세우며 우왕과 최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화도에서 개경으로 회군을 감행했습니다.
이성계는 요동 정벌의 4가지 불가론, 즉 '소국이 대국을 공격할 수 없음', '여름철 군사 동원의 어려움', '왜구의 침입 우려', '장마철 병력 손실' 등을 주장하며 우왕과 최영의 진군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개경으로 회군했습니다. 이는 조선 건국의 결정적인 정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성계 군의 개경 입성 및 최영 체포]
회군한 이성계와 조민수 군이 개경에 입성하여 우왕과 최영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하며 고려의 정치 상황을 뒤흔들었습니다.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회군군은 개경에 당도하여 우왕과 최영의 저항을 뚫고 최영을 체포했습니다. 이로써 이성계는 고려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최영 처형 및 우왕 폐위]
이성계 세력은 개경으로 압송된 최영을 처형하고, 우왕을 강화도로 추방하며 구 권력 세력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고봉현으로 유배되었던 최영은 개경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했습니다. 또한 우왕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추방되었고, 그의 아들 창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이는 이성계 세력의 정권 장악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1389
[우왕과 창왕의 처형]
폐위되었던 우왕과 그의 아들 창왕이 결국 이성계 세력에 의해 처형당하며, 고려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구 권력은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강화도로 추방되었던 우왕은 약 1년 뒤 아들 창왕과 함께 처형당했습니다. 이는 이성계가 고려의 핵심 인물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기 위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는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1392
[과전법 실시와 조선 건국]
이성계와 급진 신진사대부 세력은 과전법을 실시하여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공양왕에게 강제로 왕위를 물려받아 조선을 건국하며 새로운 왕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1388년부터 1392년까지 이성계는 고려의 핵심 인물들을 차례로 제거했습니다. 정도전과 조준이 이끄는 급진 신진사대부 세력은 이성계와 손잡고 과전법을 실시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공고히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공양왕에게 강제로 선위(임금의 자리를 물려줌)를 요구하여 조선을 건국함으로써 한반도에 새로운 왕조 시대를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