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

법전, 조선시대, 법률, 국가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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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23: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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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법전, 조선시대, 법률, 국가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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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의 통일 법전.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 반포되었다.

기존 법령을 종합하여 이·호·예·병·형·공의 6전 방식으로 편제되었다.

만세불역의 법전이었으나 실제로는 후대 법전으로 계승·변화했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1485년의 을사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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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편찬]

조선 건국 초기, 정도전이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 개혁안을 담은 《조선경국전》을 지어 바쳤다. 이는 훗날 《경제육전》 및 《경국대전》 편찬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태조 3년(1394년) 6월 28일(음력 5월 30일), 정도전이 국가 통치 원리와 제도 개혁안을 담은 《조선경국전》을 태조에게 바쳤다. 이 책은 치전, 교전, 예전, 정전, 형전, 사전의 6부로 구성되어 조선 건국의 이념과 초기 국가 운영의 기틀을 제시했으며, 향후 법전 편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398

[《경제육전》 간행]

조선 건국 이래 시행된 여러 규정들을 모아 국가 통치의 기초 법전인 《경제육전》을 간행했다. 이 법전은 훗날 경국대전의 모태가 된다.

태조 6년(1397년) 음력 12월 26일, 양력으로는 1398년 1월 14일에 조선 건국 이후 시행된 법령과 규정을 집대성한 《경제육전》이 간행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법전 편찬의 시초이자, 이후 《경국대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1426

[《속육전》과 《등록》 간행]

기존 《경제육전》 이후 제정된 법령들을 보완하고 집대성한 《속육전》과 법령집인 《등록》이 간행되었다.

세종 8년(1426년) 12월 31일(음력 12월 3일)에 기존의 《경제육전》을 보완하는 성격의 《속육전》과 각종 법령 및 기록을 모은 《등록》이 편찬되어 간행되었다. 이는 조선의 법제가 점차 정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60

[경국대전 편찬 시작 및 호전 완성]

세조가 영원히 변치 않을 통일 대법전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육전상정소를 설치하고, 재정·경제의 기본이 되는 호전을 가장 먼저 완성하여 《경국대전》으로 명명했다.

세조는 즉위와 동시에 영구적인 대법전 편찬의 뜻을 품고 육전상정소를 신설하여 편찬을 지시했다. 세조 6년(1460년)에는 재정 및 경제의 기본 법규를 담은 호전(戶典)이 가장 먼저 편찬되었고, 이 법전이 바로 '경국대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세조는 직접 심의·수정을 보며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1467

[경국대전 전편 편찬 완료]

세조의 지휘 아래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육전(六典)으로 구성된 《경국대전》의 모든 편찬 작업이 일차적으로 완료되었다.

세조 13년(1467년)에 《경국대전》의 전편, 즉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모든 육전(六典)에 대한 편찬 작업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세조는 계속해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게 했고, 결국 세조 생전에는 반포 및 간행되지 못했다.

1469

[《경국대전》 최종본 완성 및 상정]

세조 때부터 편찬된 《경국대전》의 최종 정리본이 예종에게 완성되어 올려졌다. 이는 세조의 뜻을 이어받아 반포 직전까지 이른 단계였다.

예종 원년(1469년) 10월 31일(음력 9월 27일), 세조 대부터 시작된 《경국대전》의 편찬 작업이 최종적으로 완료되어 예종에게 상정되었다. 세조는 이 대전의 반포를 보지 못하고 승하했으나, 그 뜻을 이어 예종 대에 사실상 완성된 형태로 올림으로써 법전 시행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1471

[《신묘대전》 반포 및 시행]

성종 즉위 후 수정 과정을 거쳐 《경국대전》이 최종 완성되어 《신묘대전》으로 명명되었고, 드디어 전국에 반포되어 시행되기 시작했다.

예종의 뒤를 이어 성종이 즉위하면서 다시 법전의 수정 논의가 일어났다. 성종 원년(1470년)에 교정을 가한 후 마침내 완성되었고, 이듬해인 성종 2년(1471년) 1월 1일부터 《신묘대전》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시행되었다. 이는 조선의 통일 법전이 비로소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1474

[《갑오대전》으로 개정]

《신묘대전》 시행 후 제기된 수정 의견을 반영하여 《경국대전》이 다시 개정되었고, 이를 《갑오대전》이라 불렀다.

《신묘대전》의 시행 후에도 법전의 내용에 대한 수정 논의가 계속되었다. 이에 성종 5년(1474년)에 법전이 새롭게 고쳐져 《갑오대전》으로 명명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 법전이 시행과 보완을 거쳐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의 일부였다.

1485

[경국대전 5차 개정 및 영구 불변 결정]

《을사대전》의 완성 및 반포와 함께, 이 법전은 더 이상 개정하지 않는 만세불역(萬世不易)의 대법전으로 확정되었다.

성종 16년(1485년)에 최종적으로 5차 개정이 이루어져 《을사대전》이 반포되었고, 이때 법전의 개정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이는 경국대전이 조선의 영원한 기본 법전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이후에도 속대전 등 추가 법전이 편찬되며 보완되었다.

[《을사대전》 반포 및 시행 (현전본)]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경국대전》의 최종본이 《을사대전》으로 완성되어 반포되었고, 이날부터 시행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경국대전》은 바로 이 《을사대전》이다.

《갑오대전》 역시 심사·수정을 거듭한 끝에 성종 15년(1484년) 12월에 최종 완성되었다. 이듬해인 성종 16년(1485년) 1월 1일부터 《을사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 《을사대전》은 이후 조선 왕조의 기본 법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으며,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경국대전》 원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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