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살인 사건, 미제 사건, 국제 관계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8:34
1997년 이태원 버거킹에서 발생한 홍익대생 조중필 살인 사건으로, 미국인 용의자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초기 수사 미흡과 검찰 실수로 패터슨이 도주하며 사건은 미궁에 빠졌으나, 국민적 공분과 언론의 지속적인 보도, 영화화 등으로 재조명되었습니다. 결국 16년 만에 패터슨이 송환되어 2017년 징역 20년 확정 판결을 받으며 20년에 걸친 길었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1997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발생]
이태원 버거킹에서 홍익대학교 학생 조중필(당시 23세)이 미국인 아서 패터슨(당시 17세)과 에드워드 리(당시 18세)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1997년 4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버거킹 화장실에서 홍익대학교 전파공학과 학생 조중필(당시 23세)이 잭나이프로 9군데 찔려 살해당했다. 현장에는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건 리와 혼혈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 있었으며, 이 둘이 조중필 씨를 살해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아서 패터슨 미군 범죄수사대에 체포]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다음 날, 익명의 제보를 받은 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에게 유력 용의자 아서 패터슨이 체포되었다.
1997년 4월 4일, 조중필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아서 패터슨은 익명의 제보를 받은 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에게 체포되었다.
[에드워드 리 검찰에 자수]
미국 출장 후 아서 패터슨이 TV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본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가 아들의 범행을 추궁하자, 리는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자수했다.
1997년 4월 6일, 미국 출장을 다녀온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인 패터슨이 TV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아들을 추궁했다. 아들이 범행을 시인하자 변호사를 만난 후 4월 8일 검찰에 자수했다.
1998
[에드워드 리 살인 혐의 파기환송 결정]
대한민국 대법원이 에드워드 리의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볼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여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리의 무죄 가능성이 열렸다.
한국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로, 아서 패터슨은 증거인멸죄와 흉기휴대죄로 기소했다. 1·2심에서는 리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으나, 1998년 4월 24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리를 유죄라고 볼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아서 패터슨 소년법에 따라 출소]
아서 패터슨은 증거인멸죄와 흉기휴대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미결구금을 포함해 약 1년 4개월을 복역한 후 소년법 규정에 따라 출소했다.
아서 패터슨은 증거인멸죄와 흉기휴대죄로 장기 1년 6개월, 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미결구금을 포함해 1년 4개월을 복역한 후, 1998년 8월 15일에 소년법 규정에 따른 형의 집행종료로 출소하였다.
1999
[검찰 실수로 아서 패터슨 미국 도주]
에드워드 리의 무죄가 확정될 것을 대비해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연장되고 있었으나, 담당 검사의 실수로 출국금지가 풀리자 패터슨은 다음 날 미국으로 출국하여 도주했다.
검찰은 에드워드 리가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리의 무죄판결이 확정될 것을 대비해 1998년 11월부터 아서 패터슨에 대해 출국을 금지하고 이를 3개월씩 계속 연장하였다. 그러나 1999년 8월 23일 담당 검사의 실수로 출국금지가 풀리자, 패터슨은 바로 다음 날인 8월 24일에 미국으로 출국하며 신변 확보와 수사가 곤란해졌다.
[에드워드 리 살인 혐의 최종 무죄 확정]
대법원에서 검찰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에드워드 리에 대한 살인 혐의 무죄 판결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로써 이태원 살인 사건은 '살인자는 있는데 범인은 없는' 미제 사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1998년 9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이 에드워드 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후, 1999년 9월 3일 대법원에서 검찰의 상고가 기각되어 리의 무죄판결이 최종 확정되었다.
2009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이태원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여 국민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와 송환 요구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2009년 9월 9일 개봉했으며, 이는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고 도주한 아서 패터슨에 대한 재판 요구 여론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서 패터슨 범죄인 인도 청구 요청]
영화 개봉 등으로 여론이 커지자 검찰은 법무부에 아서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하며 도주한 패터슨의 송환 및 수사 재개를 위한 공식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유족들의 지속적인 재수사 요구와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후 패터슨에 대한 재판 요구 여론이 거세지자, 2009년 12월 15일 검찰은 법무부에 아서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했다.
2011
[아서 패터슨 미국에서 체포 및 송환 절차 개시]
아서 패터슨이 미국에서 또 다른 범죄로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고, 한국의 '범죄인 인도 청구' 대상자임이 확인되며 그를 한국으로 송환하는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2011년 6월, 아서 패터슨은 미국에서 저지른 다른 범죄로 미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한국에서 '범죄인 인도 청구'를 받은 대상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같은 해 10월부터 그를 한국으로 송환하는 절차가 시작되었다.
[아서 패터슨 살인죄로 재기소]
공소시효 만료 논란이 일자, 검찰은 아서 패터슨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출국한 것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아서 패터슨이 살인죄가 아닌 다른 혐의로 복역 후 출국했기 때문에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살인죄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만약 패터슨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출국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2012년 4월 2일에 공소시효가 완성될 수 있었으므로, 한국 검찰은 2011년 12월 22일에 아서 패터슨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2015
[아서 패터슨 16년 만에 국내 송환]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의 한국 송환 판결 및 항소심 패소 이후, 아서 패터슨이 16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어 길었던 이태원 살인 사건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2012년 10월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이 패터슨을 한국으로 송환하라고 판결했고, 그 직후 패터슨이 제출한 인신보호청원 또한 2013년 6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항소심 패소 후인 2015년 9월 23일, 아서 패터슨은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
2016
[아서 패터슨 1심 징역 20년 선고]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에서 아서 패터슨에게 소년법상 선고 가능한 최고형인 징역 20년이 선고되었다. 법원은 에드워드 리 역시 살인죄의 공범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2016년 1월 29일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사건 당시 만 18세 미만이어서 소년법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없는 아서 패터슨에게 선고 가능한 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 이와 함께 에드워드 리에 대해서도 '패터슨에게 범행을 부추긴 후 화장실로 뒤따라 들어갔고 패터슨이 조씨를 칼로 찌르 것을 말리지 않았으며 쓰러진 조씨에 대해 아무런 구호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살인죄의 공범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2017
[아서 패터슨 대법원 징역 20년 확정]
대법원에서 아서 패터슨에 대한 징역 20년 형이 최종 확정되면서, 20년 가까이 이어진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의 법적 공방에 종지부가 찍혔다.
2016년 9월 13일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되었으며, 2017년 1월 25일 대법원에서 아서 패터슨에 대한 징역 20년의 형이 최종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