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고려 문신, 고려 무장, 귀주대첩 영웅, 고려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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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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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신, 고려 무장, 귀주대첩 영웅, 고려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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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이자 뛰어난 무장으로,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퇴하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민족의 영웅. 983년 문과 장원 급제 후 여러 요직을 거치며 국가를 이끌었으며, 청렴하고 검약한 삶으로 존경받았다. 그의 활약은 고려의 자주성과 평화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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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강감찬의 탄생]

강감찬이 삼한벽상공신 강궁진의 아들로 금주(현 서울 관악구 낙성대 근처)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은천이었다.

강감찬은 948년 12월 22일(음력 11월 19일) 삼한벽상공신 강궁진의 아들로 금주(지금의 서울특별시 관악구 낙성대 근처)에서 태어났다. 5대조인 강여청이 시흥군으로 이주하여 금주의 호족이 되었다. 어릴 적 이름은 은천이었다.

983

[문과 장원 급제]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이는 그의 관직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983년(성종 3년) 강감찬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郎)이 되었다. 이를 통해 그의 관직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010

[거란 2차 침입과 강감찬의 전략]

요나라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으로 서경을 침공했다. 강감찬은 항복에 반대하고 전략적 후퇴를 주장하여 현종의 나주 피난을 이끌었다.

1010년(현종 1년) 요나라 성종이 강조의 정변을 표면상의 구실로 내세워 40만 군으로 서경을 침공하였다. 강조의 군대가 크게 패배하자 강감찬은 요나라에 항복하자는 다른 중신들에 반대하며 전략상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하여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여 사직을 보호하였다. 하공진이 적을 설득하자 요나라군은 고려에서 물러갔으며, 퇴각 중 양규가 요군을 쳐 고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1011

[다양한 관직 역임]

국자제주, 한림학사, 승지, 좌산기상시, 중추원사, 이부상서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국정 운영에 참여했다.

1011년에 국자제주(國子祭酒)가 되었으며, 이후 한림학사·승지·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중추원사(中樞使)·이부상서 등을 역임하며 중앙 관료로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1018

[귀주대첩의 영웅, 거란 3차 침입 격퇴]

요나라가 현종의 친조 불참과 강동 6주 반환 거부를 구실로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했다.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20만 8천 명의 군을 이끌고 요나라군을 격파, 특히 귀주에서 적을 섬멸하며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1018년(현종 9년) 요나라는 고려 현종이 친히 입조하지 않은 것과 강동 6주를 돌려주지 않은 것을 구실로 삼아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했다. 서경유수 내사시랑 평장사로 있던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원수 강민첨 등과 함께 20만 8천 명을 이끌고 나가 곳곳에서 요나라군을 격파했다. 특히 흥화진 전투에서는 물을 이용한 전술로 요나라군을 크게 무찔렀으며, 귀주(龜州)에서 적을 섬멸하여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에서 요나라군 10만 명 중 생존자는 수천에 불과했다.

1019

[귀주대첩 후 봉작과 공신호]

귀주대첩 승리 후 검교태위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천수현개국남에 봉해지고 식읍 3백 호와 추충협모안국공신의 호를 받았다.

전란이 수습된 뒤 1019년에 강감찬은 검교태위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천수현개국남(檢校太尉 門下侍郎 同內史門下平章事 天水縣開國男)에 봉해지고 식읍 3백 호를 받았으며, 추충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의 호를 받았다.

1020

[관직 승진]

특진검교태부 천수현개국남으로 승진하며 식읍을 받았다.

1020년에는 특진검교태부 천수현개국남(特進檢校太傅 天水縣開國子)에 식읍 3백호가 되었다.

1030

[문하시중 취임]

고려 최고 관직 중 하나인 문하시중에 올랐다.

1030년 강감찬은 고려의 최고 관직 중 하나인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재임 기간은 1030년부터 1031년까지였다.

1031

[최고 관직 도달 및 서거]

특진 검교태사 시중 천수군개국후에 이르며 최고 영예를 얻었으나, 같은 해 향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031년(현종 22년) 강감찬은 특진 검교태사 시중 천수군개국후(特進檢校太師侍中天水郡開國侯)에 이르며 최고 영예를 얻었다. 같은 해 9월 9일(음력 8월 20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시호는 인헌(仁憲)이 내려졌다. 문종 때 수태사 겸 중서령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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