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

고려 문신, 외교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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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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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신, 외교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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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뛰어난 문신이자 외교관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과거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치며 정치적 역량을 쌓았으며, 특히 거란의 침입 당시,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확보하는 외교적 대승을 거두어 고려의 자주성과 영토 확장에 크게 기여한 명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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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

[서희의 탄생]

고려의 문신 서희가 태어났다. 그의 외가에는 용이 구름에 걸려 추락하다 바다의 신의 도움을 받아 용궁으로 간 태몽을 꾼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의 문신 서희가 태어났다. 그의 외가 어르신 중 용이 구름에 걸려 추락하다 바다의 신의 도움을 받아 용궁으로 간 태몽을 꾼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지리에 밝았고 무예에 능했다.

960

[과거 급제 및 관직 시작]

서희가 과거에 급제하며 고려의 문신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광평원외랑, 내의시랑 등 여러 관직을 거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리에 밝으며 무예에 능했던 서희는 갑과로 과거에 급제한 뒤, 광평원외랑·내의시랑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983

[병관어사 임명]

서희가 병관어사로 임명되어 고려의 군사 및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

960년 과거 급제 이후 광평원외랑·내의시랑 등을 거쳐 병관어사에 임명되었다.

993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담판]

거란의 80만 대군이 고려를 침공하자 서희는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교전 없이 물러나게 하고, 오히려 고구려의 옛 영토인 강동 6주를 얻어내는 역사적인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고려의 자주성과 영토 확장에 크게 기여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요 성종이 장수 소손녕과 80만 대군을 보내 고려를 공격하였고, 고려군은 봉산군에서 패배했다. 조정에서는 항복이나 할지론(땅을 떼어주는 주장)이 대두되었으나, 서희는 이를 비판하며 소손녕과의 담판을 자청했다. 서희는 소손녕의 위협적인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대등한 외교관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후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며,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 때문에 거란과의 교류가 어려웠다고 설득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고 거란군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손녕은 서희에게 낙타 10두, 말 100필, 양 1,000마리, 비단 500필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996

[서희의 병환과 성종의 쾌유 기원]

서희가 병으로 사찰 개국사에서 요양하게 되자, 고려 성종은 그를 염려하여 직접 찾아와 쾌유를 기원하며 어의 한벌과 말 세필, 곡식 1,000석 등 여러 하사품을 내렸다.

서희가 병으로 사찰 개국사에 요양하게 되자, 성종은 직접 왕림하여 어의 한벌과 말 세필을 각 사원에 나누어 시납하고, 개국사에 다시 곡식 1,000석을 시주하는 등 그가 완쾌되도록 진심으로 쾌유를 기원했다.

998

[서희의 별세]

고려의 명재상 서희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음을 들은 왕은 크게 슬퍼하며 후한 부의를 내렸고, 시호는 장위로 정해졌다.

57세를 일기로 서희가 졸하자, 부음을 들은 왕이 크게 슬퍼하며 베 1천 필, 보리 3백 석, 쌀 5백 석, 뇌원다 2백 각, 대다 10근, 전향 3백 량을 부의로 주었다. 그의 시호는 장위이다.

1027

[성종 묘정 배향]

서희가 고려 현종 18년에 성종 묘정에 배향되어 그 공훈을 후대까지 기리게 되었다.

서희는 1027년에 성종 묘정에 배향되어 그 공로를 인정받고 후대에까지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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