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왕
발해 건국자, 초대 국왕, 고구려 유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8:04
고왕 대조영은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 저항하며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한 초대 왕이다. 본명은 대조영으로, 고구려 장군 출신이거나 고구려에 복속된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추정된다. 당나라와 대립하면서도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돌궐과 동맹을 맺어 국제적 위상을 강화했으며, 719년에 붕어하여 아들 무왕이 왕위를 이었다.
645
발해를 건국한 초대 왕 고왕 대조영은 고구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걸걸중상, 어머니는 시씨로 전해진다. 정확한 출생일은 사서에 전하지 않으나, 645년경으로 추정된다.
668
[고구려 멸망]
당나라의 침공으로 평양성이 함락되며 고구려가 멸망했다. 이로 인해 대조영 일가를 비롯한 많은 고구려 유민이 당나라 영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연개소문 사후 권력 다툼으로 인해 당나라의 재침공이 시작되었고,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멸망했다. 이후 대조영 일가를 비롯한 고구려 유민들은 당나라의 통제 아래 영주(榮州)로 강제 이주되었다.
696
[거란 반란과 고구려 유민 이탈]
당나라 영주에서 거란족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 혼란을 틈타 고구려 유민 걸걸중상과 말갈족 걸사비우는 대조영과 함께 영주에서 이탈하여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696년, 당나라 영주에서 무주의 억압 정책에 반발하여 거란족의 대규모 반란이 발생했다. 이 혼란을 틈타 대조영은 아버지 걸걸중상과 말갈족 지도자 걸사비우를 따라 고구려 유민 및 말갈족을 이끌고 당나라의 통제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698
[천문령 전투 승리 및 발해 건국]
천문령 전투에서 무주의 추격군을 격파한 대조영은 읍루의 동모산에 성을 쌓고 국호를 진(震)으로 정한 뒤 연호를 천통(天統)으로 선포하며 발해를 건국했다.
영주를 이탈하여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이해고가 이끄는 무주의 추격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대조영은 남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통합하여 698년 천문령에서 무주 추격군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읍루의 동모산에 성을 쌓고 국호를 진(震)으로, 연호를 천통(天統)으로 선포하며 발해를 건국하고, 스스로 '가독부'라 칭했다.
705
[당나라와 화친 관계 수립]
측천무후의 무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재건되자, 대조영은 당나라와 화친 관계를 맺어 발해의 국제적 입지를 다지고 외교적 안정을 꾀했다.
705년, 측천무후의 무주(武周) 정권이 멸망하고 당나라가 재건되자, 발해의 고왕 대조영은 당나라와 화친 관계를 맺었다. 이는 건국 초기의 당나라와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적 안정 및 국제적 입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713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 책봉]
당나라 예종은 낭장 최기를 보내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 이로써 당나라가 발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형식적인 조공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713년 2월, 당나라 예종은 사신 낭장 최기(崔訢)를 발해에 보내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左驍衛員外大將軍 渤海君王)'이자 '홀한주도독부도독(忽汗州都督府都독)'으로 책봉했다. 이는 당나라가 발해를 공식적으로 국가로 인정하고, 발해는 당나라와 형식적인 조공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다.
719
[고왕 대조영 붕어]
발해의 초대 왕 고왕 대조영이 붕어했다. 당 현종은 사절을 보내 조문했고, 그의 아들 대무예가 무왕으로 즉위하여 왕위를 이었다.
719년 4월 2일(음력 3월 8일), 발해를 건국한 초대 왕 고왕 대조영이 붕어했다. 당 현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절을 보내 조문했으며, 이후 고왕의 아들인 대무예가 왕위를 이어받아 발해의 제2대 왕인 무왕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