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무열왕

신라 국왕, 역사 인물,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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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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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국왕, 역사 인물,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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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29대 국왕 김춘추는 진골 출신 최초 왕으로, 김유신과 협력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 기틀을 다졌다. 당과 외교 동맹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했으며, 최초로 묘호 '태종'을 받았다. 외세 협력에 대한 역사적 논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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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김춘추 출생]

신라 진지왕의 손자이자 진평왕의 외손으로 김춘추가 태어났다.

603년에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 김용수(또는 김용춘)와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진지왕의 폐위 및 외척과의 혼인 동맹 등 당시 상황은 그가 진골로 기재된 배경이 되었다.

625

[김유신 누이 문희와의 혼인 동맹]

김유신의 누이 문희와 혼인하여 진지왕계와 금관가야계 귀족 간의 정치·군사적 결합을 이루고 신라 왕실의 신집단을 형성했다.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 혼인하여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 간의 정치적 결탁을 이루었다. 이 혼인으로 신라의 진골 귀족 내에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며 기존 성골계 귀족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삼국유사》는 김유신이 연기를 피워 선덕여왕을 속여 김춘추가 문희와 혼인하게 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이는 문무왕의 출생 시기로 미루어 626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642

[고구려 원병 요청과 억류]

백제 공격에 대한 원병을 얻기 위해 고구려를 방문했으나, 죽령 이북 땅 반환을 요구받고 억류되었다가 거짓 약속 후 탈출했다.

대야성 함락 후 김춘추는 백제 멸망을 위한 원병을 요청하러 고구려에 갔으나, 보장왕과 연개소문은 신라가 점령한 죽령 이북 땅 반환을 조건으로 내걸며 김춘추를 억류했다. 김유신의 무력 시위와 고구려 대신의 도움으로 "땅을 돌려주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대야성 함락과 가족의 죽음]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함락하고 성주 김품석과 그의 아내인 김춘추의 딸 고타소를 죽였다. 이에 김춘추는 백제 멸망을 다짐했다.

642년 8월, 백제 윤충 장군이 신라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성주였던 김품석은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부하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려 처자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딸 고타소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김춘추는 백제 멸망을 다짐하게 되었다.

648

[당나라로부터 백제 공격 지원 약속]

아들 문왕과 함께 당나라에 입조하여 당 태종에게 백제 침략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백제 공격을 위한 원병 파병을 허락받았다.

648년 12월, 김춘추는 아들 문왕과 함께 당나라에 입조하여 당 태종의 환대를 받았다. 그는 백제의 침략으로 신라 백성들이 포로가 되고 조공 길이 막힐 것이라고 호소하여 당 태종으로부터 백제 공격을 위한 원병 파병을 허락받았다. 이 외교 성과는 훗날 삼국통일의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654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즉위]

진덕여왕 승하 후 상대등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으로는 최초로 신라 29대 국왕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하며 신라 중대 왕실의 첫 왕이 되었다.

654년 3월, 진덕여왕이 승하하자 진골 세력은 상대등 알천에게 섭정을 청했으나, 알천은 사양하고 김춘추에게 왕위 계승을 권했다. 김춘추는 이를 받아들여 국인의 천거로 신라의 29대 국왕으로 즉위하며, 진골 출신 최초의 왕이자 신라 중대 왕실의 첫 왕이 되었다.

660

[당군과 연합하여 백제 멸망]

당나라와 연합하여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사비성을 함락시켜 백제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내며 백제를 멸망시켰다.

660년 3월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이 신라로 파병되었고, 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이끌고 합류했다. 7월 9일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을 격파했고, 7월 13일 사비성이 함락되었다. 뒤이어 7월 18일, 웅진성으로 도망쳤던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백제는 멸망했다.

661

[태종 무열왕 승하]

재위 8년 만에 59세로 사망하여 영경사 북쪽에 장사 지내고, 최초로 묘호 '태종'과 시호 '무열'을 받았다.

661년 음력 6월, 태종 무열왕은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경사 북쪽에 장사 지어졌으며, 한반도 최초로 '태종'이라는 묘호와 '무열'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당 고종도 그의 죽음에 애도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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