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
고구려 국왕, 군주, 역사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7:48
고구려의 제20대 국왕으로, 광개토대왕의 맏아들이다. 97세까지 장수하며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정책을 추진하여 백제를 크게 격파하며 한반도 중부 일대를 장악했다. 중국 남북조와 등거리 외교를 펼쳐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정을 안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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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모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몸과 얼굴이 크고 잘 생겼으며 뜻과 기운이 호걸을 초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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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가 되던 해에 태자로 책봉되어 광개토대왕의 뒤를 잇는 고구려의 차기 국왕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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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20대 국왕 즉위]
광개토대왕 서거 후 18세의 나이로 고구려의 제20대 국왕으로 즉위, 연수, 건흥, 연가 등의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통치 시대를 열었다.
광개토대왕이 서거하자, 18세의 나이로 고구려의 제2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연가, 연수, 건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가 새겨진 유물이 발견되어, 고구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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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 건립]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광개토대왕릉비를 건립하여 고구려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후대에 전했다.
선왕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고자 광개토대왕릉비를 건립하여 고구려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선왕의 공적을 만천하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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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고구려비 건립]
고구려의 위상을 널리 선포하기 위해 충청북도 충주에 충주 고구려비를 세웠으며, 이는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 지역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위상을 대내외에 널리 선포하고자 충청북도 충주에 충주 고구려비를 건립했다. 이는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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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천도]
왕권 강화를 통해 국내성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효율적인 남진 정책 추진을 위해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겨 고구려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내부적으로 왕권의 위상을 높여 국내성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남진 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수도를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정치적 중심과 대외 전략의 전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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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연 황제 풍홍 망명 요청 및 구출]
북연 황제 풍홍이 고구려에 망명을 요청하며, 장수왕은 이를 받아들여 다음 해 북위의 공격을 받던 북연에서 풍홍 일족을 구출하는 등 국제 정세에 적극 개입했다.
북연의 황제 풍홍이 밀사를 보내 고구려로 망명을 요청했고, 장수왕은 이를 수락했다. 다음 해 북연이 북위에 의해 멸망할 때, 고구려 군대를 보내 풍홍 및 그의 일족들을 구출하여 고구려로 망명시켰다. 이 사건은 장수왕의 적극적인 대외 정책과 고구려의 국제적 영향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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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자 풍홍에 대한 고구려의 대응]
고구려로 망명해온 북연의 풍홍이 계속해서 세력을 과시하며 행패를 부리자, 장수왕은 그의 태자를 인질로 잡고 시중 인원을 몰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고구려로 망명해온 풍홍은 자신의 세력을 믿고 오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렸다. 이에 장수왕은 풍홍의 태자를 인질로 잡고 그를 시중드는 인원까지 몰수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이는 장수왕이 내부 질서를 확립하고 망명자에 대한 통제력을 분명히 했음을 보여준다.
[풍홍 살해 및 송나라와의 외교 갈등]
풍홍이 송나라로 망명을 요청하려 하자 장수왕은 군대를 보내 그를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송나라 사신 왕백구와 충돌이 발생했으나, 고구려의 외교적 위상으로 사건을 수습했다.
풍홍이 송나라로 망명을 요청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수왕은 군대를 보내 그를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송나라 사신 왕백구가 이끄는 군사와 고구려군이 충돌하여 고구려 장수 고구가 죽고 손수가 생포되기도 했다. 장수왕은 이에 왕백구를 붙잡아 송나라로 압송했고, 송나라는 고구려와의 외교 관계를 망칠 수 없어 왕백구를 감옥에 가둔 후 석방하며 고구려의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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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의 적대 관계 시작]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대항하면서, 장수왕은 신라와 적대 관계로 돌입하게 되어 한반도 삼국의 대립 구도가 심화되었다.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하면서, 장수왕은 신라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한 한반도 남부 국가들의 연합 저항을 의미하며, 삼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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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실직주성 점령]
신라의 중요 거점인 실직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며, 고구려가 한반도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백제와 신라의 동맹에 대항하여 장수왕은 신라를 공격했다. 이 해에 신라의 실직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고구려가 한반도 중동부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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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남쪽 변경 침공]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맞서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공하며 반격에 나섰으나, 고구려의 강력한 국력 앞에서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한 반격으로 백제가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백제의 시도는 고구려의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 앞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고구려의 지속적인 남진을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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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개로왕의 북위 요청과 도림 파견]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고구려 공격을 요청했지만, 북위는 이 사실을 고구려에 알려주었다. 이에 장수왕은 백제와의 전면전을 준비하며 승려 도림을 첩자로 보내 백제의 내정을 정탐하게 했다.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위는 오히려 이 사실을 고구려에 알려주며 장수왕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장수왕은 이를 계기로 백제와의 전면전을 준비하는 한편, 승려 도림을 첩자로 백제에 보내 개로왕의 환심을 사고 무리한 토목공사를 부추겨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치밀한 계획을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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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위례성 함락 및 개로왕 살해]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위례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아 살해하는 대승을 거두며, 고구려 남진정책의 정점을 찍었다.
치밀한 준비 끝에 장수왕은 백제를 대규모로 공격했다. 고구려군은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백제의 개로왕을 사로잡아 살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의 가장 큰 성과이자 고구려 역사상 최대의 영토 확장 중 하나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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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격 및 한반도 중부 장악]
신라를 공격하여 호명성 등 7개 성을 함락시키고 미질부까지 진격하며, 한반도 중부 일대에 대한 고구려의 확고한 지배력을 구축했다.
백제에 이어 신라를 공격하여 호명성을 비롯한 7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미질부까지 진격하는 등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쳤다. 이러한 정복 전쟁을 통해 고구려는 한반도 중부 일대를 확고하게 장악하며, 광활한 영토를 가진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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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서거]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수왕은 97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북위 효문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강왕'이라는 시호를 내릴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았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장수왕은 97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북위 효문제는 특별히 직접 애도를 표하고 '강왕'이라는 시호를 추증하며, 장수왕과 고구려의 높은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