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

백제 국왕, 고대 군주,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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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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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국왕, 고대 군주,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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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제13대 국왕인 근초고왕은 346년부터 375년까지 재위하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마한 연맹체를 통합하고, 북으로는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영토 확장에 주력했다. 중국 동진 및 일본 야마토 왕권과의 활발한 외교로 국가 위상을 높였으며, 왕실 역사서 《서기》 편찬을 지시하여 국가 체제를 굳건히 했다. 그의 재위는 백제의 발전과 함께 '임나일본부설' 등 역사적 논쟁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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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백제 제13대 국왕 즉위]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근초고왕이 형 계왕의 뒤를 이어 백제의 제13대 국왕으로 즉위하며, 그의 재위 기간은 346년 9월부터 375년 11월까지 이어진다.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근초고왕은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식견이 넓었기에, 둘째 아들임에도 346년 계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재위는 346년 9월부터 375년 11월까지이다.

364

[가야 탁순국에 사신 파견]

근초고왕은 가야의 부족국가 중 하나인 탁순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적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364년, 근초고왕은 가야의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인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366

[신라 동맹 및 야마토 왕권과 외교 시작]

근초고왕은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을 통해 야마토 왕권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자 사신을 파견했다. 이로써 백제와 야마토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었다.

366년 3월, 사신을 보내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 왕을 통해 야마토 왕권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하였다. 당시 야마토 왕권은 탁순국에 사신 시마노스구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야마토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구데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니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니하야를 반갑게 맞이하여 오색의 채견 1필, 각궁의 화살, 그리고 철정 40매를 선물로 안겨 돌려보냈으며, 이듬해 367년 신라 사신 편에 구저, 미주류, 막고를 딸려보냈다. 이들이 함께 왜에 도착함으로써 백제와 야마토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었다.

368

[신라에 명마 선물]

근초고왕은 신라를 존경하는 의미로 백제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 두 필을 신라에 선물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다졌다.

근초고왕은 또한 신라를 존경하여, 368년 백제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 두필을 신라에 선물하기도 했다.

369

[고구려 치양성 전투 대승]

고구려 고국원왕이 2만 군사를 이끌고 치양성으로 침공하자,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를 보내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사로잡고 대승을 거두었다. 백제인 사기가 제공한 군사정보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69년 9월, 고구려 고국원왕이 군사 2만을 이끌고 치양성(황해도 배천군, 구모로성)에 쳐들어오자,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를 보내 고구려군을 크게 무찌르고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삼국사기》에는 이때 고구려로 도망쳤다가 마음을 고쳐 돌아온 백제인 사기(斯紀)가 제공한 고구려의 군사정보 덕분에 태자가 고구려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371

[고구려 평양성 공격 및 고국원왕 전사]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와 함께 패수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대방 지역을 점령했다. 이어진 평양성 공격에서는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며 백제의 군사적 전성기를 이끌었다.

371년에는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와 함께 패수(예성강)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옛 대방(현 황해도)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어 여세를 몰아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고려의 신라계 대학자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본기에는 개로왕이 북위(北魏)에 보낸 표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태자 근구수가 고국원왕의 목을 베어 창에 꽃아 효수하였다 한다.

372

[왕실 역사서 《서기》 편찬 지시]

근초고왕은 왕실의 귀함을 알리고 국가 체제를 굳건히 할 목적으로 박사 고흥에게 백제의 왕실 역사를 정리한 《서기》를 저술하도록 명했다. 비록 현재는 소실되었지만, 이는 백제의 역사 기록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다.

근초고왕은 또한 왕실의 귀함을 알리고 국가 체제를 굳건히 할 목적으로 박사 고흥에게 명하여 왕실의 역사를 정리한 《서기》를 저술했으나 소실되었다.

[중국 동진에 사신 파견]

근초고왕은 백제 역사상 최초로 중국 사서에 이름이 기록된 왕으로서, 372년 동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로써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근초고왕은 백제 역사상 최초로 중국 사서에 이름이 기록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진서(晉書)》에 따르면, 372년 음력 1월과 6월에 동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는 한편,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직기와 왕인을 왜에 파견하여 왜왕이 그들을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왜왕에게 칠지도가 보내진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375

[근초고왕 사망 및 재위 종료]

백제의 제13대 왕 근초고왕이 375년 11월 사망하며 29년간의 재위가 마무리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아들 근구수왕이 왕위를 계승했다.

375년 11월에 근초고왕이 사망하며 재위가 종료되었다. 그의 왕릉은 석촌동 3호분으로 추정되며, 아들 근구수왕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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