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민
무신, 군인, 정치인, 무신정권 집권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7:45
고려 중기 무신으로, 미천한 신분에서 무신정변을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의종 암살, 김보당의 난 진압 등 주요 사건에 깊이 관여하며 입지를 굳혔고, 경대승 사후 12년간 최고 권력자로 집권했다. 탐욕과 권력 남용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아들의 비행이 빌미가 되어 최충헌 형제에게 암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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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부의 난 가담 및 승진]
이의민은 정중부, 이의방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에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고, 이로 인해 낭장을 거쳐 장군으로 승진하며 무신정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고려 의종 24년, 정중부, 이의방, 이고, 채원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에 이의민이 가담하여 공을 세웠다. 그는 낭장에서 중랑장을 거쳐 장군으로 승진하며 무신정권 내에서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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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당, 조위총의 난 진압 및 의종 암살]
이의민은 김보당과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대장군과 상장군으로 승진했다. 특히, 이의방의 명령으로 유배 중이던 의종을 직접 암살하는 잔혹한 임무를 수행하며 무신정권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고려 명종 3년, 김보당과 장순석 등이 의종 복위를 위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여 대장군이 되었다. 이후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며 상장군으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의방의 명을 받아 유배되어 있던 의종을 찾아가 처형하고, 그 시체를 가마솥에 넣어 연못에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공로로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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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승 집권 후 낙향]
경대승이 정중부를 처형하고 무신정권을 장악하자, 이의민은 경대승의 권력을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 삼아 고향인 경주로 물러나 칩거하며 때를 기다렸다.
고려 명종 9년, 경대승이 정중부를 처형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이의민은 경대승을 두려워했다. 그는 병을 핑계로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 칩거했으며, 이 시기에 경대승의 사망 오보를 듣고 자신이 죽이려 했는데 누가 죽였냐고 말했다가 경대승의 원한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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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상서 겸 상장군 임명]
경주에서 칩거하던 이의민은 형부상서 겸 상장군에 임명되며 여전히 조정의 중요한 직책을 유지했으나, 경대승의 집권 하에서는 실질적인 활동이 제한되었다.
고려 명종 11년, 이의민은 형부상서 겸 상장군에 임명되었다. 이 시기 경주에 머물고 있었으나, 경대승이 허승을 죽였다는 오보를 듣고 "내가 경대승을 죽이려 했는데 누가 죽였느냐"고 말했다가 경대승의 원한을 사기도 했다. 이후에도 병을 핑계로 경주에 칩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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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승 사후 권력 복귀 및 판병부사 취임]
경대승이 갑작스럽게 병으로 사망하자, 이의민은 다시 조정에 복귀하여 판병부사에 임명되며 권력의 핵심부로 돌아왔고, 이후 무신정권의 실세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고려 명종 13년, 경대승이 병으로 사망한 후 이의민은 조정에 다시 나가 판병부사가 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는 무신정권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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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등극]
이의민은 경대승 사후 권력을 장악하며 12년간 고려 왕조의 실질적인 최고 집권자가 되었다. 그는 공부상서, 수사공 상서좌복야,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판병부사 등을 역임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고려 명종 14년 2월, 이의민은 고려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여 1196년까지 12년간 무신정권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공부상서와 수사공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했으며, 1190년에는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판병부사 직책까지 맡으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이 시기 권력을 남용하고 탐욕을 부려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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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반란군 내통 및 전존걸 장군 자살 사건]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이 부흥을 꾀하던 남적들과 내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토벌하러 갔던 대장군 전존걸은 이지순의 행태에 크게 실망하여 결국 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고, 이는 이의민 권력의 도덕적 해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고려 명종 23년, 이의민은 이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을 맹신하여 김사미, 효심 등과 함께 고향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 부흥을 도모했다. 이의민과 내통하는 남적들을 토벌하기 위해 아들 이지순과 대장군 전존걸이 출병했으나, 이지순이 오히려 이들을 도와주었다. 휘하 장군들이 이지순의 처벌을 건의했지만, 전존걸은 크게 한탄하며 기양현에 가서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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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민 일가 대량 학살 및 숙청]
이의민 암살 후 최충헌은 그의 일가 3족을 멸하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벌였다. 이의민의 세 아들뿐만 아니라 친척, 심지어 노비들까지 색출되어 살해당했으며, 이는 무신정권의 잔혹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의민이 암살당한 직후 최충헌은 명종에게 건의하여 한광연을 경주로 보내 이의민의 가까운 친척들과 집안 사람들, 그리고 노비들까지 모두 색출하여 살해했다. 이의민의 세 아들 이지순, 이지광, 이지영 역시 처형당했고, 사촌 이희민과 조카 이성순도 화를 입었다. 공신각에 그려져 있던 이의민의 초상화도 덧칠되어 지워지는 등,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아들 이지영의 비둘기 사건으로 최충헌 정변 발발]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최충수의 비둘기를 빼앗는 사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은 최충수와 형 최충헌이 이의민 암살을 모의하고 군사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의민 권력의 종말을 예고했다.
고려 명종 26년 이른 봄,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동부녹사 최충수의 비둘기를 빼앗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최충수는 형 최충헌을 찾아가 이의민 암살을 모의했고, 이들의 정변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의민 정권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최충헌 형제에게 암살당함]
이의민은 미타산 별장에서 최충헌, 최충수 형제와 박진재 등이 일으킨 군사에게 기습당해 살해되며 12년간 이어온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죽음은 무신정권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고려 명종 26년 5월 15일, 이의민은 미타산 별장에서 말을 타려던 중, 문 밖에서 대기하던 최충헌, 최충수 형제와 박진재 등이 일으킨 군사에게 기습당해 살해되었다. 그가 살해될 당시 최충헌은 조정 문신 38명도 인은관에 가두어 함께 살해했다. 이의민의 사후 그의 머리는 참수되어 길거리에 효수되었고, 최충헌은 이의민의 3족을 멸하고 아들 이지순, 이지광, 이지영을 모두 처형하며 이의민 일가를 완전히 몰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