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승

고려 장군, 정치인, 무신정권 집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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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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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장군, 정치인, 무신정권 집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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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의 무신이자 정치가 경대승은:

* 중서시랑평장사 경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청렴함을 보였습니다.

* 정중부 일파의 무단 정치를 타파하고자 거사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 기존 권력기구인 중방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사병 집단인 도방을 신설하여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 집권 중 여러 반란과 사회 혼란에 직면했으며, 30세의 나이로 의문의 돌연사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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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

[경대승 탄생]

중서시랑평장사 경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1154년(의종 8년)에 중서시랑평장사 경진(慶珍)의 아들로 태어났다.

1168

[관직 진출 및 청렴한 태도]

음서제도로 교위가 되었고, 아버지 경진이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모두 군대에 바치며 청렴한 모습을 보였다.

15세의 나이에 음서제도로 교위(校尉)가 되었고, 이후 장군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 경진이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모두 군대에 바치고 청렴하게 지냈다.

1170

[무신정변 발발]

경대승이 17세이던 해,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추대하는 무신정변이 발생하여 고려 정세가 격변하였다.

경대승이 17세이던 1170년(의종 24년),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추대하는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고려의 정세는 크게 요동치게 된다.

1178

[사심관 파견 실패 및 파면]

청주에서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심관으로 파견되었으나 실패하여 직책에서 파면되었다.

1178년(명종 8년), 청주인들 사이의 분쟁으로 100여 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심관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분쟁 해결에 실패하자 책임을 물어 파면되었다.

1179

[정중부 제거 및 집권]

26세의 나이에 명종이 정중부 일파의 무단 정치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허승, 김희조와 함께 거사를 일으켜 정중부, 정균, 송유인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1179년(명종 9년), 26세의 경대승은 당시 무신들이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상황에서 명종이 정중부 일파의 무단 정치를 싫어함을 알고 그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을 결심을 하였다. 허승, 김희조와 함께 거사를 일으켜 정중부와 그의 아들 정균, 사위 송유인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기존의 최고 권력기구인 중방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권력 집단인 도방을 신설하였다. 관리 등용에 있어 문신과 무신을 고루 기용하고자 하였으나, 반란에 참가한 무신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같이 거사를 일으켰던 허승과 김광립이 제거되었다.

1181

[무인 반란 및 사회 혼란]

집권 중 한신충, 채인정, 박돈순 등의 무인이 반란을 일으키고 잦은 민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1181년(명종 11년), 28세의 경대승 집권기에 한신충, 채인정, 박돈순 등의 무인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잦은 민란으로 사회가 어지러웠다.

1183

[의문의 돌연사]

신변 보호를 위해 도방을 창설했음에도 불구하고, 30세의 젊은 나이로 의문을 남긴 채 돌연사하며 생을 마감했다.

신변 보호를 위해 도방을 창설하여 사병 100명을 거느렸지만, 1183년(명종 13년) 8월 11일(그레고리력) 새벽, 술을 마시고 취침하던 중 30세의 나이로 의문을 남긴 채 돌연사하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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