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성곽, 사적, 세계문화유산, 계획 신도시, 군사시설

num_of_likes 51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47:3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성곽, 사적, 세계문화유산, 계획 신도시, 군사시설
report
Edit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대왕의 강력한 왕권 강화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축조된 계획 신도시의 성곽입니다. 실학자 정약용의 설계와 거중기 같은 첨단 기술이 적용되어 군사적 방어와 상업적 기능을 겸비한 실용적인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한국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상세한 기록물인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한국전쟁 후에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789

[정조대왕의 수원 이전 및 신도시 계획]

정조대왕이 수원을 팔달산 동쪽 아래로 옮기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는 정조의 왕권 강화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담긴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정조대왕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충신, 군사력, 자금의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수도 서울에서 이를 모두 얻기 어렵다고 생각한 정조는 새로운 정치 공간인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고, 그곳이 바로 수원 화성입니다. 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 자락에 조성한 현륭원으로 옮긴 후, 그 주변 주민들을 위한 계획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1794

[수원 화성 축성 공사 시작]

조선 후기 정조 때 수원 화성의 축성 공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와 녹로 등 신기술이 도입되어 공사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정조 18년(1794년)에 수원 화성의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사에는 실학자 정약용이 조선과 중국의 축성 방식을 총망라하여 계획했고, 자재 운반에 혁신적인 거중기와 유형거를 발명하여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팔달산 채석장에서 채굴한 벽돌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화홍문 및 남수문 공사 착수]

수원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과 남수문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조 18년 2월 28일, 수원 화성의 주요 수문인 화홍문과 남수문의 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 수문은 평상시에는 교량 및 수문의 역할을 하고, 비상시에는 군사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화홍문 상량]

수원 화성 북수문인 화홍문의 상량(마룻대 올리기)이 이루어졌습니다.

화홍문은 물이 흐를 수 있도록 7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누각이 있습니다. 상량은 건축물의 골격을 완성하고 마룻대를 올리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서장대 공사 착수]

수원 화성의 군사지휘본부인 서장대(화성장대) 공사가 착수되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성 전체와 주변 100리 안의 동정을 파악하고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요충지입니다. 이곳에는 장대석으로 대를 쌓고 2층 건물을 세웠습니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공사 착수]

화성의 아름다운 시설물 중 하나인 동북각루(방화수류정)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화홍문 바로 옆 용연이라는 연못 위에 위치한 동북각루는 주위 감시와 휴식을 겸하는 다기능 건물로, '방화수류정'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서장대 상량]

수원 화성의 군사지휘본부인 서장대의 상량(마룻대 올리기)이 이루어졌습니다.

서장대는 정조가 직접 '화성장대'라는 편액을 썼을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며, 상량을 통해 건물의 골격이 완성되었습니다.

[북동포루 준공]

수원 화성 내 포병용 진지인 북동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북동포루는 장안문과 북수문 사이에 위치하며, 3중층의 벽돌 건물로 내부를 비워 화포를 숨겨 위아래를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북서포루 준공]

수원 화성 내 포병용 진지인 북서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북서포루는 서장대 북쪽에 위치하며, 3중층의 벽돌 건물로 화포와 총안 등을 갖추어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장대 완공]

수원 화성의 군사지휘본부인 서장대가 완공되었습니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는 화성의 핵심 군사지휘소로, 정조가 직접 쓴 '화성장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성곽 전체를 조망하며 군사들을 지휘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상량]

수원 화성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동북각루(방화수류정)의 상량(마룻대 올리기)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수원8경' 중 하나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은 상량을 통해 건축의 중요한 단계를 마무리했습니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완공]

수원 화성의 동북각루가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방화수류정'으로도 불리며 경관이 아름답습니다.

동북각루는 화홍문 바로 옆 용연 연못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주위를 감시하는 군사 기능과 휴식을 취하는 정자의 기능을 겸했습니다. 아름다운 외관 덕분에 후대에는 '방화수류정'이라 불리게 됩니다.

1795

[화홍문 문루 준공]

수원 화성 북수문인 화홍문의 문루가 준공되었습니다.

7개의 홍예문 위로 세워진 문루는 평상시에는 수문 및 교량, 비상시에는 군사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총안과 포혈을 갖추고 있습니다. 누각은 장쾌한 물보라와 어우러져 수원8경 중 '화홍관창'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합니다.

[북포루(舖樓) 준공]

수원 화성의 보병용 진지인 북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북포루는 치성 위에 세워진 누각 형태로, 군사들을 가려 적이 동향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 시설입니다. 서북포루와 서북공심돈 사이에 위치합니다.

[북암문 홍예 완성]

수원 화성의 비밀 통로인 북암문의 홍예(아치)가 완성되었습니다.

북암문은 동암문에서 멀지 않은 골짜기에 위치하여 밖에서 찾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나 가축의 통행, 군수품 조달을 위한 비밀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동장대 공사 착수]

수원 화성의 동쪽에 위치한 군사지휘소, 동장대 공사가 착수되었습니다.

동장대는 동북공심돈과 동암문 사이에 위치하며,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군사 지휘에 적합한 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이곳은 넓은 조련장(훈련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장대 상량]

수원 화성의 동장대 상량(마룻대 올리기)이 이루어졌습니다.

동장대는 3단으로 쌓은 대 위에 건물을 올린 형태로, 상량을 통해 건물의 골격이 완성되었습니다. 동쪽 구릉인 선암산의 요지에 위치한 중요한 지휘소입니다.

[동장대 완공]

수원 화성의 동쪽에 위치한 군사지휘소, 동장대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동장대는 3단으로 쌓은 대 위에 팔작지붕 건물이 올려진 형태로, 사방이 트여 있어 군사 지휘에 용이합니다. 주변에는 넓은 훈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남공심돈 완공]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 남공심돈이 완공되었습니다. 현재는 미복원 상태입니다.

남공심돈은 팔달문의 동치(東稚) 위에 있는 공심돈으로, 성제상으로 내부가 비어 있는 형태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방어 시설입니다. 당시 완공되었으나 현재는 복원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남수문 공사 재개]

이전에 공사가 중단되었던 수원 화성 남수문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1794년 2월 28일 착수 후 중단되었던 남수문 공사가 1795년 11월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남수문은 북수문과 마찬가지로 교량과 수문의 역할, 비상시 군사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1796

[남수문 홍예 완성]

수원 화성 남수문의 홍예(아치)가 완성되었습니다.

남수문은 9칸의 홍예로 구성되어 물줄기의 흐름을 유도하고, 그 위에는 통로와 여장을 쌓아 군사시설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철전을 설치하여 잠가두는 방식은 화홍문과 같았습니다.

[서북공심돈 완공]

수원 화성의 서북공심돈이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축조 당시의 완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북치 위에 세워진 망루로, 조선 시대를 통틀어 돈의 내부가 비어 있도록 설계된 최초의 사례입니다. 3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총안, 포혈, 전안 등을 갖추어 방어력을 높였습니다.

[동암문 홍예 완성]

수원 화성의 비밀 통로인 동암문의 홍예(아치)가 완성되었습니다.

동암문은 동북포루와 동장대 중간에 위치하며, 성벽이 안쪽으로 굽어져 들어가 적이 찾기 어려운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 사람이나 물자의 비밀스러운 출입에 사용되었습니다.

[동북노대 완공]

수원 화성 성곽 한가운데서 쇠뇌를 쏘기 위해 높이 지은 동북노대가 완공되었습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공심돈 사이에 위치하며, 정팔각형 모양의 벽돌로 쌓아 올린 시설물입니다. 접근하는 적을 쇠뇌로 공격할 수 있는 방어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서남각루(화양루) 공사 착수]

수원 화성 서남쪽에 위치한 서남각루(화양루)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장대와 팔달문 중간지점의 서남암문에서 뻗어 나간 외성의 끝 부분에 위치한 서남각루는 '화양루'라고도 불립니다. 군사적 요충지로서 화성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동북포루(舖樓) 준공]

수원 화성의 보병용 진지인 동북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각건대'라고도 불립니다.

동북포루는 치성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군사들의 동향을 적에게 숨기는 역할을 합니다. 하부는 석축, 상부는 전축으로 쌓았으며 여장을 둘렀습니다.

[서포루(砲樓) 준공]

수원 화성 내 포병용 진지인 서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서포루는 서장대 북쪽에 위치하며 3중층의 벽돌 건물입니다. 내부를 비워 화포를 숨겼다가 위아래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어 시설입니다.

[봉돈 완공]

수원 화성 동문 서남쪽에 위치한 봉돈이 완공되었습니다. 봉돈은 불과 연기로 군사 신호를 보내는 시설입니다.

봉돈은 5개의 연기구멍(화두)을 갖추고 있어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 침범 시 4개, 적과 접전 시 5개의 봉화를 올렸습니다. 성벽 밖으로 돌출된 석축과 전축 구조입니다.

[서암문 홍예 완성]

수원 화성 팔달산 서장대 근처에 위치한 서암문의 홍예(아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서암문은 입구가 꺾여 있어 적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비밀 통로입니다. 문의 안쪽 높이는 높고 바깥쪽은 낮아 계단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동이포루(舖樓) 준공]

수원 화성 봉돈 남쪽에 위치한 보병용 진지인 동이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동이포루는 중층 누각으로, 밑에는 총안이 뚫려 있어 방어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정면 1칸, 측면 2칸의 규모에 우진각지붕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북각루 완공]

수원 화성 화서문 옆에 위치한 서북각루가 완공되었습니다.

서북각루는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위를 관찰하기 용이하며, 감시 및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남포루(砲樓) 준공]

수원 화성 팔달산 중턱 서남암문 근처에 위치한 포병용 진지 남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남포루는 동북포루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대포와 혈포 각 2대, 총안 19개가 설치되어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일포루(舖樓) 준공]

수원 화성 창룡문 남쪽에 위치한 보병용 진지인 동일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동일포루는 중층 건물로, 하층 주위는 여장으로 둘러싸여 원근총안을 갖추었습니다. 상층은 마루와 목조 사다리를 설치하여 위아래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서남각루(화양루) 상량]

수원 화성 서남쪽에 위치한 서남각루(화양루)의 상량(마룻대 올리기)이 이루어졌습니다.

서남암문에서 용도를 통해 뻗어 나간 외성의 끝에 위치한 서남각루는 화성 방어의 군사적 요충지이며, 상량을 통해 건물의 골격이 완성되었습니다.

[동포루(砲樓) 준공]

수원 화성 봉돈 근처에 위치한 포병용 진지 동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동포루는 3중층의 벽돌 건물로, 포혈과 총안을 두어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층과 중층의 벽은 돌출부 3면을 전축으로 쌓았습니다.

[서남각루(화양루) 누각 준공]

수원 화성 서남쪽에 위치한 서남각루(화양루) 누각이 준공되었습니다.

서남각루는 용도 끝에 위치하여 화성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누각은 사방으로 판문을 대고 바깥쪽 문에 짐승의 얼굴을 그려 넣어 방어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동남각루 준공]

수원 화성 남수문 바로 옆에 위치한 동남각루가 준공되었습니다.

동남각루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성벽이 꺾인 모퉁이에 있어 주위를 관찰하기 용이합니다. 주위 감시와 함께 휴식 공간의 역할도 했습니다.

[서남암문 홍예 완성]

수원 화성 서남각루로 나가는 유일한 암문인 서남암문의 홍예(아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서남암문은 다른 암문과 달리 암문 위에 포사(舖舍) 1칸이 세워져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군사적 방어 기능을 강화한 설계입니다.

[서포루(舖樓) 준공]

수원 화성 서장대 남쪽에 위치한 보병용 진지 서포루가 준공되었습니다.

서포루는 중층 건물로, 나무 사다리를 이용하여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민도리 5량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습니다.

[수원 화성 최종 준공]

조선 후기 정조 때 시작된 수원 화성 축성 공사가 마침내 2년 6개월 만에 최종 준공되었습니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겸비한 실용적인 성곽으로 탄생했습니다.

정조 20년(1796년) 10월 10일, 수원 화성은 거중기 등 신기재를 활용하여 축성되었으며, 왕권을 강화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기리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지형에 맞춰 읍성과 산성의 구조가 모두 존재하도록 축조되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받습니다.

1963

[수원 화성 사적 제3호 지정]

수원 화성이 대한민국의 사적 제3호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수원 화성은 1963년 1월 21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화성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1964

[팔달문 보물 지정]

수원 화성 남문인 팔달문이 대한민국의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팔달문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을 가진 화성의 남문으로, 규모와 형식 면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합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화서문 보물 지정]

수원 화성 서문인 화서문이 대한민국의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화서문은 창룡문과 홍예와 문루의 제도가 같으며, 좌우의 돌 계단을 꺾이게 해서 층을 만든 특징이 있습니다.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1978

[창룡문 복원]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되었던 수원 화성의 동문 창룡문이 복원되었습니다.

창룡문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른색이 동쪽을 의미하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었으나, 1978년에 재건되어 원형을 되찾았습니다.

1991

[효원의 종각 건립]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효원의 종각'이 수원시에서 건립되었습니다.

효원의 종각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을 기리고 후세에 그 정신을 전하기 위해 1991년 수원시가 만들었습니다. 화성의 역사적 맥락과 정신적 가치를 상징하는 시설입니다.

1997

[수원 화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한국 성곽 건축의 우수성을 알리는 쾌거였습니다.

화성은 한국전쟁으로 일부 파괴된 후 복원되었지만, 『화성성역의궤』라는 상세한 설계도와 기록을 바탕으로 재건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지형에 맞춘 독특한 건축 방식과 동서양 기술 교류의 증거로 평가되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2004

[남수문터 발굴조사 착수]

수원시는 남수문 복원을 위해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수원 화성이 199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사라졌던 남수문을 복원하기 위한 첫 단계로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화성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2007

[화성행궁 사적 지정]

수원 화성 내부에 위치한 행궁이 대한민국의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행궁은 임금의 임시 거처로, 수원 화성 내에 위치하며 정조대왕이 머물렀던 중요한 역사적 공간입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08

[여민각 복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던 수원 화성 중심부의 종각, 여민각이 복원되었습니다.

'시민과 함께한다'는 뜻의 여민각은 복원 후 2008년부터 매년 12월 31일 밤에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타종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0

[남수문 복원 공사 시작]

수원 화성의 남수문 복원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90년간 사라졌던 남수문을 재건하는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남수문의 복원 사업이 착수되었습니다. 남수문은 길이 29.4m, 너비 5.9m, 높이 9.3m 규모로, 9칸의 홍예수문을 연결한 형태로 재건되었습니다.

2011

[방화수류정 보물 지정]

수원 화성의 동북각루(방화수류정)가 대한민국의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동북각루는 화홍문 바로 옆 용연 위에 위치하며, 화성 시설물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워 '방화수류정'으로도 불립니다. 빼어난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북공심돈 보물 지정]

수원 화성의 서북공심돈이 대한민국의 보물 제171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서북공심돈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돈의 내부가 비어 있도록 설계된 최초의 방어 시설로, 축조 당시의 완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건축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화성' → '수원 화성' 명칭 변경 고시]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화성'의 공식 명칭이 '수원 화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명칭을 따른 것입니다.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 고시를 통해 기존 '화성' 명칭이 '수원 화성'으로 공식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의 명칭을 반영하고 지역명을 포함하여 혼동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2012

[남수문 복원 완료]

약 90년간 사라졌던 수원 화성의 남수문이 첨단 공법을 가미하여 복원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남수문 복원 사업이 약 2년 만에 완료되었습니다. 9칸의 홍예수문 형태로 원형이 복원되었으며, 이는 수원 화성 전체의 완전한 모습을 되찾는 데 기여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