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수도, 특별시, 대도시, 문화 중심지, 경제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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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유서 깊은 도시다. 백제 위례성에서 시작된 역사는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를 거쳐 고려 남경으로 발전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로 개칭되어 500년 이상 수도 기능을 수행했으며, 근대화를 거쳐 일제강점기 경성부로 변화했다. 광복 이후 서울특별시로 거듭난 후 한국 전쟁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글로벌 대도시로 성장했다. 현재는 문화, 경제, 정치의 중심지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풍부한 매력적인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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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선사주거지 조성 추정]

오늘날 강동구에 위치한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움집터와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오늘날 강동구에 위치한 암사동 유적은 그 조성연대가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움집터와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BC 1C

[백제 위례성 건립]

서울 동부 한강변에 백제의 첫 수도 위례성이 세워졌다. 백제는 이후 500년 가까이 위례성을 수도로 삼았다.

기원전 18년, 서울 동부 한강변에 백제의 수도 위례성이 세워졌다. 백제는 이후 500년 가까이 위례성을 수도로 삼았다.

475

[고구려 장수왕, 서울 지역 점령]

고구려의 장수왕이 서울 지역을 점령한 후 한산군과 남평양을 설치하여,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서 서울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

[백제, 신라 동맹으로 서울 탈환]

백제가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하였다.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553

[신라, 서울 지역 장악 및 한산주 설치]

나제동맹을 깬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여 서울 지역을 빼앗고,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685

[신라, 북한산군 설치]

삼국통일 후 신라가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을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으로 이름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 신라는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을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北漢山郡)으로 이름하였다.

757

[신라, 한주와 한양군으로 개칭]

신라가 한산주를 한주로, 북한산군을 한양군으로 개칭하였다.

757년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북한산군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918

[고려 태조, 한양군을 양주로 개칭]

고려 태조가 한양군을 양주로 개칭하였다.

고려 개국 후 918년 (고려 태조 1년)에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를 광주(廣州)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940

[고려 태조, 한주를 광주로 개칭]

고려 태조가 한주를 광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를 광주(廣州)로 각각 개칭하였다.

1067

[양주, 고려의 남경으로 승격]

고려 문종 때 양주가 남경으로 승격되어, 왕실의 별궁이 세워지는 등 중요성이 커졌다.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1308

[남경, 한양부로 개편]

고려 시대, 남경이 한양부로 개편되었다가 다시 남경으로 개칭되는 행정구역 변화를 겪었다.

1308년 남경을 한양부로 개편하였다가 1356년(공민왕 5년)에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1356

[한양부, 다시 남경으로 개칭]

고려 공민왕 때 한양부가 다시 남경으로 개칭되었다.

1356년(공민왕 5년)에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1394

[조선 태조, 한양으로 천도]

조선 태조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유교의 도성제에 따라 경복궁, 종묘, 사직 등을 세워 조선의 수도로서 기틀을 마련하였다.

조선 태조는 1392년 개성(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남경으로 천도했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나, 한양의 도시계획 자체는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둔 도성제에 따라 건설되었다.

1395

[한성부로 개칭 및 행정 구역 확정]

한양을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 52방의 행정 구역을 확정하였다.

이듬해 1395년에는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

[숭례문 완공]

조선의 주요 성문 중 하나인 숭례문이 완공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다.

1404

[경복궁 준공]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준공되었다.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1592

[임진왜란 발발 및 한양 점령]

임진왜란이 발발하며 일본군에게 한양이 점령되었고, 경복궁, 창덕궁 등 주요 궁궐이 화재로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 선조는 천도를 결정하고 의주로 피난하였다. 1592년 5월 일본군에게 점령된 한양은 이어진 혼란 속에서 경복궁, 창덕궁 등 주요 궁궐이 화재로 소실되는 일을 겪었다.

1637

[병자호란으로 도시 파괴 및 재건 시작]

병자호란 등 잇따른 전란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이후 서서히 재건되기 시작했다.

이후 1637년에도 병자호란 등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1887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 도입]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가 처음으로 도입되며 한성에 근대적인 기반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한말 시기 인천, 부산 등의 개항지와 더불어 한성에도 근대적인 기반시설의 도입이 이뤄졌다.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를 처음으로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처음 개통하였고,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895

[한성 도시개조사업 실시]

고종 황제가 한성 도시개조사업을 실시하여 기존의 좁은 도로를 확장하고 위생을 개선하는 등 근대국가의 수도로 변모를 꾀했다.

1896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정부와 함께 기존 법궁인 경복궁과 종각을 중심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경운궁을 중심으로 공간구조의 개편을 꾀하는 '한성 도시개조사업'을 실시하였다. 1895년부터 1903년까지 실시된 이 사업은 기존의 좁은 도로를 확장 정비하여 원활한 교통로 확보와 위생 개선을 동시에 꾀하였으며, 근대국가의 수도로 거듭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1899

[서울 최초 단선 전차 개통]

서대문~청량리 구간에 단선 전차가 처음으로 개통되며 근대적인 교통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처음 개통하였다.

1900

[한강 가교 준공]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

[한성전화소 시내전화교환업무 시작]

한성전화소가 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며 통신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1902년에는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908

[일본군에 의한 성곽 일부 철거 시작]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기 시작하며 도성의 역사성과 공간구조 훼손이 시작되었다.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가 개설되어 나갔다.

1910

[일제강점기,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에 의해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되고 경기도에 예속되어 지위가 격하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으며, 조선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청사를 경성부에 두었다.

1911

[경성부 하부기관 개편]

경성부의 하부기관이 성 안 5부, 성 밖 8면으로 구분되었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2

[서울 최초 택시 운행 시작]

서울에서 택시가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택시가 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다.

1914

[면 제도 폐지 및 행정구역 편입]

면 제도가 폐지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 등 일부 면들이 경성부에 편입되었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뀌었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19

[서울 공업 시초 및 택시 회사 설립]

영등포에 방직공장이 세워지며 서울 공업의 시초가 되었고, 최초의 택시 회사도 설립되었다.

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최초의 택시 회사가 설립되었다.

1926

[택시 미터기 도입]

택시에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1926년에는 택시에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1927

[역대 최저 기온 기록]

서울의 역대 최저 기온인 -23.1°C를 기록하였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C이다.

1928

[서울 최초 버스 운행 시작]

'경성 부영버스'라는 이름으로 버스가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36

[경성부 행정구역 대규모 확장]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경성부에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²로 크게 확장되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²로 확장되었다.

1943

[경성부 구제 실시]

구제가 실시되어 중구, 종로구 등 7개 구로 경성부가 나뉘었다.

1943년에는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서울특별시)·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 등 7개 구로 나누었다.

1945

[광복 후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칭]

광복과 함께 일제강점기 경성부라는 명칭을 벗고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6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며 독자적인 행정 지위를 확보했다.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 이는 군정법률 제106호 서울특별시의설치에 따른 조치였다.

1949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로 승격 및 시역 확장]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특별시 지위에 오르고 고양군 뚝도면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km²로 확장되었다.

이는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다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 km²로 확장되었다.

1950

[한국 전쟁 발발 및 서울 점령]

한국 전쟁 발발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여 임시 수도로 삼았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를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6월 2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점령하여 임시수도로 삼았다.

[대한민국, 서울 수복]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하였다.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서울 수복하였으나,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다.

1951

[서울 재수복]

1.4 후퇴 이후 다시 서울을 수복하고 1953년 정전 협정까지 대한민국의 점령지로 남았다.

1951년 3월 14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한 뒤 1953년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까지 대한민국의 점령지로 남았다.

1962

[서울특별시 시역 대규모 확장 및 시장 지위 격상]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서울시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되고 경기도 일부가 편입되며 시역이 593.75km²로 대규모 확장되었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같은해 경기도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 km²가 되었다. 이 때 이른바 강남 등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 대거 편입되었고, 한강 이북에서는 동북부의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가 편입되었다.

1968

[밤섬 폭파 및 여의도 개발, 전차 퇴역]

밤섬이 폭파된 후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었고, 1899년부터 운행하던 노면 전차가 없어지면서 서울 대중교통에 큰 변화가 있었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가 1968년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

1970

[서울에 콜택시 등장]

콜택시가 등장하며 택시 서비스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였다.

[잠실 개발계획 시작]

잠실 개발계획이 시작되어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74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며 서울에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가 열렸다.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1982

[한강종합개발사업 시작]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되어 둔치 조성,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건설 등 대대적인 한강 정비가 이루어졌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1986

[서울 인구 1천만명 육박]

서울 인구가 979만 8542명으로 처음으로 1천만명에 육박했다.

1986년에 인구 9,798,542명에 달하였다.

[한강 유람선 운행 시작]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이 시작되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

1988

[서울 올림픽 개최 및 인구 1천만명 돌파]

서울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어 세계적인 도시로 위상을 높였다.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1988년 하계 올림픽, 2000년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의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와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서울 인구가 1,028만 6503명으로 1,000만명을 넘어선 해이기도 하다.

1992

[서울 인구 정점 달성 후 감소 시작]

서울의 인구가 1,099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정부의 인구 분산 정책과 신도시 개발 등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9만 명, 인구밀도 19,522명/km²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일산·평촌·중동과 산본 등의 1기 신도시가 개발되었고 이 마저도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 판교, 동탄 등 2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에 의한 것이다.

2004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 및 환승 할인제 도입]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이 이루어져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며 대중교통 시스템이 크게 개선되었다.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2005

[서울, 중국어 공식 표기 변경]

서울시가 서울의 공식 중국어 표기를 기존의 '한청(汉城)'에서 발음이 유사한 '셔우얼(首尔)'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함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나,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 대신에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 이전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汉城)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셔우얼(首尔)'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2006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시작]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서울시 서브 슬로건 《Soul of Asia》 지정]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서울시 서브 슬로건을 《Soul of Asia》로 지정했다.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쎄-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인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2007

[인천국제공항철도 1단계 구간 개통]

인천국제공항철도의 1단계 구간(인천국제공항역~김포공항역)이 개통되어 인천공항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첫 철도 교통 시대가 열렸다.

2007년 3월 23일 첫 운행을 시작한 공항철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국제공항(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철도이다. 2007년 3월 1단계 구간(인천공항1터미널역~김포공항역, 37.6km)을 개통했다.

[한강 수상택시 운행 시작]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 수상택시 운행이 시작되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운항정지 중이다.

2010

[인천국제공항철도 서울역 구간 개통]

인천국제공항철도 2단계 구간(김포공항역~서울역)이 개통되어 서울역까지 공항철도 접근이 가능해졌다.

2010년 12월 29일 2단계 구간(김포공항역~서울역, 20.4km)을 개통했으며 이어 공덕역(2011.11.30)과 청라국제도시역(2014.06.21), 영종역(2016.3.26), 인천공항2터미널역(2018.1.13)을 개통함으로써 인천국제공항철도 건설사업이 마무리됐다.

2016

[서울 인구 1천만 명 선 아래로 하락]

서울 인구가 28년 만에 1,000만 명 선 아래로 떨어지며 역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서울의 높은 전세로 인해 서울의 인구순유출 속도가 한국 도시들 중 가장 빠르며,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의 인구가 28년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7

[서울로 7017 개장]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역고가도로를 공원으로 재조성한 '서울로 7017'이 개장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서울역고가도로를 공원으로 재조성하여 2017년 5월 20일에 개장한 공원이다.

2018

[역대 최고 기온 기록]

서울의 역대 최고 기온인 39.6°C를 기록하였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C이다.

2020

[코로나19 및 장마로 인한 미세먼지 감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로 인해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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