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 (동오)

군인, 역사적 인물, 동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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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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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역사적 인물, 동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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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기부터 동오 시대의 중요한 군인으로, 손견, 손책, 손권을 섬기며 동오 건국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군 태수를 31년간 겸하며 지방 통치에 헌신했고, 검소하고 충성심 깊은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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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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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주치 출생]

주치, 단양군 고장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주치(朱治)는 156년에 단양군 고장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는 군리(君理)이며, 후에 동오의 중요한 군인이 됩니다.

188

[손견과 함께 모반 토벌]

손견을 따라 장사, 영릉, 계양에서 일어난 모반을 토벌하고 공적을 세워 도위를 대행했습니다.

손견이 장사, 영릉, 계양에서 일어난 주조와 소마의 모반을 토벌하는 데 참여하여 공적을 세웠고, 손견의 추천으로 도위를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190

[반동탁연합군 종군 및 황건당 토벌]

반동탁연합군에 손견을 따라 종군하여 양인 전투에서 동탁 군대를 무찌르고 낙양에 입성했습니다. 독군교위를 대행했으며, 서주목 도겸을 도와 황건당을 토벌했습니다.

초평 원년(190년), 반동탁연합군에 손견을 따라 종군하여 양인 전투에서 동탁의 군대를 무찌르고 낙양에 입성했습니다. 손견의 추천으로 독군교위를 대행하고 동쪽으로 가 서주목 도겸을 도와 황건당을 토벌했습니다.

194

[손책 보좌 및 오군 태수 겸직]

손견 사후 손책을 보좌하며 강동 평정을 권유했습니다. 마일제의 속관으로 오군도위에 승진했고, 손책 일가를 보호했으며 오군태수 허공을 격파하고 오군태수를 겸직했습니다.

손견이 전사하자 손책을 보좌하며 원술에게 의탁했습니다. 원술의 정령이 이지러진 것을 보고 손책에게 군사를 이끌고 강동을 평정하도록 권유했습니다. 태부 마일제에게 속관으로 초빙되어 오군도위로 승진했습니다. 곡아에 있던 손책의 일가를 모셔와 보호했으며, 전당으로 진격하여 오군태수 허공을 유권에서 격파하고 오군태수를 겸직했습니다. 이 일은 흥평 원년(194년)에 일어났다고 추측됩니다.

197

[손권 효렴 천거]

손권이 15세가 되었을 때, 주치가 손권을 효렴으로 천거하여 그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손권이 15세가 되자 주치가 손권을 효렴으로 천거하여 그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0

[손권의 주군 인정]

손책 사망 후 장소 등과 함께 어린 손권을 주인으로 모시며 동오의 초기 안정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건안 5년(200년), 손책이 죽자, 장소 등과 함께 어린 손권을 주군으로 모시며 동오의 초기 안정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2

[오군태수 및 부의장군 임명, 동남쪽 평정]

손권의 표로 오군태수에 임명되었고 부의장군을 겸임하며 누, 유권, 무석, 비릉을 봉읍으로 받았습니다. 소수 민족과 산월을 토벌하고 황건 잔당을 사로잡아 베어 죽이는 등 동남쪽 평정에 공헌했습니다.

건안 7년(202년), 손권의 추천으로 오군태수에 임명되었으며 부의장군을 겸임하고, 누, 유권, 무석, 비릉을 봉읍으로 받아 대관을 두어 통치하게 했습니다. 소수 민족이나 산월을 토벌했으며, 손권을 도와 동남쪽을 평정시켰고, 황건 잔당 진패, 만병 등을 사로잡아 베어 죽였습니다.

207

[손익의 성품 교정 시도]

손권의 아우 손익의 급한 성질을 자주 꾸짖고 도의로 회유하며 바로잡으려 노력했습니다.

손권의 아우 손익의 성질이 기쁘고 노여워하기를 쾌하게 초급하여, 주치가 자주 꾸짖고 자주 도의로 회유하며 바른 길로 이끌고자 했습니다.

208

[조조 남하 시 손분 설득]

조조의 남하에 두려워 아들을 볼모로 바치려던 예장태수 손분을 설득하여 뜻을 철회시켰습니다.

조조가 형주 자사 유종의 항복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오자, 예장태수 손분은 두려워하여 아들을 볼모로 바치고자 했습니다. 주치가 이를 듣고 직접 손분을 찾아가 이를 그만두게 설득했고, 손분은 주치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222

[비릉후 봉해지고 손권의 극진한 예우]

비릉후에 봉해지고 오군태수를 계속 겸직했습니다. 손권이 왕이 되어서도 직접 주치를 영접하고 향연을 베푸는 등 깊은 존경을 표했습니다.

황무 원년(222년), 비릉후에 봉해졌으며 오군태수를 계속 겸직했습니다. 손권은 왕이 되어서도 직접 주치를 영접하였고 서로 인사하고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주치의 관리들까지도 손권을 직접 알현하는 것이 허용될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223

[안국장군 임명 및 고향 이봉]

안국장군에 임명되고 고향 고장으로 이봉되었습니다. 손권은 그가 항상 근왕의 일을 근심하는 것을 찬탄했으며, 오군 태수로 31년간 재직하며 헌신했습니다.

황무 2년(223년), 안국장군에 임명되었고, 고향 고장으로 이봉되었습니다. 손권은 주치가 항상 근왕의 일을 근심하는 것을 찬탄했으며, 오군 태수로 장기간 재직하면서 공족 자제들과 군의 유력 호족들을 많이 출사시켜 군에는 관리가 항상 수천 명 있었고, 매년 끊이지 않는 공물을 바치는 등 31년간 오군에 헌신했습니다.

[고향 단양 반란 진무]

고향 단양에 빈번한 반란을 진무하기 위해 고장현에 둔치고 산월을 진무했습니다. 1년 후 오군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 단양에 반란이 빈번했으며, 또 늙어서 고향을 연모하였으므로 표를 올려 고장현에 둔치고 산월을 진무했습니다. 고을 부로들과 교류하며 1년을 지내고, 다시 오군으로 돌아왔습니다.

224

[주치 사망]

주치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 주재가 작위를 이었습니다.

황무 3년(224년), 주치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 주재가 아버지의 작위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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