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현 (1791년)
조선 문신,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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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조선 문신, 관료
조선 후기 문신. 1822년 문과 급제 후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등 요직을 거치며 풍양 조씨의 핵심 인물로 부상. 형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 말년에는 과거 부정 사건 연루 및 안동 김씨의 탄핵으로 좌천되고 파면되어 거제도에 안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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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연혁
1791
풍양 조씨 조득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경길, 호는 성재·우당이다.
1822
182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거치며 조만영, 조인영, 조병구 등과 함께 풍양 조씨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1841
형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사헌부 대사헌 등을 거쳐 1841년에는 호조판서, 이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했다.
1844
1844년 좌참찬이 되었으나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평안도 관찰사로 좌천되었다.
1847
1847년 광주 유수로 있다가 안동 김씨의 탄핵을 받아 파면된 뒤 거제도에 안치되었다.
1849
1849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다시 탄핵당해 거제도에 재차 안치되었다.
파란만장한 관직 생활을 마치고 1849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