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 (촉한)
중국 연호, 촉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24:25
촉한 소열제 유비의 첫 번째 연호입니다. 후한 멸망 후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며 선포했습니다. 221년부터 223년까지 3년간 사용되었습니다. 한나라 정통성 계승 의지를 담은 중요한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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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유비, 건안 연호 지속 사용 결정]
유비는 후한 헌제가 연호를 바꾼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전의 건안 연호를 계속 사용하며 한나라의 정통 계승자임을 천명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당시 한중왕이었던 유비는 후한 헌제의 연호 개원 선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후한의 변화를 부정하고 한 왕조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며, 촉한 건국 전까지 이전 연호를 변함없이 사용했다.
[후한 멸망 및 조위 건국]
후한 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함으로써 멸망하고, 조비가 위나라를 건국하여 황제에 즉위하며 중국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후한 헌제가 조비에게 황위를 선양하고 퇴위하면서 후한 왕조가 멸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비는 위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연호를 황초로 개원했다. 이는 삼국 시대의 주요 세력 중 하나인 조위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221
[촉한 건국 및 장무 연호 사용 개시]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하며 '장무' 연호를 선포했다. 이는 후한의 멸망 이후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새로운 국가를 세웠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한중왕 유비는 마침내 촉한을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했다. 그는 새로운 국가의 출발을 알리며 '장무' 연호를 선포했는데, 이는 조위가 세워진 이후 한나라의 정통을 계승하는 독립적인 국가를 수립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로써 중국 삼국 시대의 또 다른 주요 세력인 촉한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223
촉한 소열제 유비가 사용하던 장무 연호가 3년간의 기간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이후 촉한은 건흥 연호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