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석 (1822년)

관료, 조선 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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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은 1822년에 태어나 조선 시대에 감역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이규의 양자가 되어 이호석으로 개명했으며, 후에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이 되는 이완용의 친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이호석은 아들 이완용에게 많은 교육을 시켰고, 1867년 이완용을 이호준의 양자로 보낸 후 1888년에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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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

[이호석의 출생]

이호석이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백현리에서 아버지 이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는 이석준으로 불렸습니다.

1822년 3월 16일, 이호석은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백현리에서 아버지 이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석준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습니다.

1830

[이규에게 양자로 입양 및 개명]

자식이 없던 이규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성장 후 이호석으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이호석은 어렸을 때 이석준으로 불렸으며, 자식이 없던 이규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성장 후에 현재 이름인 이호석으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어린 시절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43

[영산 신씨와의 결혼 및 장남 출산]

신석우의 딸인 영산 신씨와 결혼하여 장남 이면용을 두었으며, 이후 차남 이완용을 포함해 2남 3녀를 두었습니다.

이호석은 신석우의 딸인 영산 신씨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들의 슬하에는 장남 이면용(1843년생)이 있었고, 이후 차남 이완용(1858년생)을 포함한 2남 3녀를 두었습니다. 결혼 시기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장남의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대략적인 시기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1858

[차남 이완용의 출생]

이호석의 차남이자 훗날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이 되는 이완용이 태어났습니다.

이호석과 영산 신씨 사이에서 차남 이완용이 태어났습니다. 이완용은 후에 대한제국의 제2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내게 되는 인물입니다.

1867

[이완용의 이호준 양자 입적]

이호석은 많은 교육을 시켰던 차남 이완용을 32촌 지간이자 감찰공파 후손인 이호준의 양자로 보냈습니다.

이호석은 1867년, 차남 이완용에게 많은 교육을 시킨 후, 32촌 지간의 족형인 이호준이 이완용을 양자로 데려가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부터 이완용은 이호준의 양자가 되어 자랐습니다.

1880

[조선의 감역 역임]

이호석은 조선에서 감역(監役)을 지냈습니다. 그는 의붓아버지인 이규의 배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호석은 말년이 되고 나서 조선에서 감역(監役)이라는 관직을 지냈습니다. 그가 관직을 수행하는 동안 의붓아버지인 이규의 가르침과 배움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임직 시기는 불확실하나, 생애 후반에 해당합니다.

1888

[이호석의 사망]

이호석은 향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 후에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호석은 1888년 2월 10일 향년 66세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지는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로 추정됩니다. 사망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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