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축구 선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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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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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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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올라운더' 선수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K리그와 J리그에서 다수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2년 FIFA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당시 월드컵 올스타에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 췌장암 4기 판정에도 불구하고 팀을 끝까지 이끌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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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한국 축구의 만능 플레이어, 세상에 태어나다]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능 플레이어 유상철이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에서 태어나 서울응암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타고난 승부 근성과 노력으로 '유비', '한일전의 사나이' 등 다양한 별명을 얻으며 성장했습니다.

1994

[K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 선정]

K리그에서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수비수 부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다재다능함을 입증하는 첫 번째 기록이었습니다.

프로 데뷔 첫 해부터 K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인정받으며, 향후 포지션 파괴자로서의 면모를 예고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프로 무대 데뷔, 울산 현대 입단]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K리그 명문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다재다능함은 이미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태극마크를 달다, 국가대표팀 데뷔]

미국과의 친선 경기를 통해 성인 국가대표팀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후 1994년 아시안 게임을 기점으로 국가대표 핵심 선수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밟았으며, 이후 그의 활약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같은 해 아시안 게임 일본전에서는 동점 골을 기록하며 역전승에 기여했습니다.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국가대표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의 초기 국가대표 활동에 대한 중요한 평가였습니다.

1994년 아시안 게임 출전 등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인정되어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5

[울산 현대, 아디다스 컵 우승 견인]

소속팀 울산 현대의 아디다스 컵 우승에 기여하며 프로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며 울산 현대의 아디다스 컵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96

[울산 현대의 K리그 우승 주역]

울산 현대가 K리그 정상에 오르는 데 큰 공헌을 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 첫 K리그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팀의 주축 선수로서 K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1998

[FA컵 준우승으로 시즌 마무리]

울산 현대 소속으로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K리그 득점왕과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FA컵 우승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K리그 득점왕과 베스트 11 동시 석권]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활약하다 공격수로 기용되어 그 해 K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또한 미드필더 부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1998년 FIFA 월드컵을 마치고 울산으로 복귀한 후 공격진 부진에 고심하던 고재욱 감독의 지시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변신, 득점왕을 차지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는 그의 다재다능함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FIFA 세계 올스타에 이름 올리다]

그 해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FIFA 세계 올스타에 선정되며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 선수로서 매우 영예로운 기록이었습니다.

K리그에서의 압도적인 활약과 월드컵에서의 투혼이 높이 평가되어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첫 골, 투혼의 벨기에전 동점골]

1998년 FIFA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후반 26분, 하석주의 프리킥을 받아 투혼의 헤딩 동점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네덜란드전 대패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벨기에전에서 소중한 동점골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왼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한 이 골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1999

[J리그 진출, 새로운 도전 시작]

J리그 명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하며 일본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K리그를 넘어 일본 J리그로 무대를 옮겨 자신의 기량을 증명하며 한국 선수들의 일본 진출 시대를 열었습니다.

2000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J리그 준우승 기여]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소속으로 J리그 준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일본 무대에서도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이며 팀을 우승 문턱까지 이끌었습니다.

[국가대표팀 아시안컵 3위 달성]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AFC 아시안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1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 또 다른 J리그 팀 경험]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새로운 팀에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요코하마에서 가시와로 팀을 옮겨 꾸준히 J리그 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2002

[2002 FIFA 월드컵 올스타 선정]

2002 FIFA 월드컵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 선수로는 이례적인 영광이었습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핵심 멤버로서 수비와 공격을 오가며 팀에 헌신한 그의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울산 현대의 K리그 준우승 견인]

극적인 복귀와 함께 맹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K리그 우승은 놓치고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팀의 우승을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아쉽게도 K리그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K리그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울산 현대 복귀 후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K리그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포지션에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2년 시즌 후반기 울산에서의 경이로운 득점력을 바탕으로 공격수로서 최고의 인정을 받으며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월드컵 첫 승을 이끈 폴란드전 쐐기골]

2002 FIFA 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전에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쐐기골을 터뜨리며 대한민국 축구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이끌었습니다. 이 골은 4강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폴란드를 상대로 귀중한 골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역사적인 첫 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활약은 이 대회 올스타 선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2002 월드컵 4강 주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2002 FIFA 월드컵 4강 진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맹호장을 받았습니다.

[친정팀 울산 현대 극적인 복귀]

J리그 시즌 종료를 앞두고 친정팀 울산 현대로 복귀하며 팀의 K리그 우승을 위한 8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팀의 우승을 위해 남은 경기에서 전승과 득점을 약속하며 돌아온 유상철은 실제 8경기에서 9골을 넣는 기적 같은 활약을 펼쳐 울산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부산 아이콘스전에서는 혼자 4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2003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J리그 우승 견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소속으로 J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서 활약했습니다.

재이적 후 첫 시즌 만에 팀을 J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일본 무대에서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습니다.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재합류]

울산에서의 짧은 복귀를 마치고 다시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하며 일본 무대에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2003년 6월, 다시 한번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유니폼을 입고 J리그 정복에 나섰습니다.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 획득]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03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대표팀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동아시아 정상에 오르며 국제 대회 우승 경험을 추가했습니다.

2004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수상]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에서 프로스펙스 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 축구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았습니다.

J리그에서의 활약과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J리그 2연패 달성]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소속으로 J리그 2연패를 달성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2년 연속 J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일본 슈퍼컵 우승]

소속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가 일본 슈퍼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J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일본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2005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 기록]

울산 현대 소속으로 삼성 하우젠 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K리그 우승과 더불어 컵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아쉽게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울산 현대의 K리그 우승 견인]

울산 현대의 K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통산 두 번째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노련한 경기 운영과 변함없는 기량으로 팀을 이끌며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또 하나의 우승을 추가했습니다.

[세 번째 울산 현대 복귀, 유종의 미를 향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다시 한번 친정팀 울산 현대로 복귀했습니다.

K리그 우승을 위해 울산으로 돌아온 그는 팀의 핵심 선수로서 활약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

2006

[울산 현대의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기여]

비록 선수로는 은퇴했지만, 팀의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에 기여하며 마지막 우승 기록을 추가했습니다.

은퇴 시점과 겹치지만, 그의 헌신과 리더십이 팀의 슈퍼컵 우승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울산 현대, A3 챔피언스컵 우승]

선수 은퇴 후에도 소속팀 울산 현대의 A3 챔피언스컵 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국제대회 첫 우승을 함께 했습니다.

선수 은퇴 직후였지만, 그의 영향력은 팀의 A3 챔피언스컵 우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라운드의 전설, 선수 생활 마감]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상무와의 K리그 홈 개막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했습니다. 선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울산 현대에서 장식하며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과 함께 박수를 받았습니다.

24년간의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는 감동적인 은퇴식에서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태극마크와의 공식 작별, 국가대표 은퇴식]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경기 하프타임에 국가대표 공식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A매치 124경기 출전, 18골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징적인 선수로 10년 넘게 활약했던 그는 이 날 공식적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2009

[새로운 시작, 지도자 생활 첫 발]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 초대 감독을 맡으며 선수 생활에 이어 지도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은퇴 후 해설가와 방송 활동을 병행하다 고향 강원도에서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부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2011

[프로 구단 감독으로 부임, 대전 시티즌 지휘]

왕선재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 감독에 부임하며 처음으로 프로팀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승부조작 사태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리그 최하위를 면하는 등 팀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2

[대전 시티즌과의 동행 마무리]

2012년 시즌 후 대전 시티즌과의 재계약에 실패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시즌 동안 대전을 이끌며 1부 리그 잔류를 성공시켰으나, 아쉽게도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14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 취임]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임명되며 다시 한번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대학 축구 감독으로서 2년 연속 1, 2학년 대학 축구대회 준우승, 전국체육대회 대학부 준우승 등 좋은 성적을 거두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17

[5년 만의 K리그 복귀, 전남 드래곤즈 감독 취임]

5년 만에 K리그 무대로 돌아와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었습니다.

오랜만에 K리그 감독으로 복귀하여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팀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순탄치 않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8

[성적 부진으로 전남 드래곤즈 감독직 사퇴]

성적 부진으로 인해 팀이 강등권까지 떨어지자 결국 구단에 사임 의사를 밝히고 감독직에서 내려왔습니다.

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전남은 강등되었습니다.

2019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 잔류를 향한 도전]

K리그1 최하위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의 K리그 잔류를 위한 어려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위기에 빠진 인천을 구원하기 위해 감독으로 부임, 강등 위기의 팀을 잔류시키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췌장암 4기 판정, 병마와의 싸움 시작]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활동 중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팬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긍정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밝혔습니다.

감독으로서 팀의 잔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갑작스럽게 췌장암이라는 큰 병마와 마주하게 되었으나, 흔들림 없는 의지로 투병 생활과 팀 지도를 병행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팀은 그의 헌신으로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2020

[췌장암 투병을 위한 감독직 사임 및 명예 감독 선임]

췌장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사임했습니다. 인천 구단은 그의 헌신을 기리며 명예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힘든 투병 중에도 팀을 잔류시킨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감독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항암 치료에 집중하며 축구 팬들과 꾸준히 소통했습니다.

2021

[한국 축구의 별, 영원한 안식에 들다]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49세로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전 국민에게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투병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충청북도 충주시 진달래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되었으며,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과 투혼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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