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 (회남왕)
황족, 학자, 제후왕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19:06
전한의 황족이자 학자로, 반역죄로 죽은 회남여왕 유장의 아들이다. 부릉후를 거쳐 회남왕에 봉해졌으며, 저서로 《회남자》를 남겼다. 중앙집권 정책에 반발하다 결국 모반 혐의를 받아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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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C
고제의 서자 회남여왕 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장의 아들들 중 유안, 유발, 유사, 유량이 후작에 봉해지면서 유안은 부릉후가 되었다.
죽은 유량을 제외한 유장의 아들들이 모두 왕으로 봉해졌고, 유안은 회남왕이 되었다.
[오초칠국의 난 가담 불발]
오초칠국의 난이 발발하자 반란에 가담하려 했으나, 회남상(승상)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한나라의 구원군 덕분에 회남국은 온전할 수 있었다.
경제 3년에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유안은 가담하려 했지만, 승상이 스스로 장수가 되기를 청하여 왕의 뜻을 거스르고 한나라 편을 들었기 때문에 가담하지 못했다. 한나라에서 회남국에 구원군을 보낸 덕분에 회남국은 반란 후에도 온전할 수 있었다.
[황위 계승 야망과 세력 확장]
황제에게 태자가 없던 시기, 유안은 무안후 전분과 친교를 맺고 차기 황제 후보로 언급되자 기뻐하며 뇌물을 주고 무기를 준비하며 사적인 세력을 키웠다.
유안은 한나라에 입조했을 때 태위 무안후 전분과 친하게 지냈다. 전분이 당시 황제에게 태자가 없으니 유안이 다음 황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크게 기뻐했다. 이에 무안후에게 뇌물을 바치는 한편, 장강과 화이허 일대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무기를 준비하며 군과 국에 뇌물을 뿌려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이는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하던 한나라 조정과 대립하는 행위였다.
[모반 혐의와 자살]
중앙집권 정책에 반발하는 빈객들과 교류하며 모반 음모 혐의를 받게 된 유안은 결국 자살했으며, 그의 봉지는 몰수되었다.
무제 시대의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에 반발하는 이들이 회남왕 유안의 궁정에 많았다. 이 때문에 유안은 모반 음모 혐의를 받게 되었고, 결국 자살했다. 이후 그의 봉지인 회남국은 폐지되고 몰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