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홍

항해자, 탐험가, 외교가, 제독, 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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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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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자, 탐험가, 외교가, 제독, 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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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항해자, 탐험가, 외교가, 선단 제독이다. 정화의 부관으로 7차례 대항해에 동행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정화 사후 귀국 선단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난징 수비를 맡아 행정 및 건설 업무를 총괄했다. 후대에는 바다와 화교를 지키는 '왕삼보'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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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제1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정화의 부관이자 정사태감 직책으로 제1차 대항해에 참여하여, 항해 지식이 부족했던 정화를 대신해 항로와 함대 관리를 주도했다.

왕경홍은 1405년부터 1407년까지 이어진 명나라의 제1차 서양 대항해에 정화의 부관으로서 정사태감 직책으로 참여했다. 그는 항해 지식과 경험이 일천했던 정화를 대신하여 항로와 함대를 관리하는 등 선단의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지역을 탐험했다.

1407

[제2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및 참파 사행]

제2차 정화의 대항해에 참여하여 참파(점성)에 사행(使行)하는 등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왕경홍은 1407년부터 1409년까지 진행된 명나라의 제2차 서양 대항해에 정화의 부관으로 참여했다. 이 원정 중 그는 참파(Champa)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는 등 명나라의 대외 관계 증진에 기여했다.

1409

[제3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제3차 정화의 대항해에 부관으로서 참여하여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지역의 탐험과 외교 활동을 이어갔다.

왕경홍은 1409년부터 1411년까지 진행된 명나라의 제3차 서양 대항해에 참여했다. 그는 정화의 선단에서 계속해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해상 탐험을 돕고 명나라의 위상을 알리는 외교 활동을 펼쳤다.

1413

[제4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제4차 정화의 대항해에 참여하여 아시아 각지의 나라들과 교류하며 명나라의 해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왕경홍은 1413년부터 1415년까지 진행된 명나라의 제4차 서양 대항해에 정화의 부관으로 참여했다. 그는 계속해서 항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선단의 운영에 기여하며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오가는 무역 및 외교 활동을 지원했다.

1417

[제5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제5차 정화의 대항해에 참여하여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이르는 장거리 항해를 함께하며 명나라의 원정 범위를 넓혔다.

왕경홍은 1417년부터 1419년까지 진행된 명나라의 제5차 서양 대항해에 정화의 부관으로 참여했다. 이 원정을 통해 선단은 아프리카 동해안에까지 도달하며 명나라의 해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21

[제6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제6차 정화의 대항해에 참여하여 이전 원정에서 각지에 파견된 사신들의 귀국을 돕는 역할을 수행했다.

왕경홍은 1421년부터 1422년까지 진행된 명나라의 제6차 서양 대항해에 참여했다. 이 원정의 주요 목적은 이전 원정에서 각국에 파견되었던 명나라 사신들을 데리고 귀국하는 것이었으며, 왕경홍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인솔 및 관리 역할을 수행했다.

1424

[남경수비 직책 임명 및 활동]

황제의 명에 따라 남경(南京)을 진수(鎭守)하는 남경수비 직책을 맡아 궁전 수리, 대보은사 중수 등 다양한 행정 및 건설 업무를 총괄했다.

1424년, 왕경홍은 명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남경(南京)의 수비를 책임지는 남경수비 직책에 임명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궁전 수리, 대보은사 중수, 북경으로의 물자 운송 감독, 남경 주씨 왕실 생필품 배급, 관병 선발 및 훈련 등 광범위한 행정 및 군사 업무를 수행하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1431

[제7차 정화의 대항해 참여 및 선단 귀국]

마지막 제7차 정화의 대항해에 참여했으며, 정화가 고리(캘리컷)에서 사망하자 선단을 이끌고 명나라로 성공적으로 귀국했다.

왕경홍은 1431년부터 1433년까지 진행된 명나라의 마지막 제7차 서양 대항해에 참여했다. 이 원정 중 정화가 고리(오늘날 인도의 캘리컷)에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왕경홍은 남은 선단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명나라로 귀국시키는 중책을 수행하며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1434

[왕경홍 사망]

78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수마트라로 향하던 제8차 항해 중 난파되어 사망했다는 설과 1437년 이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그의 시신은 자바 세마랑에 묻혔다.

왕경홍은 1434년 혹은 1437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78세의 나이로 수마트라로 향하는 제8차 항해를 주도하던 중 난파되어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자바 세마랑(삼보롱)에 묻혔다. 현지 화교들은 그를 '왕삼보'라 칭하며 해상과 화교들을 지켜주는 존재로 믿고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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