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랭피크 리옹
축구 클럽, 스포츠 구단, 프로팀
최근 수정 시각 : 2025-11-06- 18:25:57
프랑스 리옹을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 올랭피크 리옹은 1950년 창단되었습니다. 프랑스 리그 최다인 7연속 리그 1 우승 기록을 보유하며 2000년대 초반 프랑스 축구계를 지배했습니다. 유소년 육성 능력과 열정적인 팬덤으로도 유명하며, 최첨단 홈구장과 유럽대항전 준수한 성과를 통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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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라싱 클뤼브 드 리옹 창단]
종합 스포츠 구단인 리옹 올랭피크 위니베르시테르의 산하 구단으로 '라싱 클뤼브 드 리옹'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창단되었습니다.
올랭피크 리옹은 종합 스포츠 구단인 리옹 올랭피크 위니베르시테르의 산하 구단으로 1896년에 '라싱 클뤼브 드 리옹'이라는 명칭으로 창단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긴 역사의 시작점이 됩니다.
1950
[올랭피크 리옹 공식 창단]
종합 스포츠 구단 내 프로와 아마추어 회원들 간의 불화로 인해 당시 감독 펠리스 루오와 지지자들이 독립하여 '올랭피크 리옹'을 공식 창단했습니다.
구단 내 아마추어와 프로 회원들 간의 불화가 발생하자, 당시 감독이었던 펠리스 루오와 그의 지지자들은 독립하여 자체 구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50년 8월 3일, 알베르 트리야 박사를 비롯한 다수의 지지 속에 '올랭피크 리옹'이 공식적으로 창단되었습니다.
[창단 첫 경기 승리]
구단 창단 후 첫 경기를 치러 파리-샤랑통을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초대 감독은 오스카르 에세레르였습니다.
초대 감독 오스카르 에세레르의 지휘 아래, 올랭피크 리옹은 1950년 8월 26일 3,000명의 관중 앞에서 CA 파리-샤랑통과 경기를 펼쳐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구단의 첫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습니다.
1951
[2부 리그 우승 및 1부 리그 승격]
창단 2년 만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승격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이후 1953-54 시즌에 잠시 강등된 것을 제외하고는 10여 년간 1부 리그에 잔류했습니다.
구단 창단 2년차에 올랭피크 리옹은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 승격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이후 리옹은 1953-54 시즌에 2부 리그로 잠시 내려간 것을 제외하고는 10여 년 동안 프랑스 1부 리그에 잔류하며 입지를 다졌습니다.
1955
[유니폼 디자인 변경 (V자 무늬)]
구단 수뇌부가 유니폼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하의를 파란색으로 변경하고 상의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V자 무늬를 추가했습니다.
1955년부터 올랭피크 리옹의 수뇌부는 유니폼의 하의를 파란색으로 바꾸고 상의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셰브론(V 무늬)을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초기 유니폼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1961
[유니폼 디자인 변경 (가로 줄무늬)]
유니폼에서 V자 무늬를 없애고 빨간색과 파란색의 가로 줄무늬를 넣는 새로운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1961년, 올랭피크 리옹은 유니폼에서 V자 무늬를 없애고 대신 빨간색과 파란색의 가로 줄무늬를 상의에 둘러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1964
[첫 쿠프 드 프랑스 우승]
뤼시앙 자세롱 감독의 지휘 아래 1963-64 시즌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서 FC 지롱댕 드 보르도를 2-0으로 꺾고 구단 역사상 첫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뤼시앙 자세롱 감독의 지도 아래 올랭피크 리옹은 1963-64 시즌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서 FC 지롱댕 드 보르도를 2-0으로 완파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쿠프 드 프랑스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리옹의 첫 주요 트로피였습니다.
1967
[두 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
루이 온 감독의 지휘로 1966-67 시즌 FC 소쇼-몽벨리아르를 3-1로 꺾고 통산 2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뤼시앙 자세롱 감독의 후임인 루이 온 감독은 1966-67 시즌에 FC 소쇼-몽벨리아르를 3-1로 꺾고 올랭피크 리옹에 통산 2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1970
[유니폼 디자인 변경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본래의 흰색으로 되돌리고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를 가슴 왼쪽에 세로로 그리는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이 디자인은 1975-76 시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1970-71 시즌을 기점으로 올랭피크 리옹은 유니폼을 본래의 흰색으로 되돌리고,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는 그대로 두되 방향을 바꿔 가슴 왼쪽에 세로로 그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이 디자인은 1975-76 시즌까지 유사한 형태로 활용되었습니다.
1973
[세 번째 쿠프 드 프랑스 및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구단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에메 미뇨 감독의 지휘 아래 1972-73 시즌 FC 낭트를 2-1로 이기고 통산 3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우승했습니다.
올랭피크 리옹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에메 미뇨 감독의 임기 중, 구단은 1972-73 시즌에 FC 낭트를 2-1로 꺾고 통산 3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와 함께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도 우승하며 1970년대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1976
[유니폼 디자인 변경 (올 레드)]
유니폼 디자인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어 상의, 하의, 양말을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했습니다. 이 붉은 유니폼은 1989-90 시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976년, 올랭피크 리옹은 유니폼 디자인에 큰 변화를 주어 상의, 하의, 양말을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했습니다. 이 붉은 유니폼은 1989-90 시즌까지 구단의 주 유니폼으로 사용되었으며, 1977-78, 1978-79 시즌에는 감색 세로 줄무늬를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1984
[제를랑 경기장 재단장]
홈구장인 제를랑 경기장이 르네 가기 건축가의 주도로 재단장되었습니다. 장 부앵 스탠드와 장 조레 스탠드가 새로 세워졌습니다.
1984년, 올랭피크 리옹의 홈구장인 제를랑 경기장은 르네 가기 건축가의 지휘 아래 약간의 손을 보았습니다. 이 재단장을 통해 장 부앵 스탠드와 장 조레 스탠드가 새로 건설되었습니다.
1987
[장-미셸 올라스 구단 인수 및 'OL - 유럽' 프로젝트 시작]
론 주의 유명 사업가 장-미셸 올라스가 올랭피크 리옹을 인수하며 'OL - 유럽' 프로젝트를 통해 구단을 리그 1의 강호이자 유럽대항전 경쟁력 있는 구단으로 변모시키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1987년 6월 15일, 론 주의 유력 사업가 장-미셸 올라스가 올랭피크 리옹을 인수했습니다. 그는 'OL - 유럽'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통해 4년 안에 구단을 유럽대항전에서 경쟁력 있는 구단으로 거듭나고 리그 1 무대에 복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의 인수는 리옹의 역대급 성공 시대를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89
[리그 2 우승 및 1부 리그 복귀]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지휘 아래 1부 리그 복귀에 성공했으며, 1988-89 시즌 리그 2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장-미셸 올라스 회장 인수 후 첫 감독인 레몽 도메네크의 임기 1년차에 올랭피크 리옹은 1988-89 시즌 리그 2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올라스 회장의 파격적인 지원과 함께 구단은 빠른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1990
[유니폼 디자인 변경 (흰색 회귀)]
1989-90 시즌 이후, 구단은 다시 상의, 하의, 양말의 색상을 흰색으로 바꾸며 본래의 흰색 유니폼으로 회귀했습니다.
1989-90 시즌 이후, 올랭피크 리옹은 붉은 유니폼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상의, 하의, 양말을 모두 흰색으로 바꾸며 구단 고유의 흰색 유니폼 디자인으로 돌아왔습니다.
1995
[리그 1 준우승 및 유니폼 디자인 변경]
장 티가나 감독이 이끌던 1994-95 시즌 리그 1 준우승을 차지하며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1995-96 시즌을 앞두고 유니폼 중앙에 세로 줄무늬를 추가했습니다.
장 티가나 감독의 지휘 아래 올랭피크 리옹은 1994-95 시즌 리그 1 준우승이라는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1995-96 시즌을 앞두고 구단은 유니폼에 다시 세로 줄무늬를 추가했는데, 이번에는 줄무늬가 가슴 왼쪽이 아닌 중앙을 지나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1997
올랭피크 리옹은 1997년에 UEFA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국제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시작점이었습니다.
1998
[제를랑 경기장 전좌석 개조]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FIFA 규정에 맞춰 제를랑 경기장이 전좌석 경기장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용 인원이 40,500명으로 감소했습니다.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FIFA 규정에 맞춰 제를랑 경기장이 전좌석 경기장으로 재단장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쪽 및 남쪽 스탠드가 완전히 철거되고 육상 트랙도 없어졌으며, 최대 수용 인원은 40,5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2001
[첫 쿠프 드 라 리그 우승]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쿠프 드 라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은 2000년대 초반 리옹의 황금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2001년, 올랭피크 리옹은 구단 역사상 첫 쿠프 드 라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은 프랑스 축구계에서 리옹이 강력한 구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002
[첫 리그 1 우승 및 7연패 황금기 시작]
2001-02 시즌에 구단 역사상 첫 리그 1 우승을 달성하며 프랑스 축구 최다인 7연속 리그 우승의 대기록을 세우는 황금기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젊은 스타 선수들을 대거 배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2001-02 시즌, 올랭피크 리옹은 사상 첫 리그 1 우승을 거두었고, 이어서 프랑스 역대 최다인 7연속 리그 우승(2001-02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이라는 대기록을 썼습니다. 이 황금기 동안 마이클 에시엔, 주니뉴, 카림 벤제마 등 프랑스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도 명성을 떨치는 기대주들을 양성하며 프랑스 축구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또한 2002-03 시즌부터는 장-미셸 올라스 회장의 주도로 1970년대 스타일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복원했습니다.
2003
2003년, 올랭피크 리옹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우승하며 프랑스 축구 최강팀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는 7연속 리그 우승 기간 중 이룬 많은 업적 중 하나였습니다.
2004
2004년, 올랭피크 리옹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프랑스 리그 1에서의 독주를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 리옹은 프랑스 축구계에서 거의 무적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5
2005년, 올랭피크 리옹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또다시 우승하며 프랑스 축구에서의 압도적인 지배력을 계속해서 보여주었습니다.
2006
2006년, 올랭피크 리옹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프랑스 리그 1 7연패라는 대기록을 향한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2007
[피스컵 및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피스컵에서 우승하며 국제 대회에서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또한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도 우승했습니다.
2007년, 올랭피크 리옹은 피스컵에서 우승하며 국제 대회에서의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또한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도 우승하며 국내에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리그 1 7연패의 마지막 해였습니다.
2008
[쿠프 드 프랑스 및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우승하며 프랑스 축구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재확인했습니다. 이로써 리그 1 7연패의 대기록을 마무리했습니다.
2008년, 올랭피크 리옹은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우승하며 프랑스 국내 대회에서의 강력한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이 해는 역사적인 리그 1 7연패의 대기록을 완성한 해이기도 합니다.
[신구장 'OL 랑' 건설 계획 발표]
장-미셸 올라스 회장이 'OL 랑'이라는 프로젝트 명칭으로 60,000석 규모의 신구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신구장은 데신-샤르피외 지역에 최첨단 스포츠 시설과 호텔, 레저 센터 등을 포함할 예정이었습니다.
2008년 9월 1일, 장-미셸 올라스 올랭피크 리옹 회장은 'OL 랑'이라는 프로젝트 명칭으로 60,000석 규모의 신구장을 건립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리옹 교외인 데신-샤르피외의 50헥타르 부지에 최첨단 스포츠 시설, 호텔 두 동, 레저 센터, 그리고 상업 및 사업용 오피스텔 시설을 포함하는 대규모 계획이었습니다.
[신구장 건립 계획 승인]
약 1억 8천만 유로 규모의 신구장 건립 계획이 주 정부, 론 주 지방 의회, 리옹 광역시 정부 등의 승인을 통과했습니다.
2008년 10월 13일, 약 1억 8천만 유로 규모의 신구장 건립 계획이 주 정부, 론 주 지방 의회, 리옹 광역시 정부, SYTRAL, 그리고 데신-샤르피외 시정부의 승인을 통과했습니다. 리옹 시 공동체로부터 6천만에서 8천만 유로의 예산을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2009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 12위]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에서 12위를 기록하며 2007-08 시즌 연이윤이 1억 5,570만 유로로 발표, 세계적인 부자 구단 반열에 올랐습니다.
2009년 2월, 올랭피크 리옹은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에서 12위의 순위에 올랐습니다. 2007-08 시즌의 연이윤이 1억 5,570만 유로(€155.7M)로 나타나며, 세계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재정적 기반을 갖춘 구단임을 입증했습니다.
[베트클리크 스폰서 계약]
파리에 본사를 둔 베트클리크 도박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유니폼에 광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7월 22일, 올랭피크 리옹은 파리에 본사를 둔 베트클리크 도박사와 계약하여 유니폼에 광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온라인 도박 금지법으로 인해 국내 경기에서는 로고가 없는 유니폼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아디다스와 장기 스폰서 계약]
독일 스포츠용품 회사 아디다스와 10년 계약을 발표하며 2010-11 시즌부터 아디다스 유니폼을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8월 7일, 올랭피크 리옹은 독일 스포츠용품 회사 아디다스와 10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계약에 따라 2010-11 시즌을 기점으로 5백만 유로를 깔고 제품 판매에 따른 로열티 비용도 추가적으로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OL 랑, 유로 2016 후보 경기장 선정 보도]
프랑스의 '레키프'지에 의해 'OL 랑'이 프랑스의 UEFA 유로 2016 유치를 위한 12개 경기장 중 하나로 선정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2009년 9월 22일, 프랑스의 유력 스포츠지 '레키프'는 'OL 랑'이 프랑스의 UEFA 유로 2016 유치를 위한 12개 경기장 중 하나로 선정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는 신구장 건설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신호였습니다.
[리옹, 유로 2016 개최 도시로 공식 선정]
프랑스 축구 연맹(FFF)이 리옹을 UEFA 유로 2016 본선을 치를 도시 중 하나로 공식 선정했습니다.
2009년 11월 11일, 프랑스 축구 연맹(FFF)은 리옹을 UEFA 유로 2016 본선을 치를 도시 중 하나로 공식 선정했습니다. 이는 올랭피크 리옹의 신구장 프로젝트에도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2010
[UEFA 챔피언스리그 첫 4강 진출]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며 유럽 무대에서의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09-10 시즌, 올랭피크 리옹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성공하며 유럽 무대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프랑스 축구 왕조로서의 위상을 국제적으로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폰서 계약]
일본 비디오게임 회사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플레이스테이션 로고를 유니폼 정면에 부착했습니다. 이 계약은 2009-10 시즌 말까지 유효했습니다.
2010년 1월 15일, 올랭피크 리옹은 일본의 비디오게임 회사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플레이스테이션 로고를 유니폼 정면에 부착했습니다. 이 계약은 2009-10 시즌 말까지 유효했습니다.
2012
[쿠프 드 프랑스 및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2012)]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각각 우승하며 다시 한번 국내 대회 2관왕을 달성했습니다.
2012년, 올랭피크 리옹은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각각 우승하며 국내 대회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지속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2년 8월, 올랭피크 리옹은 대한민국의 자동차 제작사 현대자동차와 2년 계약을 맺고 2012-13 시즌부터 리그 1 경기에서 베트클리크를 대신해 유니폼 정면에 현대 로고를 광고하게 되었습니다.
2016
[중국 투자자의 지분 매입]
중국의 개인 주주가 올랭피크 리옹 그룹의 지분 20%를 1억 유로에 매입하며 구단의 국제적인 투자 유치를 이끌었습니다.
2016년, 중국의 개인 주주가 올랭피크 리옹 그룹의 지분 20%를 1억 유로(€100M)에 매입했습니다. IDG 캐피털 파트너스가 재정을 맡았으며, 이는 구단의 국제적인 투자 유치와 성장을 위한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파르크 올랭피크 리요네 개장]
데신-샤르피외에 위치한 59,186석 규모의 최첨단 홈구장 '파르크 올랭피크 리요네'가 공식 개장했습니다. 개막 경기에서 트루아를 4-1로 완파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2016년 1월 9일, 데신-샤르피외에 위치한 59,186석 규모의 최첨단 홈구장 '파르크 올랭피크 리요네'가 공식 개장했습니다. 올랭피크 리옹은 신구장 개막 경기에서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등의 활약에 힘입어 트루아를 4-1로 완파하며 새로운 홈구장 시대를 성공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019
[사업 확장: 농구단 및 NWSL 구단 인수 발표]
OL 그룹이 프랑스 농구단 ASVEL의 지분을 매입하고, 미국 내셔널 위민스 사커 리그(NWSL) 축구단 레인 FC의 89.5% 지분 매입을 발표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2019년, OL 그룹은 인근 ASVEL 농구단의 남자부 25%와 여자부 10% 지분을 매입하며 스포츠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내셔널 위민스 사커 리그(NWSL) 축구단 레인 FC의 89.5% 지분 매입을 발표하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면모를 강화했습니다.
2020
[유럽대항전 진출 실패 및 챔피언스리그 4강 재진출]
2019-20 시즌 리그 1을 7위로 마치며 24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0년 만에 다시 4강에 진출하며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9-20 시즌, 올랭피크 리옹은 시즌을 부진하게 시작하여 코로나 사태로 조기 종료된 리그 1을 7위로 마쳤습니다. 이로 인해 구단은 24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하는 아쉬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유벤투스와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10년 만에 다시 대회 4강에 진출하며 유럽 무대에서의 강팀 면모를 재확인했습니다.
[OL 레인으로 명칭 변경]
NWSL 사무국의 승인을 받아 레인 FC 지분 매입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며, 몇 주 후 레인 FC는 'OL 레인'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2020년 1월, NWSL 사무국의 승인으로 레인 FC 지분 매입 절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몇 주 만인 3월 6일, OL은 레인 FC를 'OL 레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2022
[존 텍스터의 구단 인수]
35년간 구단을 이끌었던 장-미셸 올라스로부터 미국의 사업가 존 텍스터가 구단의 지분을 인수하며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2022년 10월, 1987년부터 35년간 올랭피크 리옹을 이끌며 황금기를 만들어낸 장-미셸 올라스 회장으로부터 미국의 사업가 존 텍스터가 구단의 지분을 인수하며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이는 리옹 구단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2024
[재정 문제로 인한 잠정 강등 결정]
프랑스 국가 재정 관리 감독청(DNCG)이 리옹의 불안정한 재정 구조를 이유로 2024-25 시즌 종료 후 잠정 강등을 결정하고 연봉 상한선 및 영입 금지 조치를 부과했습니다.
2024년 11월 15일, 프랑스 축구의 재정 감시 기관인 프랑스 국가 재정 관리 감독청(DNCG)은 올랭피크 리옹의 불안정한 재정 구조와 늘어나는 부채를 이유로 2024-25 시즌이 끝난 후 구단을 잠정 강등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연봉 상한선과 영입 금지 조치까지 부과되며 구단은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