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반 (삼국지)
군인, 장군, 삼국시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17:47
후한 말기부터 촉한 시대의 군인. 자는 원웅. 오광의 아들이자 오의의 족제이다. 유비 시대 이릉 전투에 참전하여 활약. 유선 대에 표기장군에 오르고 면죽후에 봉해졌다. 제갈량의 4차 북벌에서 위연, 고상과 함께 사마의를 대파하는 공을 세웠다. 주로 오의에 버금가는 관직을 역임하며 촉한의 주요 장수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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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이릉 대전에 참전하여 대패]
삼국지연의에서 장비의 부장으로 등장하며, 장비 사후 유비의 오나라 정벌군 선봉이 되어 이릉에서 손환을 포위했으나, 육손의 화공으로 대패하고 후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오반이 장비의 부장으로 활약하다가, 장비가 부하에게 살해당하자 유비가 오나라를 정벌할 때 선봉장으로 참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는 장남, 풍습과 함께 이릉에서 손환을 포위하는 등 활약하지만, 결국 이릉 대전에서 육손의 화공 계략에 크게 패배하여 후퇴하는 비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실제 역사 기록과는 다른 소설적 설정이다.
[이릉 전투 종군 및 수군 지휘]
유비의 지휘 아래 이릉 전투에 종군하여 풍습과 함께 오나라 장수 이이를 격파했다. 진식과 함께 수군을 이끌고 오나라 군사를 도발했으나, 육손의 간파로 무위로 돌아갔다.
유비 시대에 영군(營軍)을 지냈다. 장무 2년(222년), 이릉 전투에 참전하여 풍습과 함께 오나라의 장수 이이 등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 같은 해, 진식과 함께 수군을 지휘하며 유비의 명령에 따라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평지에서 오나라 군사를 도발했으나, 육손이 유비의 계책을 간파하고 움직이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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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이 즉위한 이후, 오반은 군부 내에서 꾸준히 승진을 거듭했다. 마침내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오르고 가절(加節)의 권한을 받았으며, 면죽후(綿竹侯)에 봉해지면서 촉한 내 주요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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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4차 북벌 참전 및 사마의 격파]
제갈량의 제4차 북벌에 참전하여 위연, 고상과 함께 위나라의 사마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건흥 9년(231년), 제갈량의 네 번째 북벌에 참여했다. 이 전투에서 오반은 위연, 고상 등과 함께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의가 이끄는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중요한 공적을 세웠다.
[이엄 탄핵 표문 연명]
제갈량이 이엄의 탄핵을 요청하는 상소문에 독후부와 후장군으로서 연명했다. 이는 당시 촉한 고위 관리들의 정치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건흥 9년(231년), 제갈량이 촉한의 중요한 대신인 이엄을 탄핵할 것을 요청하는 표문(상소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했다. 이때 오반의 공식 직책은 독후부(督後部)와 후장군(後將軍)이었으며, 작위는 안락정후(安樂亭侯)였다. 이 사건은 촉한 내부의 권력 다툼과 제갈량의 입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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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제갈량 6차 북벌 중 전사]
삼국지연의에서 후장군이 되어 제갈량의 6차 북벌에 참여, 오의와 함께 위수를 공격하다가 사마의의 계략에 빠져 장호와 악침에게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오반이 후장군으로서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6차 북벌)에 참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오의와 함께 위수를 공격하려던 중 사마의의 간파와 계략에 휘말려 위나라 장수 장호와 악침에게 전사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실제 역사 기록에서 오반의 사망 시기와 원인이 불명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