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유다 왕국 왕, 성경 인물, 종교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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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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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은 유다 왕국의 제4대 왕으로, 아버지 아사 왕의 뒤를 이어 여호와 신앙을 굳건히 하고 우상 숭배를 배격했습니다. 그는 국력을 강화하고 주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유다 왕국을 강성하게 이끌었습니다. 아람과의 전투에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암몬 등과의 전쟁에서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재판관을 임명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등 개혁 정책을 펼쳐 정의를 세웠으나, 말년에는 이스라엘 왕과의 동맹으로 인한 사업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다윗 왕조의 중요한 통치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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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0C

[여호사밧 탄생]

유다 왕국의 제3대 왕 아사의 아들로, 여호사밧이 탄생했습니다. 그는 후일 유다의 제4대 왕이 됩니다.

유다 왕국의 제3대 왕 아사와 실히의 딸 아주바 사이에서 여호사밧이 기원전 907년경 예루살렘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BC 9C

[여호사밧의 유다 왕국 즉위]

여호사밧은 35세에 유다 왕국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하여 25년간 통치하며, 북이스라엘에 강경책을 펼쳤습니다.

여호사밧은 35세에 유다 왕국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하여 25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며 바른 일을 행했습니다. 즉위 후 이스라엘 왕국에 강경정책을 펴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배치하고, 아버지 아사 왕이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에도 수비대를 두었습니다.

[종교 개혁 및 율법 교육]

재위 3년, 여호사밧은 유다 전역에 대신들과 레위인, 제사장들을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고 우상 숭배를 철폐하여 국가의 영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 왕의 본을 따라 바알들을 찾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찾으며 계명을 따라 아세라 목상들과 산당들을 유다에서 없애버렸습니다. 재위 3년에는 벤하일, 오바디야 등의 대신들과 레위인, 제사장들을 유다 성읍에 보내 여호와의 율법서를 가지고 전국을 돌며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여호사밧의 통치를 굳건하게 하시고 부귀와 영광을 주셨습니다.

[유다 왕국의 강대화와 주변국 조공]

여호사밧의 통치 기간 동안 유다 왕국은 강력해져 주변국들이 전쟁을 걸지 못하고 블레셋인과 아라비아인 등이 조공을 바쳤으며, 국고성이 증축되고 정예부대가 배치되었습니다.

유다가 강성해지자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하여 여호사밧에게 전쟁을 걸지 못했습니다. 블레셋인들은 은을, 아라비아인들은 숫양과 숫염소를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예루살렘에는 정예 부대들을 배치하며 군사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아람과의 길르앗 라못 전투 참전]

이스라엘 아합왕과 혼인 관계를 맺은 여호사밧은 아합을 도와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전했으나,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합은 전사하고 유다군도 철수했습니다.

큰 부귀와 영광을 얻은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아합왕이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공격할 계획을 진행 중이었는데, 아합의 요청에 따라 함께 길르앗 라못 공격에 참전하기로 했습니다. 선지자 미가야가 아합왕이 패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아합왕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출정했습니다. 전투 도중 아합은 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이스라엘군이 철수하자 여호사밧의 유다군도 본국으로 철수했습니다.

[유다 전역 사법 체계 개혁]

길르앗 라못 전투 후 선견자의 비판을 들은 여호사밧은 브엘세바에서 에프라임 산지까지 백성들의 조상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독려하고, 유다 전역에 재판관을 임명하여 사법 체계를 개혁했습니다.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돌아온 여호사밧은 선견자 예후로부터 악한 자를 도운 것에 대한 비판을 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다시 브엘세바에서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이르는 백성들을 둘러보며 조상들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독려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전역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들을 임명하고, 예루살렘에도 레위인들과 사제들, 이스라엘 족장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했습니다.

[암몬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하자 여호사밧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연합군이 자멸하여 유다는 막대한 전리품을 얻고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모압인들과 암몬인, 마온인들이 여호사밧에게 싸움을 걸어 엔게디까지 진격했습니다. 여호사밧은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고 유다 온 백성에게 금식령을 공포했습니다. 간구 기도 중 레위인 야하지엘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말한 대로, 유다군은 노래하는 자들을 앞세워 찬송하며 행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암몬과 모압, 세일 산 주민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이 서로 쳐죽이게 하여 패하게 했습니다. 유다군은 너무 많은 전리품을 얻어 3일이나 걸려 거두었고, 4일째 브라가 골짜기에서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방 나라들이 유다를 두려워했고, 여호사밧의 나라는 태평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의 동맹과 상선 건조 실패]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고 타르시스로 갈 상선을 만들었으나, 선지자의 예언대로 배들이 부서지며 사업이 실패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고 에시온게벨에서 타르시스로 가 금을 가져오는 상선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마레사 출신의 예언자 엘리에제르가 아하시야와의 동맹이 문제가 되어 더 이상 타르시스로 갈 수 없다고 예언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상선들이 다 부서져 타르시스로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죽음]

유다 왕국의 제4대 왕 여호사밧이 세상을 떠나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선왕 아사의 본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바른 일만을 행했지만, 산당만은 철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기원전 848년경 혹은 기원전 849년경에 여호사밧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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