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전투

한국 전쟁, 전투, 지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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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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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전투, 지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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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초기, 미군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자 대전에서 벌인 지연전. 전술적으로는 미군 큰 손실과 사단장 딘 소장 포로. 전략적으로는 증원 부대 전개 시간 확보,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 기여. 3.5인치 로켓포로 북한군 T-34 전차 최초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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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북한군 한강 도하 및 딘 소장 대전 도착]

한국 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한강을 도하하기 시작했고, 미 제24보병사단 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이 대전 비행장에 도착하여 중부전선 방어 임무를 맡았습니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인 7월 3일, 북한군이 한강을 넘어 도하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날, 미 제24보병사단의 윌리엄 F. 딘 소장이 대전 비행장에 도착하여 중부전선의 방어 지휘를 맡으며 미군의 초기 방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벌어질 대전 전투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미 제24보병사단, 오산에서 첫 전투]

오산에서 미 제24보병사단이 북한군과 첫 전투를 치렀습니다. 이후 평택, 천안 등지에서 지연전을 계속하며 북한군의 남진을 늦췄습니다.

미 제8군 제24보병사단은 7월 5일 오산에서 한국 전쟁 발발 후 북한군과의 첫 전투를 치렀습니다. 이후 평택, 천안, 전의-조치원, 공주-대평리 등지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며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위한 시간을 벌었습니다. 이 지연전의 일환으로 미군은 7월 16일 밤부터 17일 사이에 금강 방어선에서 철수하여 대전으로 집결했습니다.

[대전 전투 시작 및 금강 방어선 철수]

미 제24보병사단 제34연대가 갑천 일대에 배치되면서 대전 전투가 시작되었고, 미군은 금강 방어선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대전으로 집결했습니다.

1950년 7월 16일 야간부터 미 제24보병사단 제34연대가 갑천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며 대전 전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7월 16일 밤부터 17일까지, 미군은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에 밀려 금강 방어선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대전으로 집결했으며, 이곳에서 북한군의 추가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 방어선을 형성했습니다.

[워커 중장, 딘 소장에게 대전 사수 명령]

미 제8군 사령관 월튼 H. 워커 중장이 딘 소장에게 7월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여 미 제1기병사단이 영동에 전개할 시간을 확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7월 18일 오전 미 제1기병사단이 포항에 상륙하자, 미 제8군 사령관 월튼 H. 워커 중장은 미 제24보병사단 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에게 최소 2일간 대전을 지켜 증원 부대가 영동 일대에 전개할 시간을 벌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딘 소장은 원래 7월 19일 야간으로 계획했던 철수 시점을 7월 20일 야간으로 하루 연장했습니다. 이 지연 작전은 한국 전쟁의 전세를 바꾸는 데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인민군 공습으로 대전 전투 본격화]

북한 공군 야크 전투기의 공습으로 대전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유성 및 가수원 등지에서 대대적인 포격전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7월 19일 새벽, 북한 공군 야크 전투기 6대가 영동과 대전 비행장을 공습하며 대전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군 방공포병대대는 야크 전투기 2대를 격추시켰고, 미 공군기도 유성과 가수원 일대를 폭격했습니다. 오전에는 인민군 제4사단이 미군 34연대 주진지에 포격을 퍼부으며 대대적인 포격전이 전개되었고, 딘 사단장이 직접 M-24 전차를 지휘하며 독려했으나 가수원 다리 등 주요 지점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인민군 전차 대전 시내 진입 및 시가전]

새벽부터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워 대전 시내로 전면 공격을 감행했고, 미군은 3.5인치 로켓포로 처음으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시가전이 심화되었습니다.

7월 20일 새벽 3시경 유성에서 인민군이 전면 공격을 개시했고, 탱크를 앞세워 32번 국도를 따라 대전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은 서대전네거리 등지에서 3.5인치 로켓포로 인민군 전차를 격파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6시 30분경 전차 3대가 시내에 진입하여 총포탄을 퍼붓기 시작하면서 대전 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되었습니다. 미군 본부중대와 대대 지휘소가 공격받아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보급품 후송 작전 실패 및 딘 소장 실종]

미군은 대전역 보급품 후송 작전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딘 소장은 철수 중 혼란 속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었습니다.

7월 20일 오후, 미군은 대전역에 적재된 탄약 등 보급품을 후방으로 이송하기 위한 '보급품 후송 작전'을 시도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 등 한국인 철도공무원들이 기관차를 운전했지만 북한군의 공격과 동력 부족으로 실패했고, 김재현 기관사는 순직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딘 소장을 비롯한 미군 병력이 대전에서 철수를 시작했으나, 옥천길 차단선에서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받아 차량이 파괴되고 병력이 분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딘 소장은 부상병에게 줄 물을 뜨러 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었습니다.

[미 공군, 대전역 보급품 화차 폭격]

미 공군은 대전역에 남아있던 보급품 적재 화차들을 북한군에게 노획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폭격으로 파괴했습니다. 이는 AP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습니다.

7월 21일 오전 8시, 전날 실패했던 보급품 후송 작전의 잔여물인 대전역 내 보급품 적재 화차들을 북한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미 공군이 폭격으로 파괴했습니다. 이 폭격 소식은 AP통신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되었으며, P-51 머스탱 전투기 조종사는 폭발의 화염을 미국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 비유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회고했습니다.

[딘 소장 북한군에 생포]

7월 20일 실종되었던 딘 소장이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주민들의 밀고로 북한군에 생포되었습니다.

대전 전투 중 실종된 지 36일 만인 8월 25일, 윌리엄 F. 딘 소장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서 주민 한두규와 최종봉의 밀고로 북한군에 생포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전쟁 초기 미군 사단장이 포로가 된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딘 소장은 이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1953년 휴전 후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밀고한 두 한국인에게 관대한 처벌을 부탁하는 탄원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 관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1953

[딘 소장 포로 교환으로 귀환]

한국 전쟁 휴전 후, 북한군에 생포되었던 윌리엄 F. 딘 소장이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했습니다.

1953년 9월 4일, 한국 전쟁 휴전 협정 후 진행된 포로 교환을 통해 북한군에 생포되었던 미 제24보병사단 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이 귀환했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존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귀환 후 딘 소장은 자신을 밀고했던 한국인들에게 관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3

[대전지구 전투, 정부 기념일 지정]

대전지구 전투가 참전유공자법에 따라 정부 기념일로 지정되었고, 매년 전승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2013년 개정된 참전유공자법에 따라 7월 20일이 대전지구 전투의 정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전승행사가 매년 32사단 산하 505여단 주관으로 열리고 있으며, 2016년에는 대전시청 옆 보라매공원에 '대전지구전투 호국영웅비'가 건립되어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는 대전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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