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작곡가)

작곡가, 교육자, 한국 음악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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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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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교육자, 한국 음악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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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양악곡 '학도가'를 작곡한 한국 최초의 양악 작곡가. 숭실중학에서 서양 음악을 배우고, 조양구락부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음악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상준, 홍난파 등 한국 음악계 거장들을 길러낸 교육자이자 수많은 찬송가를 작사한 인물. 애국가 1절 작사자로 한때 알려지는 등 한국 음악사의 중요한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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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

[한국 최초 작곡가, 평양에서 태어나다]

한국 최초의 양악곡 작곡가 김인식이 평양에서 5남 중 넷째로 태어났다.

1885년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5남중에는 넷째로 태어났는데 첫번째 형과는 10살 터울, 두번째 형과는 4살 터울, 세번째 형과는 2살 터울, 남동생과는 3살 터울이라고 한다.

1896

[창가를 통해 서양 음악에 눈뜨다]

기독교 예배당을 다니며 창가를 부르면서 서양 음악을 처음 접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1896년 무렵 기독교 예배당에 다니면서 창가(唱歌)류를 부르면서 서양 음악을 알게 되었다.

1901

[숭실중학에서 음악 재능을 꽃피우다]

숭실중학에 입학하여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 성악, 오르간, 바이올린 등 본격적인 서양 음악 교육을 받았다.

1901년에 숭실중학에 들어가 서양 선교사를 따라다니며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선교사 헌트 부인과 정의여학교 교장이었던 스눅 여사에게서 성악을 배웠다. 그는 선교사의 집에서 악보를 베껴서 공부했고, 성악과 오르간에 이어 바이올린에도 재능을 보였다.

1905

[한국 양악의 새 지평을 열다, '학도가' 작곡]

평양 서문 밖 소학교 연합 운동회를 위해 한국 최초의 양악곡인 '학도가'를 작곡하여 한국 양악사의 기념비적인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1905년 평양 서문 밖 소학교에서 연합 운동회가 열렸을 때 학생들이 부르도록 하려고 학도가(學徒歌)를 작곡하였다. 학도가는 한국 최초의 양악곡으로, 이로써 김인식은 한국 최초의 양악곡 작곡가가 되었다.

1906

[한국 음악 교육의 선구자, 조양구락부에서 후학 양성]

한국 최초의 음악 전문 교육기관인 조양구락부의 유일한 양악부 교사로 초빙되어 이상준, 홍난파 등 한국 음악계 거장들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 최초의 음악 전문 교육기관인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에 단 한 명의 양악부 교사로 초빙되었다. 그곳에서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유명한 사람으로는 이상준, 홍난파 등이 있다. 또한 수많은 기독교 찬송가를 작사하기도 했으며, 서울 종교교회에서는 한국 최초로 합창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1950

[애국가 작사자 논란에 휩싸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문의를 계기로 애국가 1절의 작사자로 한때 알려지는 등 한국의 국가 작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50년대 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애국가의 작사자에 대해 한국 정부에 문의하였는데, 그때 서양 음악이 한국에서 처음 작사·작곡되던 초창기에 활동한 김인식이 애국가를 작곡하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자 이모라는 어떤 사람이 대구에 살고 있던 김인식을 찾아가 묻자, 김인식은 성경에 손을 얹고 대답하기를, 애국가의 1절은 그가 지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1963

[한국 양악의 개척자, 생을 마감하다]

대구의 아들 집에서 향년 79세의 일기로 별세하며 한국 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삶을 마감했다.

1963년 대구의 아들 집에서 향년 7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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