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가수)

가수, 작사‧작곡가, 영화 음악감독,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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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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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작사‧작곡가, 영화 음악감독,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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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서울 출생으로, 6.25 휴전 직후인 1953년 '남원의 애수'로 데뷔한 가수이다. 트로트, 만요, 신민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특히 1960년대에는 국악인들과 교류하며 전통 민요 보급에도 기여했다. 영화 음악감독과 배우로도 활약하며 다재다능한 예술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중동지역 최초 한국연예인 위문공연에 참여하는 등 사회 공헌에도 힘썼으며,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며 대중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24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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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가수 김용만 출생]

서울시 종로구 종로5가에서 가수 김용만이 출생했다.

1933년 1월 22일, 일제강점기 경성부 종로방(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에서 태어났다.

1953

[「남원의 애수」로 가요계 데뷔]

6.25 휴전 직후 작곡가 김화영과 인연이 닿아 「남원의 애수」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악기점을 하던 친구를 통해 작곡가 김화영과 인연이 닿아 「남원의 애수」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 곡은 그에게 숱한 히트곡의 시작점이 되었다.

1958

[영화 <님은 가시고> 주제가 참여]

영화 <님은 가시고>의 주제가 「을불의 노래」를 불렀다.

영화 <님은 가시고>의 주제가인 「을불의 노래」를 부르며 영화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만요 가수로 활동 시작]

1950년대 후반부터 만요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며 장르 스펙트럼을 넓혔다.

1950년대 후반부터 만요 가수로 영역을 넓혀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1960

[신민요 활동 및 국악 보급 기여]

1960년대에 신민요 가수로 활동하며 국악인들과 교류, 전통민요 보급에 힘썼다.

1960년대에 신민요 가수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서도소리 이은관, 경기소리 이호연 등 국악인들과 교류하며 전통 민요의 대중화 및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1963

[KBS <토정비결> 주제가 참여]

KBS 라디오 드라마 <토정비결>의 주제가 「토정비결」을 불렀다.

1963년, KBS 라디오 드라마 <토정비결>의 주제가 「토정비결」을 부르며 라디오 드라마 음악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1964

[MBC <적자인생> 주제가 참여]

MBC 라디오 드라마 <적자인생>의 주제가 「적자인생」을 불렀다.

1964년, MBC 라디오 드라마 <적자인생>의 주제가 「적자인생」을 불렀다.

[KBS <회전의자> 주제가 참여]

KBS 라디오 드라마 <회전의자>의 주제가 「회전의자」를 불렀다.

1964년부터 1965년까지 방영된 KBS 라디오 드라마 <회전의자>의 주제가 「회전의자」를 불렀다.

1966

[가수분과 위원 임명 및 10대 가수상 수상]

가수분과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한국연예인협회 주최 10대 가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966년, 가수분과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며 음악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았고, 같은 해 한국연예인협회 주최 10대 가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다수의 영화 주제가 참여 및 출연]

영화 <무적자>, <회전의자> 등 5편의 영화 주제가를 부르고 <역전 중국집>, <꿩먹고 알먹고>에 출연하며 영화계 활동을 넓혔다.

1966년에 영화 <무적자>의 주제가 「무적자」, <회전의자>의 주제가 「회전의자」, <남자는 절개 여자는 뱃장>의 주제가 「남자는 절개 여자는 뱃장」을 불렀으며, <역전 중국집>과 <꿩먹고 알먹고>에서는 출연과 함께 주제가를 불렀다.

[MBC <이 세상 멋대로> 주제가 참여]

MBC 라디오 드라마 <이 세상 멋대로>의 주제가 「이 세상 멋대로」를 불렀다.

1966년, MBC 라디오 드라마 <이 세상 멋대로>의 주제가 「이 세상 멋대로」를 불렀다.

1967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 음악감독 데뷔]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를 통해 영화 음악감독으로 데뷔했고, 영화 <역전 부자>에 출연하여 주제가 「역전 부자」를 불렀다.

1967년,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를 통해 영화 음악감독으로 데뷔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또한 영화 <역전 부자>에 출연하고 주제가 「역전 부자」를 불렀다.

1968

[영화 음악감독 활동 지속]

영화 <男>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강산에 꽃이 피네>의 음악에 참여, <가요반세기>에 출연했다.

1968년, 영화 <男>의 음악감독을 맡아 「사나이, 찾아온 고향」을 선보였으며, 영화 <강산에 꽃이 피네>의 음악 「쾌지나 칭칭나네」에 참여했다. 또한 영화 <가요반세기>에 출연했다.

1969

[영화 <오부자>, <북경열차> 음악감독]

영화 <오부자>와 <북경열차>의 음악감독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69년, 영화 <오부자>의 음악감독을 맡아 「애인을 찾는 사냥꾼」, 「고백」 등 여러 곡을 선보였고, <북경열차>의 음악감독도 맡았다.

[KBS <설마루장사> 주제가 참여]

KBS 라디오 드라마 <설마루장사>의 주제가 「설마루장사」를 불렀다.

1960년대 후반, KBS 라디오 드라마 <설마루장사>의 주제가 「설마루장사」를 불렀다.

1970

[영화 및 라디오 드라마 출연]

영화 <문화영화 노래잔치>와 <예비군 팔도사나이>에 출연했고, KBS 라디오 드라마 <정으로 산다>의 주제가 「정으로 산다」를 불렀다.

1970년에 영화 <문화영화 노래잔치>에서 「오봉산 타령」을 부르고 <예비군 팔도사나이>에 출연했으며, KBS 라디오 드라마 <정으로 산다>의 주제가 「정으로 산다」를 불렀다.

1971

[영화 <문화영화 노래는 즐거워> 출연]

영화 <문화영화 노래는 즐거워>에 출연하여 「밀양아리랑」을 불렀다.

1971년, 영화 <문화영화 노래는 즐거워>에 출연하여 「밀양아리랑」을 불렀다.

1972

[영화 <우리의 팔도강산> 출연]

영화 <우리의 팔도강산>에 출연했다.

1972년, 영화 <우리의 팔도강산>에 출연했다.

1973

[영화 및 라디오 드라마 참여]

영화 <문화영화 노래실은 금수강산>에 출연하여 「오봉산 타령」을 불렀고, MBC 라디오 드라마 <익살도 좋을시고>의 주제가 「익살도 좋을시고」를 불렀다.

1973년, 영화 <문화영화 노래실은 금수강산>에 출연하여 「오봉산 타령」을 불렀으며, MBC 라디오 드라마 <익살도 좋을시고>의 주제가 「익살도 좋을시고」를 불렀다.

1978

[중동지역 최초 한국연예인 위문공연]

중동지역 최초 한국연예인 위문단 일원으로 위문공연을 진행했다.

1978년, 중동지역 최초로 파견된 한국연예인 위문단에 참여하여 재외 동포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는 그의 사회 공헌 활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된다.

1990

[러시아 사할린 동포 위문공연]

러시아 사할린 동포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참여했다.

1990년, 러시아 사할린 동포 위문공연에 참여하여 음악으로 동포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1991

[카자흐공화국 한인동포 위문공연]

카자흐공화국 한인동포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참여했다.

1991년, 카자흐공화국 한인동포 위문공연에 참여하여 현지 동포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쁨을 선사했다.

1992

[베를린 한인회 초청 독일 순회공연]

베를린 한인회 초청으로 독일 순회공연을 가졌다.

1992년, 베를린 한인회의 초청으로 독일 순회공연을 진행하며 유럽 지역 동포들과 교류했다.

2000

[국무총리 표창 수상]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2000년,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며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1

[가수의 날 공로상 수상]

제35회 가수의 날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35회 가수의 날 기념 행사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가수로서의 오랜 활동과 기여를 인정받았다.

2005

[「남원의 애수」 노래비 설립]

전북 남원시 남원관광단지 내에 데뷔곡인 「남원의 애수」 노래비가 세워졌다.

2005년 5월 6일, 전북 남원시 남원관광단지 내에 김용만의 대표곡이자 데뷔곡인 「남원의 애수」를 기리는 노래비가 설립되었다.

2009

[예술인 스승님으로 추대]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제9회 예술인 스승님으로 추대되었다.

2009년, 한국연예예술인협회에서 주최한 제9회 예술인 스승님 추대식에서 후배 예술인들의 귀감이 되는 '스승님'으로 추대되었다.

2024

[가수 김용만 별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2024년 9월 27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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