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군인)
군인, 정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6:3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이자 정치인. 국방위원회 위원, 인민무력부장, 인민군 총참모장 등을 역임하며 김정일 정권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했다. 김일성 사후 반 김정일 움직임과 제6군단 쿠데타 진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군부 내 최고위직인 원수 계급을 수여받았다.
1936
1936년 3월 4일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훗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부의 주요 인물로 활약하게 된다.
1970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거쳐 소련의 프룬제 군사 아카데미에서 고등 군사 교육을 이수하며 조선인민군 주요 인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1986
1986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북한 정치의 핵심 기구에 진입했다.
1992
1992년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하여 군사적 역량과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1994
[김정일 체제 공고화 기여 및 국방위원회 위원 임명]
김일성 사후 혼란기에 반(反) 김정일 운동을 성공적으로 억제하며 김정일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이 공로로 국방위원회 위원에 임명되며 북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발생한 반(反) 김정일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진압하여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에 임명되는 등 북한 권력의 핵심 요직에 오르게 되었다.
[인민군 제6군단 쿠데타 진압]
인민군 제6군단의 쿠데타 시도를 진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김정일의 지시로 쿠데타 주도자들을 체포하며 정권의 안정을 수호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4년, 조선인민군 제6군단에서 쿠데타 조짐이 보이자 김정일의 명을 받아 현지에 파견되었다. 그는 정치지도원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주도 세력을 함경남도 리원 비행장으로 유인하여 체포하는 데 성공하며 북한 정권의 위기를 막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995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역임 시작]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어 12년간 인민군의 주요 작전과 지휘를 총괄하며 북한 군사력의 핵심을 이끌었다.
1995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어 2007년까지 약 12년간 인민군의 전반적인 작전 계획, 지휘, 훈련 등을 총괄하며 북한 군사력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7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선출]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며, 북한 국방 정책 결정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4월 1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어, 국가 최고 권력 기구의 핵심 구성원이 되었다.
2007년 4월 18일 조선인민군 원수 계급을 수여받으며, 북한 군부 내에서 최정점에 도달한 인물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009
[인민무력부장 임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 부장으로 임명되어 2012년까지 북한의 군사 행정과 국방력을 총괄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2009년 4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 부장으로 임명되어 2012년 4월 12일까지 해당 직책을 수행하며, 북한의 국방력과 군사 시스템을 총괄하는 핵심 책임자가 되었다.
2010
[정치적 위상 약화]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승격이 불발되고 리영호에게 권력이 밀리며,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직위에 머물게 되었다.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리영호에게 권력의 일부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도 하급 의원직에 머물며 그의 정치적 위상이 다소 약화되었다.
2018
2018년 8월 16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북한은 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렀으며,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심 군사 및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