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1934년)

영화감독, 대학 교수, 교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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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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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김기덕 감독은 66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맨발의 청춘'과 '대괴수 용가리'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한국 대중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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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탄생]

일제강점기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영화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1934년 9월 29일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중요한 감독이자 교육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1952

[6.25 전쟁 참전 및 전역]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 미공군부대 통역관으로 근무하며 군 복무를 마치고 예비역 중사로 전역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 미공군부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며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중사로 전역했습니다. 이는 그의 젊은 시절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1955

[영화계 입문]

전창근 감독의 영화 '불사조의 언덕'에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무산된 후, 그의 연출부에서 일하며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전창근 감독의 영화 '불사조의 언덕'에서 통역장교 역할을 제안받았으나 신장 문제로 출연이 무산되었습니다. 대신 전창근 영화의 연출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1956

[한국연예주식회사 편집기사 활동]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 전속 편집기사로 일하며 영화 제작의 기술적 측면을 익혔습니다.

1956년부터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 전속편집기사로 일하기 시작하여 영화 편집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1961

[감독 데뷔]

'5인의 해병'을 통해 성공적으로 감독으로 데뷔하며 총 66편의 영화 연출 경력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61년 영화 '5인의 해병'으로 감독 데뷔를 하여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총 66편의 영화를 연출하게 되는 긴 감독 경력의 첫걸음이었습니다.

1962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수상]

제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1962년 제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영화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1964

[대표작 '맨발의 청춘' 연출]

한국 청춘 영화의 전설이 된 '맨발의 청춘'을 연출하며 신성일, 엄앵란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1964년 김기덕 감독은 한국 청춘 영화의 대표작이자 기념비적인 작품인 '맨발의 청춘'을 연출했습니다.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 엄앵란 배우와 함께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67

[한국 최초의 괴수 영화 '대괴수 용가리' 연출]

한국 최초의 괴수 영화로 꼽히는 '대괴수 용가리'를 연출하여 특수효과와 SF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967년 김기덕 감독은 한국 최초의 괴수 영화로 알려진 '대괴수 용가리'를 연출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특수효과를 선보이며 한국 영화에 SF 장르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1973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부위원장 활동]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영화인들의 권익 보호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영화계의 발전과 영화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77

[영화감독 은퇴]

'영광의 9회말'을 마지막으로 영화감독 생활을 은퇴하며 총 66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77년 영화 '영광의 9회말'을 끝으로 영화감독 활동을 은퇴했습니다. 그는 1961년 데뷔 이후 약 16년간 66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한국 영화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978

[서울예술대학 교수 임용]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교수로 임용되어 후학 양성에 매진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1977년 감독 은퇴 후, 1978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래 한국 영화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1988

[신민주공화당 특보위원 활동]

신민주공화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 분야에도 참여했습니다.

1988년 신민주공화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으로 위촉되어 정치 분야에 잠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95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 활동]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 예술 행정 분야에 기여했습니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 예술 분야의 행정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습니다.

1998

[서울예술대학 학장 취임]

서울예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여 교육자로서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교육자로서 학교 운영과 예술 교육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0

[최우수예술인 영화 부문 수상]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최우수예술인 영화 부문 상을 수상하며 그의 예술적 업적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2000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최우수예술인 영화 부문 상을 수상하여 영화감독이자 예술가로서 그의 공헌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옥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정확한 연도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주요한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2017

[별세]

83세의 나이로 별세하며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2016년 폐암 진단을 받은 후, 2017년 9월 7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한국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기덕 감독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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