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시인)

시인,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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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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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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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48년 월남 후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활동하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문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섬세하고 절제된 언어로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다수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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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김광림 시인 출생]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아버지 김창응과 어머니 김윤복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충남이었으며, 필명 '광림'은 김광균과 김기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1929년 9월 21일, 김광림 시인은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아버지 김창응과 어머니 김윤복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김충남이었으나, 후에 필명 '광림'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필명은 동시대의 저명한 시인인 김광균의 '광'과 김기림의 '림'을 따서 지은 것으로, 그의 문학적 지향과 선배 시인들에 대한 존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원산과 개성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1948

[월남 및 시인 등단]

북한에서 월남하여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부터 신문과 문학지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1948년, 김광림은 북한 지역에서 월남하여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동시에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같은 해부터 그는 여러 신문과 문학지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정식으로 시인으로 등단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문학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50

[한국 전쟁 징집 복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징집되어 복무했습니다. 전쟁의 경험은 그의 시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광림은 군에 징집되어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경험은 시인으로서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와 동시에 새로운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의 초기 시 세계에 반영되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1957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표]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표하며 한국 시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1957년, 김광림은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시인 전봉건, 김종삼과 함께 합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자유세계사에서 발표했습니다. 이 시집은 당시 한국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세 시인의 개성적인 시 세계를 동시에 선보이는 중요한 문학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의 공동 작업은 당시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59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 발표]

첫 단독 시집인 《상심하는 접목》을 백자사를 통해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1959년, 김광림은 그의 첫 단독 시집인 《상심하는 접목》을 백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이 시집을 통해 그는 그만의 독특한 시적 언어와 세계관을 선보이며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는 그가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다수의 시집을 발표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73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풍경〉, 〈갈등〉, 〈0〉 등의 작품으로 제5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하며 한국 시단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973년, 김광림 시인은 그의 대표작들인 〈풍경〉, 〈갈등〉, 〈0〉, 〈壬子〉, 〈乞人〉 등을 통해 제5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상은 그의 꾸준한 작품 활동과 한국 시단에 대한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2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작]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내며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92년, 김광림은 한국 문학계의 중요한 단체인 한국시인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1994년까지 2년간 회장직을 수행하며 한국 시단의 발전과 시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협회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한국 시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2024

[김광림 시인 별세]

한국 시단의 큰 별이었던 김광림 시인이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타계는 한국 문단에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24년 6월 9일, 한국 현대 시의 큰 축이었던 김광림 시인이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타계는 한국 문단에 큰 아쉬움을 남겼으나, 그가 남긴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은 영원히 독자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시 창작에 매진하며 한국 시 문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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