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빈 (고려)

고려 문신, 원나라 관료, 한국계 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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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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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신, 원나라 관료, 한국계 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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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원나라를 오가며 활약한 문신. 충숙왕과 충혜왕의 폐위 및 억류 시 변호하여 복위에 큰 공을 세웠다. 고려에서 우정승에까지 올랐으며, 당성 부원군에 진봉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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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8

[홍빈의 탄생]

고려의 문신 홍빈이 태어났다.

고려의 문신 홍빈이 1288년에 태어났다.

1310

[원나라에서의 관직 시작]

선조들의 공으로 원나라에서 대도로 패주 동지, 송강부 판관, 도수감경력, 대상예의원 경력 등 여러 관직을 지내며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홍빈은 선조들이 원나라 대도에서 숙위한 공으로 원나라에서 대도로 패주 동지, 송강부 판관, 도수감경력, 대상예의원 경력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1330

[충숙왕 복위 공헌 및 고려 관직 임명]

충숙왕이 무고로 폐위되어 원나라에 억류되자, 홍빈이 왕을 변호하는 데 힘썼다. 이후 충숙왕이 복위하자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동성이문소 벼슬을 받고, 고려에서 도첨의찬성사, 판군부사에 올랐다.

충숙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었을 때, 홍빈은 충숙왕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충숙왕이 복위하자 홍빈의 공을 인정하여 원나라에 정동성이문소 벼슬을 청하였고, 고려에서는 도첨의찬성사, 판군부사에 오르는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게 되었다.

1339

[충숙왕 유언에 따른 권정동성사 취임]

충숙왕이 사망하자, 왕의 유언에 따라 권정동성사가 되었다.

1339년 충숙왕이 사망한 후, 왕의 유언에 따라 홍빈은 권정동성사 직책을 맡게 되었다.

[조적의 난 연루 및 사면]

조적의 난에서 조적의 강요로 충혜궁을 습격하는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난이 진압된 후 다른 관련자들과 달리 용서받았다.

1339년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홍빈은 성관과 함께 조적의 강요로 충혜궁을 습격하는 사건에 참여했다. 그러나 조적이 패사한 후, 다른 가담자들과 달리 그는 용서되었다.

1341

[충혜왕 변호 및 1등 공신 책봉]

충혜왕이 원나라에 압송되자 함께 잡혀가 왕을 위해 변호했으며, 이듬해 왕이 귀국하자 그 공로로 1등 공신이 되어 당성군에 봉해지고 행성 낭중에 올랐다.

1341년 조적 일당의 호소로 충혜왕이 원나라에 압송될 때 홍빈도 함께 잡혀갔다. 그는 왕을 변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듬해 충혜왕이 귀국하게 되자 이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봉되어 당성군에 봉해졌으며, 이어서 행성 낭중에 올랐다.

1353

[흥국로 총관 역임 및 우정승 승진]

충목왕 때 원나라에 가서 흥국로 총관을 지냈고, 1353년 고려로 돌아와 우정승으로 승진하며 추성익대동덕협의보리공신 호를 받고 당성 부원군에 진봉되었다.

충목왕 재위 기간 동안 원나라에 파견되어 흥국로 총관을 역임했다. 이후 고려로 돌아와 1353년 공민왕 2년에 우정승으로 승진했으며, 추성익대동덕협의보리공신이라는 호를 받고 당성 부원군으로 봉해지는 등 최고위직에 올랐다.

[홍빈의 사망]

우정승을 지내던 중 정방제조로 있다가 사직하고,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정승에 오른 후 홍언박, 이공수와 함께 정방제조로 활동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66세의 나이로 1353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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