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린 (고려)

고려 승려, 법상종 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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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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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승려, 법상종 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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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중기 법상종의 고승이자 문종 때 국사

• 본관은 원주 원씨, 자는 거룡, 시호는 지광, 탑호는 현묘

• 현화사를 중심으로 법상종 교단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당시 문벌귀족인 인주 이씨 세력과 깊은 연관을 맺음

• 1070년 입적 후 그의 업적을 기리는 탑비가 세워져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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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4

[해린 출생]

고려 중기의 승려 해린이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수몽이었으며, 본관은 원주 원씨이다.

고려 중기의 승려 해린(海麟)이 984년에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수몽(水夢)이었으며, 자는 거룡(巨龍), 본관은 원주 원씨이다. 해린은 훗날 문종 때 국사에 오르고 법상종 교단을 이끌게 된다.

995

[유식학 수학 및 법호 수여]

원주 법천사의 관웅에게 유식학을 배우고 '해린'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관웅을 따라 개경 해안사의 준광 제자가 되었다.

해린은 원주 법천사에 있던 관웅(寬雄)을 찾아가 유식학을 배웠으며, 이때 관웅에게 '해린'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관웅을 따라 상경하여 개경 해안사(海安寺)의 준광(俊光)의 제자가 되었다.

999

[구족계 수계]

용흥사에서 불교 승려가 지켜야 할 가장 높은 계율인 구족계를 받았다.

999년(목종 2년), 해린은 용흥사(龍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구족계는 불교 승려가 되는 과정에서 받는 가장 높은 계율이다.

1001

[숭교사 창건으로 명성 얻음]

숭교사가 만들어지면서 해린의 학문적 명성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1001년, 숭교사(崇敎寺)가 만들어지면서 해린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는 해린의 불교 학문과 덕망이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1004

[대선 급제 및 대덕 승진]

왕륜사에서 실시된 승려 선발 시험인 대선에 급제하여 대덕의 승직을 받았다.

1004년, 해린은 왕륜사(王輪寺)에서 실시된 대선(大選)에 급제하여 대덕(大德)이 되었다. 대덕은 고려 시대 승직 중 하나로, 상당한 학문과 덕망을 갖춘 승려에게 주어졌다.

1011

[역산법 학습 및 대사 칭호]

본사인 법천사로 돌아가던 중 진조를 만나 역산법을 배웠고, 대사 칭호를 받았다.

1011년(현종 2년), 해린은 본사인 법천사(法泉寺)로 돌아가던 중 진조(眞肇)를 만나 역산법(曆算法)을 배웠으며, 이 시기에 대사(大師) 칭호를 받았다. 대사는 대덕보다 높은 승직이다.

1021

[중대사 승진 및 수다사 주지 취임]

평양 중흥사에서 중대사로 승진한 뒤, 수다사의 주지를 맡게 되었다.

1021년, 해린은 평양 중흥사(重興寺)에서 중대사(重大師)가 된 뒤, 수다사(水多寺)의 주지(住持)를 역임하게 되었다. 주지는 사찰의 운영을 책임지는 최고 승직이다.

1030

[개경 해안사 주지 취임]

개경에 위치한 해안사의 주지로 임명되었다.

1030년, 해린은 개경 해안사(海安寺)의 주지가 되었다. 해안사는 개경의 주요 사찰 중 하나였다.

1032

[삼중대사 및 수좌 승진]

덕종 재위 기간 중 삼중대사가 되었다가 곧이어 수좌의 직책에 올랐다.

덕종(德宗) 재위 기간(1031~1034년) 중 해린은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가 곧 수좌(首座)의 직책에 올랐다. 이는 그의 학덕이 왕실에서도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1045

[승통 승진]

정종 11년에 승려들을 총괄하는 최고 승직인 승통이 되었다.

1045년(정종 11년), 해린은 승통(僧統)이 되었다. 승통은 고려 시대 승직 중 가장 높은 직책 중 하나로, 모든 승려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046

[궁중 유심 강의]

문종의 초청으로 궁중으로 들어가 불교의 중요한 사상인 유심(唯心)을 강의하였다.

1046년(문종 1년), 해린은 궁중에 초청받아 불교의 주요 사상 중 하나인 유심(唯心)을 강의하였다. 이는 해린의 학문적 깊이와 왕실로부터의 신뢰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1047

[이자연 아들 소현 출가시킴]

당시 문벌귀족이었던 이자연의 다섯째 아들 소현을 출가시켜 불문에 들어서게 했다.

1047년, 해린은 당시 문벌귀족이자 권신이었던 이자연(李子淵)의 다섯째 아들인 소현(韶顯)을 출가시켰다. 이는 해린이 당대의 유력 가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1054

[현화사 주지 및 법상종 교단 이끌음]

현화사의 주지가 되어 절을 크게 중수하고, 법상종 교단을 이끄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054년, 해린은 현화사(玄化寺)의 주지가 되어 절을 크게 중수(重修)하고, 법상종 교단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현화사는 고려 시대 법상종의 중심 사찰 중 하나였다.

1056

[왕사 임명]

국왕의 스승인 왕사(王師)로 임명되어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1056년, 해린은 왕사(王師)로 임명되어 국왕의 스승으로서 지위를 얻었다. 왕사는 고려 시대 승려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 중 하나였다.

1058

[국사 추대]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추대되어 왕사보다 더 높은 예우를 받으며 최고 승직에 올랐다.

1058년, 해린은 봉은사(奉恩寺)에서 국사(國師)로 추대되어 최고 승직에 오르며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국사는 왕사보다 높은 지위로, 국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1059

[내전 백고좌 제일 설주]

궁중 내전에서 개최된 백고좌 법회에서 제일 설주로 선정되어 중요한 설법을 진행했다.

1059년, 해린은 내전(內殿)에서 개최된 백고좌(百高座) 법회에서 제일 설주(說主)가 되어 설법을 이끌었다. 백고좌는 많은 승려가 참여하여 경전을 강론하는 큰 법회였다.

1067

[은퇴 및 법천사 귀향]

공식적인 활동에서 은퇴하여 고향인 법천사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1067년, 해린은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여 본사인 법천사(法泉寺)로 돌아가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는 여생을 보내며 불법에 정진했다.

1070

[해린 입적]

1070년 10월에 입적하였다. 그의 시호는 지광, 탑호는 현묘이다.

1070년 10월, 해린은 입적(入寂)하였다. 그의 시호는 지광(智光), 탑호(塔號)는 현묘(玄묘)이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에는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1085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건립]

해린 입적 15년 후,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가 세워졌다. 이 탑비는 현재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린 입적 후 15년이 지난 1085년(선종 2년), 정유산이 짓고 안민후가 해서로 써서 이영보와 장자춘이 새긴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묘塔碑)가 세워졌다. 이 탑비는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법천사지에 남아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린의 유골을 모신 탑인 법천사지광국사탑은 국보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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