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분쟁
내전, 군사 분쟁, 사회 정치 갈등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1:20
1964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콜롬비아 내 저강도 비대칭 전쟁. 정부, 준군사조직, 범죄조직, 좌익 유격대 간의 영향력 다툼이 핵심. 1948년 정치인 암살과 공산당 재조직에서 시작. 마약 밀매, 테러리즘, 인권 침해 등 복합적 문제. 22만 명 이상 사망, 5백만 명 이상 실향민 발생.
1948
[가이탄 암살 및 라 뵤를렌샤 분쟁 시작]
콜롬비아 분쟁의 뿌리가 된 사건으로, 대중주의 정치인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이 암살당하며 '라 뵤를렌샤' 분쟁이 촉발되었다. 이는 이후 콜롬비아 사회의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콜롬비아 분쟁은 1948년 대중주의 정치가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이 암살당하면서 촉발된 라 뵤를렌샤 분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사건은 콜롬비아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1964
[콜롬비아 분쟁 공식 시작 및 FARC 재조직]
미국 지원을 받은 반공주의적 억압이 콜롬비아 농촌 지역에 가해지자, 콜롬비아 자유당과 공산당 열성분자들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으로 재조직되며 콜롬비아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60년대 미국이 지원한 반공주의적 억압이 콜롬비아 농촌 지역을 강타했다. 이에 콜롬비아 자유당과 공산당의 열성분자들이 반발하여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으로 재조직되었고, 이로 인해 1964년 5월 27일부터 콜롬비아 분쟁이 현재까지 진행되는 저강도 비대칭 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013
[분쟁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 기록 발표]
콜롬비아 국립역사기념센터 연구에 따르면 1958년부터 2013년까지 이 분쟁으로 인해 약 22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대다수가 민간인으로 파악되었다. 5백만 명 이상이 국내 실향민이 되는 비극을 겪었다.
콜롬비아 국립역사기념센터의 연구는 1958년부터 2013년 사이 콜롬비아 분쟁으로 22만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그중 177,307명이 민간인이었고 전투원은 40,787명에 불과했음을 밝혀냈다. 또한 1985년부터 2012년 사이에 5백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내 실향민 집단을 형성하는 비극을 겪었다.
2016
[콜롬비아 정부-FARC 평화 협정 체결]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 평화 협정을 체결했으나, 이로 인해 민족해방군(ELN)과의 분쟁이 새로 시작되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2016년 8월 25일, 콜롬비아 정부는 주요 좌익 유격대 중 하나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오랜 분쟁에 종지부를 찍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 협정 이후 또 다른 좌익 유격대인 민족해방군(ELN)과의 분쟁이 심화되면서 콜롬비아 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7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은 2017년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이는 콜롬비아 분쟁의 주요 당사자 중 하나가 소멸했음을 의미하지만, 콜롬비아 분쟁은 여전히 다양한 집단들 간의 갈등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