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컵
축구 대회, 국내 컵, 스포츠 행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1:13
대한축구협회 주관의 대한민국 대표 축구 토너먼트 대회인 코리아컵은 1996년에 시작되었으며, '전조선축구대회'와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전신으로 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모든 팀이 참가하여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회로, 우승팀에게는 상금과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이 주어집니다.
1921
[전조선축구대회 창설]
조선체육회 주관으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전국 규모 축구 대회인 '전조선축구대회'가 창설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현재 코리아컵의 전신 중 하나입니다.
1921년,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에서 전조선축구대회를 창설했습니다. 이 대회는 1940년까지 총 21회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해방 전 한국 축구의 중요한 대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현 코리아컵은 이 대회를 전신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1940
1940년, 중일 전쟁에 접어든 일본 제국의 침략 정책 강화로 인해 조선체육회에서 주관하던 전조선축구대회가 제21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46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창설]
해방 이후 전국 규모의 축구대회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전신인 조선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매년 가을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회는 국내 성인 축구팀들이 참가하여 실질적인 한국 축구 챔피언을 가리는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1946년, 해방 이후 최초의 전국 규모 축구대회인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 주관으로 매년 가을(11월 경)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실업, 대학, 군팀 등 성인 축구팀들이 모두 참가하여 그 해 한국 축구의 실질적인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로, 코리아컵의 또 다른 전신이 됩니다.
1983
[K리그 출범과 전국축구선수권대회의 변화]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당시 수퍼리그)가 출범하면서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는 점차 아마추어 구단들만 참가하게 되었고, 대회의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당시 수퍼리그)가 출범하면서,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점차 프로팀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아마추어 구단들만 참가하게 되면서 대회의 위상이 약화되고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1984
[FA컵 대회 추진 시작]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아우러 참가하는 FA컵 대회가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점차 퇴색하던 전국축구선수권대회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1984년 말, K리그 출범 이후 의미가 퇴색된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대체하고 프로와 아마추어 팀이 모두 참가하는 통합 축구 대회를 만들고자 FA컵 대회가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1988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FA컵' 명칭 사용]
제4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프로팀들이 참가하며 'FA컵 축구대회'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11월 10일, 제4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프로팀들이 참가하였고, 이 대회를 'FA컵 축구대회'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통합 컵의 형태를 시험적으로 선보였습니다.
1989
[FA컵 명칭 계속 사용 및 프로팀 불참 전환]
제44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도 프로팀들이 참가하며 'FA컵 축구대회' 명칭이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한축구협회와 프로구단 간의 불화로 대회는 다시 아마추어 위주로 변경되었습니다.
1989년 11월 1일, 제44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도 'FA컵 축구대회'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나, 대한축구협회와 프로구단들 간의 불화로 인해 대회는 다시 아마추어 위주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996
[현 FA컵(코리아컵) 대회 재창설 및 첫 우승팀 배출]
프로와 아마추어 등 모든 성인 축구팀이 참여하여 한국 축구 최강팀을 가리는 'FA컵 대회'가 공식적으로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초대 우승은 포항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가 차지했습니다.
1996년, 프로와 아마추어를 포함한 모든 성인 축구팀이 참가하는 FA컵 대회가 정식으로 재창설되어 한국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회의 첫 우승팀은 포항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였습니다. 이는 현재 코리아컵의 직접적인 시작점이 됩니다.
1998
[FA컵 타이틀 스폰서십 최초 도입]
FA컵 대회에 타이틀 스폰서십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삼보컴퓨터가 첫 번째 타이틀 스폰서가 되어 '제3회 삼보체인지업 FA CUP 축구대회'로 명명되었습니다.
1998년, FA컵 대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 확보와 홍보 강화를 위해 타이틀 스폰서십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삼보컴퓨터가 첫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여 대회 명칭에 기업명이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200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폐지]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2000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면서, FA컵 대회는 국내 유일의 통합 축구 대회로의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2000년, 기존의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해당 연도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이로써 FA컵은 대한민국의 성인 축구 팀들이 모두 참가하는 유일한 전국 규모 토너먼트 대회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2001
[FA컵과 전국축구선수권대회 통합 및 참가 범위 확장]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FA컵에 흡수 통합되면서 대회 명칭이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변경되었습니다. K2리그(현 내셔널리그) 출범과 함께 대학을 포함한 모든 성인 아마추어 구단들이 참가하게 되어 대회 규모가 확장되었습니다.
2001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FA컵에 완전히 흡수 통합되면서 대회 명칭은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해 K2리그(현 내셔널리그)가 출범하고 대학팀을 포함한 모든 성인 아마추어 구단들이 참가하게 되면서, FA컵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축구의 통합 컵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2002
[FA컵 득점상 규정 변경 (시상 취소 규정 도입)]
FA컵 득점상 규정이 변경되어 최다 득점자가 3명 이상일 경우 시상을 취소하는 규정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규정은 2002, 2003, 2007년 대회에 영향을 미쳐 해당 연도에는 득점상 수상자가 없었습니다.
2002년, FA컵 득점상 시상 규정이 변경되어 최다 득점자가 3명 이상일 경우 득점상 시상을 취소하는 규정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2002, 2003, 2007년 대회에서는 득점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3
[2종 구단 참가 허용, 진정한 FA컵으로 진화]
축구협회에 등록된 2종 구단팀(직장, 동호인, 지역 축구팀 등)도 예선을 거쳐 본선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 FA컵은 '진정한 의미의 FA컵'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2003년부터 축구협회에 등록된 2종 구단팀(직장인, 동호인, 지역 축구팀 등)까지 예선을 통해 본선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 FA컵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넘어 생활 축구팀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 전국 대회로 발전했습니다.
2005
[비 K리그팀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FA컵 준우승]
K리그 소속이 아닌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가 FA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당시 K리그 외 팀으로서 최고 성적을 달성하는 '자이언트 킬링'의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2005년 대한민국 FA컵에서 K리그 소속이 아닌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가 준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프로팀 위주의 FA컵에서 비 K리그 팀이 달성한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FA컵의 '자이언트 킬링'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006
[FA컵 연중 행사로 확대 및 상금 인상]
대회의 품격과 흥행을 위해 상금이 인상되고, 대회가 3월 초 예선부터 늦가을~겨울 결승전까지 치러지는 '연중 행사'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2006년 대회부터 FA컵의 위상과 흥행을 높이기 위해 상금이 대폭 인상되었으며, 대회가 3월 초 예선 라운드부터 시작하여 늦가을 또는 겨울에 결승전을 치르는 연중 행사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이로써 FA컵은 더욱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2007
[FA컵 결승전 홈 앤드 어웨이 방식 도입]
FA컵 결승전이 단판 승부 방식이 아닌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2007년 대회에서는 FA컵 결승전 방식이 단판 승부가 아닌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대회 흥행과 공정성을 고려한 조치였지만, 다음 해 다시 단판 승부로 돌아갔습니다.
2008
[FA컵 결승전 단판 회귀 및 흥행 실패]
FA컵 결승전이 다시 단판 승부로 변경되었고, 제주에서 결승전이 개최되었으나 추운 날씨와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관중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2008년 대회부터 FA컵 결승전이 다시 단판 승부로 회귀했습니다. 제주에서 결승전을 치렀으나, 추운 날씨와 지역적 한계로 인해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으며 흥행에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2009
['원스타 시스템' 및 '라운드 최우수선수(MOR)' 시상 도입]
결승전 개최 경기장 선정을 위한 '원스타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각 라운드별 최고 수훈 선수에게 수여하는 '라운드 최우수선수(MOR)' 시상이 신설되었습니다.
2009년 대회부터 결승전 개최 경기장을 선정하는 독특한 방식인 '원스타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코리아컵의 특성을 반영하여 각 라운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라운드 최우수선수(MOR)' 상을 수여하는 제도가 신설되어 선수들의 동기 부여와 대회 홍보에 기여했습니다.
2015
[스폰서 명칭 KEB하나은행으로 변경]
하나은행과 한국외환은행이 합병하여 KEB하나은행이 출범하면서, FA컵 타이틀 스폰서 명칭도 KEB하나은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15년 9월, 기존 스폰서였던 하나은행이 한국외환은행과 합병하여 KEB하나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함에 따라, FA컵 타이틀 스폰서 명칭도 2015년 후반기부터 KEB하나은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16
[FA컵 결승전 재차 홈 앤드 어웨이 방식 도입]
FA컵 결승전 방식이 다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변경되어, 2007년 이후 두 번째로 이 방식이 적용되었습니다.
2016년 대회부터 FA컵 결승전이 다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2007년 한 차례 시도된 이후 두 번째로, 결승전의 흥행과 공정성을 더욱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2019
[비 K리그팀 대전 코레일의 FA컵 준우승]
K리그 소속이 아닌 대전 코레일이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2005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와 함께 K리그 외 팀으로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19년 대한민국 FA컵에서 K리그 소속이 아닌 대전 코레일이 준우승을 차지하며, 2005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에 이어 비 K리그 팀으로서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는 '자이언트 킬링'의 또 다른 역사를 썼습니다.
2020
[스폰서 명칭 다시 하나은행으로 변경]
KEB하나은행에서 다시 하나은행으로 브랜드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FA컵 타이틀 스폰서 명칭도 '하나은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20년 3월부터 KEB하나은행이 다시 '하나은행'으로 브랜드 명칭을 변경하면서, FA컵 타이틀 스폰서 명칭 또한 '하나은행 FA CUP'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4
[FA컵 대회 명칭 '코리아컵'으로 변경 및 포항 스틸러스 최다 우승]
FA컵의 대회 명칭이 '코리아컵'으로 공식 변경되었습니다. 같은 해 포항 스틸러스가 우승하며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24년 대회부터 FA컵의 공식 명칭이 '코리아컵'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해에 포항 스틸러스가 우승을 차지하며 FA컵 역사상 최다 우승 기록인 6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