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 카사르

몽골 제국 왕족,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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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8: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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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 왕족,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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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의 동생으로 몽골 제국 초기의 주요 인물. 뛰어난 용맹함으로 몽골 고원 통일에 기여하며 만주와 한반도 접경 지역을 정복했다. 칭기즈 칸과 복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후손들은 몽골 부족의 일부를 이루며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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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4

[주치 카사르의 탄생]

칭기즈 칸의 친동생 주치 카사르가 예수게이와 호엘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주치이며, 카사르는 몽골어로 '용맹하다'는 뜻의 별명이다.

카묵 몽골의 보르지긴 씨족 키야트부족장 예수게이와 호엘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훗날의 칭기즈 칸인 테무진보다 2살 어리다. 본명은 주치이고, 카사르는 중세 몽골어로 용맹하다는 뜻과 일종의 맹견이라는 뜻이 있다.

1171

[가족의 시련]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에게 독살당하자, 몽골부를 장악한 타이치우드 씨족은 예수게이의 처자식을 부족에서 내쫓았다.

예수게이가 타타르에게 독살당한 후, 카마그 몽골을 장악한 타이치우드 씨족의 타르구타이 쿠릴투크는 예수게이의 처자식을 부족에서 내쳤고,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1176

[벡테르 형제 살해 사건]

떠돌이 생활 중 식량을 빼돌린 이복형 벡테르를 테무진과 함께 활로 쏘아 죽였다. 이는 칭기즈 칸 형제들의 강인한 생존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수게이 일가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예수게이의 서장자 벡테르가 식량을 빼돌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테무진과 카사르는 벡테르의 앞뒤에서 활을 쏘아 죽였다.

1203

[칼라칼지드 사구 전투의 패배]

칼라칼지드 사구 전투에서 테무진의 보르지긴 씨족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에게 대패하자, 카사르는 아들들과 함께 숲 속에 숨어 지내며 위기를 모면했다.

칼라칼지드 사구 전투에서 테무진의 보르지긴 씨족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에게 크게 패배했을 때, 카사르는 자신의 아들들과 부하 몇 명과 함께 숲 속에 숨어 지냈다.

1206

[몽골 제국 건국과 영지 획득]

몽골 고원을 통일한 칭기즈 칸은 동생인 카사르에게 좌익(오늘날 내몽골 동쪽 끝 부분) 영지와 4천 호를 부여했다. 그는 훗날 만주라 불리는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접경 지역을 정복했다.

몽골 고원을 통일한 테무진, 즉 칭기즈 칸은 동복 형제인 카사르, 하치운, 테무게에게 좌익(오늘날의 내몽골 자치구 동쪽 끝 부분)을 맡겼다. 카사르에게는 현 내몽골 자치구 후룬베이얼시 일대의 영지와 4천 호의 가구가 주어졌으며, 그는 훗날 만주라고 불리게 되는 중국 동북부의 땅과 한반도 접경을 정복했다.

1217

[텝 텡그리 제거 사건]

박수무당 텝 텡그리가 카사르의 불충을 고발하자, 칭기즈 칸은 샤머니즘 세력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카사르와 테무게에게 텝 텡그리를 씨름을 빙자하여 죽이게 했다.

박수무당 텝 텡그리가 카사르가 불충하고 있다고 칭기즈 칸에게 고발했다. 이에 호엘룬을 비롯한 친지들이 카사르를 변호했고, 샤머니즘 세력이 군주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칭기즈 칸은 카사르와 테무게를 시켜 텝 텡그리를 씨름을 빙자하여 죽였다.

1219

[칭기즈 칸과의 갈등과 죽음]

칭기즈 칸의 명령을 어기고 타타르인 1천 명을 살려둔 일과 옹기라트부 사신을 공격한 일로 칭기즈 칸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어머니 호엘룬의 구명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영지 대부분을 몰수당했으며, 같은 해 사망했다.

카사르는 칭기즈 칸이 타타르 남성 1천 명을 전부 살해하라고 명령했으나, 이를 어기고 자신의 아내와 휘하에 살려두었다. 한편 옹기라트부가 몽골에 사절을 보내자 카사르는 사절을 간첩으로 오해하여 공격했는데, 이 일로 옹기라트가 자무카와 연합한 일이 있다. 칭기즈 칸은 이를 계기로 카사르를 체포, 처형하려 했으나 어머니 호엘룬이 칭기즈 칸의 막사를 찾아가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며 형제를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칭기즈 칸은 카사르를 죽이지 않고 체포했다가 풀어주고, 대신 카사르의 영지 대부분을 몰수하고 1천 4백 호의 가구만 남겨두었다. 일설에는 주치 카사르는 칭기즈 칸에게 죽임당했다 한다. 같은 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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