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 (삼국지)

삼국시대 인물, 무장, 장군, 황족

num_of_likes 48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9:5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삼국시대 인물, 무장, 장군, 황족
report
Edit

조조의 종제로, 삼국시대 위나라의 핵심 무장이다. 거병 초기부터 조조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위기 상황에서 조조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인색한 성격으로 조비와의 갈등을 빚어 한때 위기를 겪었으나, 조예 즉위 후 복권되어 중책을 맡았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0

[형양 전투에서 조조를 구하다]

조조가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형양 전투에서 서영에게 크게 패하고 위급해지자, 조홍은 자신의 말을 내주며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조조는 없으면 안 된다"는 명언을 남기고 조조를 구출했다. 이후 병사를 모아 조조와 합류했다.

190년(초평 원년), 조조가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하여 형양으로 진격했다가 서영에게 크게 패하고 추격당했다. 조조가 유시에 맞고 말까지 잃어 위급해지자 조홍은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을 내주며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조조는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걸어서 변수에 다다른 조조와 조홍은 배를 구해 초현으로 돌아왔다. 병사를 많이 잃었기에 하후돈과 함께 양주로 모병하러 갔고, 자사 진온과 단양 태수 주흔의 도움으로 4천여 명을 모아 용항에 있던 조조와 합류했다.

194

[연주 동평을 점거하고 군량 확보]

조조가 서주를 치러 연주를 비운 사이 여포가 연주를 장악하자, 조홍이 선두에 서서 동평을 점거했다. 대기근 속에서 동평과 범현에서 식량을 거두어 군에 공급했으며, 제음군 등 10여 개 현을 공략하여 응양교위를 거쳐 양무중랑장으로 승진했다.

194년(흥평 원년), 조조가 서주를 치러 연주를 비운 사이 장막이 여포를 불러들여 연주를 장악했다. 조홍은 선두에 서서 먼저 동평을 점거했다. 마침 대기근이 들어서 동평과 범현에서 식량을 거두어 군에 공급했으며, 이후 제음군, 산양군, 하남윤의 10여 개 현들을 공략하는 데 공을 세워 응양교위를 거쳐 양무중랑장으로 승진했다.

196

[헌제 영접 시도와 간의대부 임명]

조조가 헌제를 영접하기 위해 조홍을 보냈으나 동승과 장노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후 허도로 천도하면서 간의대부에 임명되었다.

196년(건안 원년), 조조가 헌제를 영접하고자 조홍을 서쪽으로 보냈으나 위장군 동승과 원술의 부하 장노가 험지를 막아서는 바람에 나아가지 못했다. 마침내 허도로 천도하면서 간의대부가 되었다.

197

[유표·장수군과 형주 북부에서 고전]

형주의 유표군, 장수군과 싸워 무음, 섭, 자양, 박망 등 남양군 북부 일대에서 고전했다. 여봉장군에 임명되고 국명정후에 봉해졌다.

197년, 별도로 형주의 유표군, 장수군과 싸워 무음, 섭, 자양, 박망 등 남양군 북부 일대에서 고전했다. 여봉장군에 임명되고 국명정후에 봉해졌다.

200

[관도 대전 본영 수비 및 장합·고람 투항 유도]

관도 대전 중 조조가 오소로 기습하러 간 사이 본영을 지켰다. 원소가 보낸 장합과 고람의 공격을 잘 방어했으며, 조조가 순우경을 궤멸시키자 장합과 고람의 투항을 받아들여 승리에 기여했다.

200년,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던 중, 유벽, 유비 등이 여남군 등 허도 근방을 교란하자 서황과 함께 축비를 무찔렀다. 10월, 악전고투하던 조조가 허유의 계책에 따라 치중이 있는 오소를 급습하면서 조홍은 본영을 지키도록 했다. 조조와 순우경이 싸우는 동안 원소가 보내온 장합과 고람을 잘 방어했다. 끝내 순우경이 궤멸되자 장합 등은 투항하였다. 처음에는 의심하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데 순유가 안심시켰다.

204

[업 전투 참전 및 도호장군 임명]

업 전투에 참전하였고, 이외에도 많은 전투에 참여하며 도호장군으로 승진했다.

204년 업 전투에 참전하였다. 또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도호장군(都護―)이 되었다.

217

[장비, 마초군과 한중에서 대치 시작]

217년, 장비, 마초, 오란, 뇌동 등이 무도군 하변현으로 오자 장기, 조휴, 신비, 조진 등을 이끌고 맞붙기 시작했다.

217년, 장비, 마초, 오란, 뇌동 등이 무도군 하변현으로 오자, 장기, 조휴, 신비, 조진 등을 데리고 맞붙었다.

218

[오란군 격파 및 한중 전선 승리]

장비가 오란과 함께 조홍군의 뒤를 끊는 시위를 벌였으나, 조휴의 간파로 오란을 습격해 격파하고 임기 등을 참수했다. 이후 장비와 마초는 한중 전선으로 달아났고, 저족 강단이 오란의 목을 가져와 승전 파티를 열었다.

218년, 장비는 오란과 따로 기동하며 조홍군의 뒤를 끊는 척 시위하였다. 조휴의 진언으로 이것이 허장성세임을 간파하고 바로 오란을 습격하여 쳐부수고 그 부장 임기(任夔) 등을 참했다. 3월, 장비와 마초는 한중 전선으로 달아났고 음평저 강단이 오란의 목을 전해왔다. 승전 파티를 크게 열었는데, 양부가 나체 무희의 춤을 꾸짖어 조홍이 악무를 끊고 장내를 숙연케 했다.

220

[조비 즉위 후 고위직에 오르다]

조비가 즉위하자 위장군과 표기장군에 올랐으며, 야왕후에서 도양후로 작위가 진봉되고 식읍이 늘어나는 등 특진의 지위에 이르렀다.

조비가 즉위하자 위장군에 임명되었다가 표기장군까지 올랐다. 작위도 야왕후로 진봉됐다가 도양후로 옮겼다. 식읍은 1,000호를 더해 모두 2,100호가 되었으며 지위는 특진에 이르렀다.

224

[오질 연회에서 조진을 희롱]

황초 5년, 조비가 오질을 위해 연회를 열었을 때, 오질, 왕충과 함께 조진에게 살을 빼라고 말하며 희롱했다.

224년(황초 5년) 조비가 오질을 위해 열어준 연회에서 오질, 왕충과 같이 조진더러 살을 빼라고 하였다.

226

[조비와의 갈등으로 서인으로 강등]

예전부터 조홍을 미워하던 조비가 조홍 빈객의 죄를 구실 삼아 조홍을 죽이려 했다. 주변의 만류와 변태후의 강력한 압박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결국 서인으로 강등되고 재산이 몰수되었다. 이는 개국공신에 대한 부당한 처사로 여겨졌다.

226년, 예전부터 조홍을 미워하던 조비가 그 빈객의 죄에 결부하여 조홍을 죽이려 하였다. 주위의 만류와 변태후의 강력한 분노(곽후에게까지 압박)로 목숨은 건졌지만 서인으로 강등되고 재산이 몰수되었다. 조홍은 개국공신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부당한 처사로 여겼다. 변태후의 질책 덕분에 재산은 돌려받았다.

[조예 즉위 후 후장군 및 표기장군으로 복권]

조예가 즉위하면서 후장군에 낙성후로 복귀하고 식읍 1,000호를 받았다. 이후 다시 표기장군까지 오르는 등 명예와 지위를 되찾았다.

조예가 즉위하면서 후장군에 낙성후로 복귀하고 식읍 1,000호를 받았다. 이후 다시 표기장군까지 올라갔다.

232

[병사로 생을 마감]

232년, 태화 6년에 병사하였다. 시호는 공후(恭侯)이다.

232년(태화 6년)에 죽어서 시호는 공후(恭侯)라 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