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바둑 기사,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9:34
-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바둑 황제'입니다. - 한국 최초 9단, 3회 전관왕 달성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했습니다. - 잉창치배 등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를 석권했습니다. - 49세 최고령 타이틀 획득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바둑계를 지배했습니다. - 바둑계를 넘어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1953
[바둑 황제의 탄생]
바둑 황제의 탄생, 1953년 4월 23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바둑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그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조훈현은 1953년 4월 23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둑 기사이자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62
[세계 최연소 프로 입단]
9세의 나이로 프로 바둑계에 입단하며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웠습니다. 바둑 신동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1962년 10월, 9세의 어린 나이로 프로 바둑 기사로 입단하며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바둑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으로, 그의 비범한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3
[일본 유학, 바둑 수련 시작]
일본으로 건너가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문하에 들어가 바둑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사로 성장할 기반을 다진 시기입니다.
1963년, 조훈현은 일본으로 건너가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바둑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훗날 세계 최강의 기사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66
1966년, 조훈현은 일본기원 초단으로 입단하여 일본 바둑계에서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한국 바둑계에 귀환하기 전 그의 성장 과정의 한 단계입니다.
1972
1972년, 병역 문제로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으며, 이때 일본기원에서 5단을 인정받은 상태였습니다. 이로써 그의 한국 바둑계 활동이 본격화됩니다.
1974
[첫 타이틀 획득 (최고위전 우승)]
최고위전에서 우승하며 첫 번째 타이틀을 획득, 국내 바둑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1974년, 조훈현은 최고위전에서 우승하며 국내 바둑 무대에서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는 그의 화려한 우승 경력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980
[국내 전관왕 (9관왕) 달성]
국내 9개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는 전관왕(9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바둑 황제'의 위용을 떨쳤습니다.
1980년, 조훈현은 당시 국내 최강자, 왕좌, 왕위, 국수, 국기, 최고위, 패왕, 명인, 백남배 등 9개 주요 타이틀을 모두 차지하며 '전관왕'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국내 바둑계를 완벽하게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1981
1981년, 조훈현은 정미화 여사와 결혼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1982
[한국 최초 9단 및 10관왕 달성]
한국 최초로 바둑 9단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고, 국내 10개 타이틀을 석권하며 두 번째 전관왕(10관왕)을 달성했습니다.
1982년, 조훈현은 29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바둑 역사상 최초의 9단에 등극했습니다. 또한 제1기 KBS바둑왕전 우승을 추가하며 전년도보다 더 많은 10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10관왕'을 달성, 국내 바둑계에서의 절대적인 입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1986
[세 번째 국내 전관왕 (11관왕) 달성]
천원 타이틀을 추가하며 국내 11개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는 세 번째 전관왕(11관왕) 기록을 달성, 자신의 전설적인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1986년, 조훈현은 천원 타이틀까지 추가하며 국내 11개 타이틀을 모두 석권, 자신의 세 번째이자 최다 기록인 '11관왕'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국내 바둑계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으로, 그의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1989
[잉창치배 우승 및 100회 타이틀 달성, 은관문화훈장]
초대 잉창치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개인 통산 100회 타이틀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은관문화훈장도 서훈 받았습니다.
1989년, 조훈현은 제1회 잉창치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여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또한 왕위전 우승, MBC 제왕전 우승과 함께 개인 통산 100번째 타이틀을 획득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서훈 받았습니다.
1993
[패왕전 16연패 달성 (최다연패 기록)]
패왕전에서 무려 16연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단일 타이틀 최다 연패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3년, 조훈현은 패왕전에서 16연패를 달성하며 단일 타이틀 최다 연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장기간의 지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입니다.
1994
[후지쓰배 및 동양증권배 우승]
후지쓰배와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세계 바둑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1994년, 조훈현은 제6회 후지쓰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와 제5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하며 두 개의 권위 있는 세계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이는 그가 세계 바둑 챔피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해였습니다.
1995
1995년, 조훈현은 프로 통산 1,000승을 달성하며 오랜 기간 동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해왔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바둑문화상 최다승기록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96
[한국 기네스 협회 최다 기록 인정]
한국 기네스 협회로부터 최다 연승 및 최다 타이틀 획득 기록을 인정받으며 그의 위대한 업적을 공인받았습니다.
1996년, 조훈현은 한국 기네스 협회로부터 '최다 연승' 및 '최다 타이틀 획득' 기록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바둑 인생이 얼마나 독보적인 성과로 가득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1999
1999년, 조훈현은 제1회 춘란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서의 강력한 기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여러 국제 기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그랜드슬램에 가까운 업적을 쌓아갔습니다.
2000
[후지쓰배, TV 아시아 우승]
후지쓰배와 TV 아시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세계 대회에서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농심신라면배 한국 대표로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00년, 조훈현은 후지쓰배와 제12기 TV 아시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또한 제1회 농심신라면배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팀 우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1
[후지쓰배, TV 아시아 2연속 우승]
2년 연속 후지쓰배와 TV 아시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농심신라면배 한국 대표로 2연속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01년, 조훈현은 후지쓰배와 제13기 TV 아시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하며 전성기 기량을 이어갔습니다. 제2회 농심신라면배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2연패에 기여했습니다.
2002
[삼성화재배, KT배 우승 (최고령 타이틀)]
제7회 삼성화재배와 제1기 KT배에서 우승하며 49세의 나이로 최고령 타이틀 획득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2년, 조훈현은 제7회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마스터스와 제1기 KT배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49세의 나이로 최고령 타이틀 획득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며 노장의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2010
2010년, 조훈현은 제1기 대주배에서 우승하며 꾸준히 타이틀을 획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2016
2016년 3월 10일, 조훈현은 새누리당에 정식으로 입당하며 바둑 기사로서의 삶을 넘어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제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하며 바둑계의 '전신'에서 정치계의 '새로운 얼굴'로 변모했습니다.
2016년 5월, 조훈현은 제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했습니다. 바둑 기사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려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17
[세비반납 공약 파기 논란]
'대한민국과의 계약'에 따라 새누리당 의원들이 약속했던 5대 개혁과제 이행 및 세비 반납 공약의 마감일로, 이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2017년 5월 31일은 조훈현 의원을 포함, 당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약속했던 '5대 개혁과제 이행 시 1년치 세비 반납' 공약의 마감일이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과제 이행이 불가능해지자, 의원들은 법안 발의로 공약 이행을 주장하며 세비 반납을 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2020
2020년 2월 5일부터 2020년 3월 19일까지 미래한국당의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정치적 활동을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