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조위)
시인, 제후왕, 삼국시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8:51
조식은 후한 말, 삼국시대 조위의 시인이자 제후왕이다. 조조의 다섯째 아들로, 조조와 조비와 함께 '삼조'라 불릴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형 조비와 후계자 자리를 다투었으나, 처세술 부족과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총애를 잃었다. 조비 즉위 후에는 박해를 받으며 여러 봉지를 옮겨 다녔고, 결국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 작품은 초기에는 패기 넘치는 기상을, 후기에는 좌절과 비극적 심정을 담고 있다. 특히 백성에 대한 공감대가 조비와 대비되며 재조명되기도 한다.
192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조위의 시인이자 제후왕인 조식(曹植)이 태어났다. 자는 자건(子建)이며, 패국 초현 사람으로 조조의 5남이다. 그는 조조,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라 불릴 정도로 문재가 매우 뛰어났다. 배잠은 조식이 시경, 논어, 초사에 밝았고 문장을 짓는데 뛰어나 조조가 그의 재능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고 평했다.
213
[백성의 삶을 노래한 '귀사부' 발표]
조식은 고향 초현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귀사부'를 발표하며 조조의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같은 해 조비가 조조에게 아부하는 내용의 부를 발표한 것과 대비되어 조식의 백성 중심적 인식이 부각된다.
213년, 조식은 조조의 고향인 초현 주민들의 궁핍해진 생활과 황폐해진 고향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부(귀사부)를 지어 발표했다. 당시 조조는 초현을 대규모 군사 기지화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식이 묘사했던 것처럼 초현의 지역 사회는 황폐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조식이 이 귀사부를 발표한 것과 같은 해에 조비는 초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하는 임와부라는 부를 지어 발표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궁핍한 삶을 사는 상황에서 조식은 그들의 삶에 관한 안타까움으로 조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부를 적어 발표했지만 조비는 조조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그에게 아부하는 내용의 부를 적어 발표한 것이다.
219
[음주로 인한 장군 직위 박탈]
조조가 번성에서 관우에게 포위당한 조인을 구원할 장군으로 조식을 임명했으나, 조식은 술에 취해 명령을 받들지 못해 직위를 박탈당하며 후계자 경쟁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조인이 번성에서 관우에게 포위당했을 때 조조가 조식을 장군으로 임명해 보내려고 불렀는데, 술에 취해 이를 받들지 못하는 일까지 생겨 그의 직위는 박탈되었다. 《삼국지》 진사왕식전에 인용된 《위씨춘추》에서는, 조비가 술을 먹여 억지로 취하게 했다고 전한다. 이 사건으로 조식은 조조의 총애를 잃고 후계자 경쟁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220
[조비 즉위와 조식의 봉국 퇴거]
조조가 사망하고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조비는 조식을 보좌하던 양수 등의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조식을 자신의 봉국으로 물러나게 했다. 이로써 조식은 권력 중심부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양수와 함께 조식의 보좌를 맡던 세력들도 다 조비에게 죽임을 당하여 조식은 자기 봉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부터 조식은 정치적 활동에서 배제되고 문학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221
[일곱 걸음의 시 (칠보지시)]
조비가 동생 조식을 죽이려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식은 '콩을 삶아 콩국 끓이네...'로 시작하는 형제 간의 비극을 읊은 시를 지었고, 이에 감동한 조비는 그를 살려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조식을 죽이기 위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 읊어보라고 했다. 조식이 시를 짓지 못한다면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조식은 "콩을 삶아 콩국 끓이네(煮豆燃豆萁), 콩물을 걸러 즙을 만드네(漉菽以為汁), 콩깍지는 솥 아래 타고 있고(萁在釜下然),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豆在釜中泣).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本自同根生), 서로 지지기가 어찌 이리 급한가(相煎何太急)"라고 노래한 7보의 시(七步之詩)를 지었고 이에 조비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 그를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는 전설이라고 전하지만 상징적이다.
[봉지 변경과 궁핍한 삶]
조비의 견제로 인해 조식은 약 10년간 여러 차례 봉지를 옮겨야 했고, 생활도 궁핍해졌다. 관직을 청하는 상소도 거절당하고, 아내와 딸을 잃는 등 절망과 근심 속에서 지냈다.
조식은 봉국에서 자주 장문의 상소를 올려 나라의 일에 대해 논하며 자신의 재능을 펼칠 관직을 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조비의 경쟁자였기에 항상 봉지가 바뀌었고, 결국 진군왕으로서 생애를 마쳤다. 아내가 살해당하고 연이어 딸도 잃는 등 절망하고 근심 속에 살았다. 후기에 오면 왕위를 놓고 조비와 겨루던 활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그와 관련된 심정을 작품에 담았다. 후기에는 비록 명목상으로는 제후왕(諸侯王)이지만 10년 사이에 몇 번이나 임지를 옮겨야 했고 생활도 궁핍하였다. 이러한 사정 속에 조식은 곧잘 자신을 ‘굴러다니는 쑥[轉蓬]’에 비유하였다.
232
[조식의 사망]
조식은 박해와 좌절 속에서 살다가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남겼다.
봉국에서 절망하고 근심 속에 살다가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봉지인 진왕(陳王)으로서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