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운 (고려)

고려 장군, 무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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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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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장군, 무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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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공민왕의 심복이자 뛰어난 무신.원나라 숙위 시절부터 공민왕을 호종하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홍건적의 2차 침입 시 총병관에 임명되어 개경 수복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하지만 당시 권신 김용의 시기심과 모략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후일 호국인물로 선정되며 충직한 장군의 표상으로 기억되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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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5

[공민왕(강릉대군) 원나라 숙위 시절 시종]

후에 공민왕이 되는 강릉대군이 원나라에 머무는 동안 그를 곁에서 시종하며 깊은 신뢰를 쌓았다. 이는 정세운이 공민왕 즉위 후 핵심 측근이 되는 발판이 되었다.

공민왕이 원나라에 숙위로 머물 때 정세운은 강릉대군을 곁에서 호종하며 그의 충직함과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 형성된 군주와의 돈독한 관계는 훗날 공민왕 즉위 후 정세운이 주요 관직에 오르고 핵심 인물로 활동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는 왕의 최측근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1352

[공민왕 즉위 및 1등 공신 책록]

공민왕이 고려 국왕으로 즉위하자, 그를 원나라에서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이와 함께 종3품 대호군과 군부판서의 중책을 맡으며 공민왕의 신임을 받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공민왕 원년(1352년), 공민왕이 고려의 왕위에 오르자 정세운은 그를 원나라에서 시종하며 호종한 공로로 연저수종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이후 종3품 대호군에 봉해지고 정3품 군부판서에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하며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는 왕의 깊은 총애와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1356

[기철 숙청에 참여, 1등 공신에 재차 책록]

공민왕이 권문세족의 핵심이었던 기철 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워 정주기철 1등 공신에 다시 책록되었다. 이 사건은 공민왕의 반원 정책과 왕권 강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정세운의 정치적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공민왕은 즉위 초 원나라의 내정 간섭과 권문세족의 횡포를 견제하고자 반원 개혁을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원의 부마이자 친원 세력의 대표격인 기철을 숙청하는 대대적인 작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정세운은 기철 처단에 공을 세웠고, 그 공로로 정주기철 1등 공신에 다시 책록되며 공민왕의 개혁 정책을 지지하는 핵심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361

[홍건적 침입 대비, 총병관에 임명되다]

홍건적의 2차 침입이 예견되자, 서북면군용체찰사에 임명되어 전방의 군사 지휘권을 총괄하게 되었다. 이후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고 공민왕이 파천하는 위기 상황에서 최고 지휘관인 총병관에 임명되며 국가적 위기 극복의 중책을 맡았다.

공민왕 10년(1361년) 11월, 홍건적이 대규모로 고려를 침략할 조짐을 보이자 정세운은 서북면군용체찰사에 임명되어 서북방면의 군사 방어를 책임지게 되었다. 한 달 뒤인 12월, 홍건적은 결국 개경을 함락하고 공민왕은 복주(안동)로 파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정세운은 樞密 겸 鷹揚軍上將軍으로서 공민왕을 호종하며, 왕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전국 군사의 최고 지휘관인 총병관(摠兵官)에 임명되고 중서평장사를 겸임하여 국가적 위기 극복의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1362

[총병관으로서 개경 수복 대승, 홍건적 완전 격퇴]

총병관으로서 전국의 제장들을 독려하여 홍건적을 향한 총공세를 지휘했다. 이들의 맹활약으로 개경을 포위한 홍건적을 완전히 섬멸하고 함락되었던 수도 개경을 단 한 달 만에 성공적으로 수복하는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공민왕 11년(1362년) 1월, 총병관 정세운은 안우, 이방실, 최영 등 고려의 명장들과 함께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펼쳤다. 그는 탁월한 지휘력으로 각지에서 모인 군사들을 독려하여 개경을 점령하고 있던 홍건적을 완전히 격퇴하고 수도 개경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 승리는 고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정세운은 국가를 구한 영웅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의 업적은 고려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전공으로 기록되었다.

[홍건적 격퇴 후, 권신 김용의 모략으로 불의의 죽음]

홍건적 격퇴 후, 공민왕의 총애와 명성이 극에 달하자 이를 시기한 권신 김용의 교활한 모략에 휘말렸다. 결국 안우, 이방실 등과 함께 불의의 공격을 받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며 고려의 큰 별이 안타깝게 스러졌다.

개경 수복의 대승을 거둔 직후, 정세운의 명성과 공민왕의 신임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당시 권신 김용은 그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정세운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공민왕 11년 음력 3월 1일(양력 3월 26일), 김용은 안우, 이방실 등 다른 장수들을 사주하여 정세운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다. 총병관의 지위에 있었던 정세운은 불의의 공격을 받아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고, 이는 공민왕에게도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결국 김용의 모략임이 밝혀져 김용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모두 처형되었으나, 고려는 정세운이라는 위대한 장군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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