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풍 (후한)
후한 관료, 참모, 정치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6:44
후한 말, 뛰어난 지략으로 원소의 책사로 활약했다. 환관 득세에 실망해 낙향했으나, 원소에게 등용되어 공손찬 평정에 기여하며 핵심 참모로 자리매김했다. 헌제 영입과 관도대전 전략에서 시대를 앞선 혜안을 제시했으나, 강직한 성품으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원소의 노여움을 사 결국 옥사했다. 조조마저 그의 전략을 높이 평가한 비운의 지략가이다.
191
심배와 함께 기주목 한복을 섬기다 초평 2년(191년) 원소가 한복 세력을 흡수한 후 좋은 말로 전풍을 초빙하였다. 왕실이 곤란에 처한 상황에서 난세를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원소에게 갔으며, 원소는 그를 별가에 임명하여 중용했다.
그해 겨울, 공손찬과 계교에서 전투를 벌일 때 공손찬군이 우세하여 원소군을 포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전풍은 원소에게 후퇴할 것을 권했으나, 원소는 투구를 내팽개치고 그곳을 사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6
건안 원년(196년),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맞이하기 전에 전풍은 먼저 헌제를 맞이할 것을 원소에게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원소가 헌제를 견성으로 모셔올 것을 조조에게 권유했으나 거절당하자, 전풍은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데려올 것을 건의했지만 원소는 듣지 않았다. 조조가 장수를 포위하고 있을 때도 다시 한번 진언했지만, 원소는 기회를 놓쳤다.
199
건안 4년(199년), 전풍의 책략이 쓰여 공손찬을 멸망시켰다. 이후 원소가 허도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을 때, 전풍과 저수는 지구전 전략을 주장했으나 원소는 심배와 곽도가 주장한 단기결전 전략을 채용하였다.
200
[절호의 기회 상실]
유비의 배신으로 조조가 허도를 비운 절호의 기회를 포착, 조조를 공격할 것을 진언했으나 원소의 아들 병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관계가 악화되다.
건안 5년(200년), 유비가 조조를 배신하고 서주에서 거병하자 조조는 유비를 직접 치기 위해 출정했다. 전풍은 이 호기를 보고 원소를 설득해 조조의 뒤를 치려고 했지만, 원소는 자신의 막내아들 원상이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전풍은 이에 크게 개탄하며 원소와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원소가 조조를 치려 하자, 전풍은 재차 간곡하게 지구전을 펼쳐 조조를 지치게 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이에 원소는 크게 노하여 전풍을 감옥에 가두었다. 전풍이 종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원소는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구나"라며 기뻐했다.
원소군이 조조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오자, 원소는 "내가 패했으니 전풍에게 조소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봉기가 전풍이 공의 패배를 듣고 기뻐한다는 참언을 했고, 원소는 이 말을 듣고 전풍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