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포 (촉나라)

삼국지 인물, 촉한 인물,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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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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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 촉한 인물,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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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는 촉한의 용장 장비의 장남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역사 기록에는 자세한 행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용맹을 떨치며

관우의 아들 관흥과 의형제를 맺고 이릉대전과 제갈량의 북벌에 참전하여

수많은 전공을 세우다 북벌 중 안타깝게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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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촉한 용장 장포, 안타까운 요절]

촉한의 용장 장비의 장남인 장포가 젊은 나이에 일찍 사망했다. 이로 인해 장비의 작위는 동생 장소가 잇게 되었다.

《삼국지》 기록에 따르면, 촉한의 거기장군 장비의 장남 장포는 아버지 장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포의 요절로 인해 장비가 221년에 범강과 장달에게 죽임을 당한 후, 그의 작위는 동생 장소가 대신 잇게 되었다.

221

[이릉대전 참전, 관흥과 의형제 맺다]

《삼국지연의》에서 장포는 아버지 장비의 복수를 위해 이릉대전에 참전하여 관우의 아들 관흥과 선봉 자리를 두고 다투다 의형제를 맺고 함께 전공을 세웠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장포는 아버지 장비의 복수를 위해 오반과 함께 221년 이릉대전에 참전했다. 이때 관우의 둘째 아들 관흥과 선봉 자리를 두고 다투었으나, 유비의 중재로 화해하고 의형제를 맺었다. 이들은 첫 전투에서 담웅, 이이, 사정 등을 베며 큰 전공을 세웠다.

[아버지의 복수, 범강과 장달 처단]

장포는 동오에서 보낸 아버지 장비 살해범 범강과 장달의 목을 베어 장비의 제사상에 바치며 복수를 완성했다.

이릉대전 참전 중, 장포는 아버지 장비를 살해한 범강과 장달이 동오에서 보내지자, 이들의 목을 베어 아버지의 제사상에 바치며 성공적으로 복수를 마무리했다. 또한 황충이 부상을 입자 관흥과 함께 황충을 호위했으며, 육손의 화공 때에는 관흥, 부동과 함께 유비를 호위하는 등 전투에서 맹활약했다.

228

[제갈량 1차 북벌, 전공 세우다]

제갈량의 1차 북벌에 관흥과 함께 참전하여 배서의 계책을 도와 최량과 양릉을 처단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장포는 제갈량이 북벌을 감행했을 때 관흥과 함께 참전했다. 1차 북벌에서는 제갈량의 첩자 배서가 남안 태수 최량을 유인하자 관흥과 함께 그를 포획했다. 최량이 거짓 항복 후 안정으로 떠나 양릉과 함께 계책을 역이용하려 했으나, 제갈량이 이를 간파하고 관흥과 장포에게 뒤를 쫓게 하여 최량과 양릉을 베게 했다. 장포는 이 과정에서 최량을 처단하며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가정 전투의 패배로 인해 군사를 물리게 된다.

229

[2차 북벌, 진창에서 회군]

제갈량의 2차 북벌에 참여했으나, 진창을 굳건히 지키던 학소와 왕쌍의 방어에 막혀 결국 회군해야 했다.

장포는 제갈량의 2차 북벌에 참전했지만, 진창을 지키던 학소와 왕쌍이 난공불락의 방어를 펼쳐 돌파에 실패했다. 결국 촉한군은 진창을 점령하지 못하고 회군하게 되었다.

231

[북벌 중 낙마 부상, 결국 사망]

3차 북벌 중 곽회와 손례를 추격하다 낙마하여 머리를 크게 다쳤고, 성도에서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사망하였다.

제갈량의 3차 북벌 중, 학소가 병들어 병상에 누워있던 진창을 쉽게 격파하고 계속하여 기산으로 나아갔다. 이때 위의 장수 곽회와 손례가 무도와 음평으로 출전했지만, 이미 제갈량이 이 지역들을 점령한 상태였다. 장포는 후퇴하는 곽회와 손례를 추격하던 중 말이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성도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사망하여 제갈량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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