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 (삼국지)

삼국시대 인물, 촉한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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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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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인물, 촉한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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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은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로, 유비를 시작으로 제갈량과 강유를 보좌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법 집행과 신중한 전략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강유의 무리한 북벌에 반대하며 국력을 보전하려 노력했습니다. 촉한 멸망 직후 반란군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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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유비의 익주 평정 후 관직 시작]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장익은 서좌에 임명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14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 익주목이 되었을 때, 장익은 서좌에 임명되어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19

[효렴 천거 및 주요 관직 역임]

건안 말년에 효렴으로 천거된 뒤 강양현장을 시작으로 부릉현령, 재동태수, 광한 및 촉군태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하며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건안 말년(추정 219년)에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강양현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부릉현령으로 옮겼으며, 재동태수로 승진했다가 여러 번 승진하여 광한과 촉군태수까지 오르며 행정 관료로서의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231

[이민족 반란 진압 활동과 제갈량의 칭찬]

내강도독이 되어 이민족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후임자 마충이 오기 전까지 군량 수송과 물자 축적에 집중하며 공적인 임무를 완수했고, 이 공로로 승상 제갈량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건흥 9년(231년) 내강도독 겸 수남중랑장이 되었을 때, 이민족 괴수 유주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러 갔습니다. 부름을 받아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후임자 마충이 도착하기 전까지 전쟁터에서 식량 수송과 곡물 축적에 게으름이 없었으며, 마충은 장익이 세운 토대에 의지하여 유주를 소멸시켰습니다. 이 공적으로 승상 제갈량은 장익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233

[제갈량 북벌 참여]

제갈량의 북벌 출정 시 전군도독으로 임명되었으며, 부풍 태수를 겸임하며 북벌에 참여했습니다.

제갈량은 무공에서 북벌 출병할 때, 장익을 전군도독으로 삼고 부풍 태수를 겸임하도록 하였습니다. (정확한 연도는 불확실하나 231년 이후, 234년 이전으로 추정)

234

[제갈량 사후 관직 및 작위 수여]

제갈량 사후 전령군에 임명되었고, 이전 유주 토벌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관내후의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234년 제갈량이 죽은 후, 장익은 전령군에 임명되었으며, 유주 토벌의 공로를 인정받아 관내후의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238

[고위 관직 및 작위 승진]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가 되었고, 독건위, 가절, 정서대장군까지 승진하며 도정후에 봉해지는 등 고위직에 올랐습니다.

연희 원년(238년)에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가 되었고, 계속 승진하여 독건위와 가절, 정서대장군까지 올랐으며, 도정후에 봉해지며 촉한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56

[강유의 북벌 반대와 갈등]

위장군 강유와 함께 출진했을 때, 국가의 피로를 들어 무리한 북벌에 반대했으나 묵살되었습니다. 진남대장군으로 승진한 채 출진하여 승리를 거둔 후에도 전쟁 중단을 촉구하며 강유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연희 18년(256년)에 위장군 강유와 함께 성도로 돌아온 장익은 강유가 다시 출병할 것을 제의했을 때, 국가가 작고 백성들이 피곤하다며 병력을 남용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주장하며 유일하게 조정에서 논쟁했습니다. 강유는 듣지 않고 그를 데리고 출진하여 진남대장군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강유가 적도에서 위나라의 왕경을 크게 격파하자, 장익은 '전쟁을 그칠 만하다, 다시 전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아가면 아마 지금 세운 공도 훼손하게 될 것이다'라며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강유는 분노했으나 장익은 '뱀을 그리면서 발을 더하는 격'이라며 주의를 주었습니다. 결국 강유는 적도에서 왕경을 포위했으나, 장익의 말대로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장익은 강유와 마음이 맞지 않았으나, 강유는 항상 그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259

[좌거기장군 승진]

좌거기장군으로 승진하고 기주자사를 겸임하며 다시 한번 고위직에 올랐습니다.

경요 2년(259년)에 좌거기장군으로 승진했으며, 기주자사를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263

[검각에서 종회에게 항복]

강유와 함께 검각에 주둔하던 중, 위나라의 종회에게 항복했습니다.

경요 6년(263년)에 강유와 함께 검각에 주둔하고 있다가 일동 부현에 있던 위나라 장수 종회에게 항복했습니다.

264

[반란군에 의해 사망]

항복 후 종회와 함께 성도로 가던 중,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경요 6년(263년) 항복 후 다음 해 정월(264년 1월), 종회를 따라 성도로 갔다가 난리를 일으킨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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