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삼국지)

후한 정치인, 군벌,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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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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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정치인, 군벌,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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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의 명망 높은 정치인이자 진류태수 장막은 가난한 자를 돕는 의협심과 뛰어난 인품으로 조조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두터운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원소에 대한 불안감과 진궁의 설득으로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여포를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연주 공방전에서 패배한 후 원술에게 의탁하려다 부하에게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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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진류태수 승진 및 동탁 토벌 모의]

장막이 진류태수로 승진하여 동탁 토벌을 모의하고 동생 장초와 계획을 세웠다.

후한 중평 6년(189년), 장막은 진류태수로 승진했으며, 동탁 토벌을 모의하였다. 마침 광릉태수였던 동생 장초도 합류하여 함께 토벌 계획을 상의하였다.

190

[반동탁 연합군 참여 및 해산]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진류 산조현에서 맹세했으며, 조조에게 위자를 붙여 지원했다. 그러나 위자는 전사하고 조조는 패배했으며, 장막 등은 전진을 미루다 연합군이 해산되었다.

초평 원년(190년), 장막은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자 연주자사 유대, 예주자사 공주, 동군태수 교모, 동생 장초 등과 함께 진류군 산조현에서 맹세하였다. 연합군에 참여한 조조가 하남윤 성고현으로 진격하자, 장막은 부하 위자를 지원군으로 보냈다. 위자는 형양현 변수에서 서영과 교전하다 전사했으며 조조는 이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장막을 비롯한 연합군 세력은 전진을 미적거리다 식량이 떨어져 해산하고 말았다.

191

[원소 비판과 조조의 우정, 여포와의 교분]

반동탁 연합군 맹주 원소의 교만함을 비판했고, 원소가 조조에게 자신을 죽이라 명했으나 조조가 이를 거부하며 우정을 지켰다. 이후 원소의 비위를 거슬린 여포와도 교분을 맺었다.

반동탁 연합군의 맹주였던 원소가 교만한 태도를 보이자 장막은 그를 올바른 도리에 따라 비판하였다. 이에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죽이라고 종용했으나, 조조는 장막이 친한 벗이며 천하가 불안정한 시기에 서로 해쳐서는 안 된다며 거부하여 우정을 지켰다. 이 일로 장막은 조조를 더욱 은혜롭게 여겼다. 한편, 원소와 사이가 틀어져 하내태수 장양에게 의탁하려던 여포가 진류를 거쳐가자 장막은 그를 후대하며 깊은 교분을 맺었다. 원소는 장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고, 장막은 조조가 결국 원소를 위해 자신을 공격할까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193

[조조와의 깊은 우정 확인]

조조가 서주 정벌을 떠나며 자신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장막을 의지하라고 할 정도로 깊은 친분을 유지했다. 조조 생환 후 감격의 재회를 했다.

193년, 연주를 지배하던 조조가 서주목 도겸을 정벌하러 가면서 자신의 집안 사람들에게 "자신이 돌아오지 못하면 장막을 의지하라"고 할 정도로 장막에 대한 신뢰와 친분이 깊었다. 조조가 생환하여 장막과 서로 눈물을 흘리며 마주했을 정도로 그 친분은 굳건했다.

194

[조조에 대한 모반 및 여포 영입]

조조가 서주를 정벌하러 간 사이, 진궁 등의 설득으로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여포를 받아들여 연주목으로 추대했다. 이로 인해 견성, 동아, 범 등 일부 현을 제외한 연주의 대부분이 여포에게 호응했다.

흥평 원년(194년), 조조가 다시 도겸을 치러 간 사이, 동생 장초와 조조의 장수 진궁, 종사중랑 허사·왕해 등이 조조에게 모반을 꾀하였다. 진궁은 장막을 설득하여 현재 조조가 동쪽을 치러 가 연주가 비어있고, 여포는 싸움에 능하니 여포와 함께 연주를 장악하고 때를 기다리면 한 시대를 종횡할 것이라 말하였다. 장막도 이를 수긍하여 여포를 맞아들였으며, 여포를 연주목으로 추대하였다. 견성, 동아, 범 등 몇 개의 현을 제외한 연주의 대부분 군현이 여포에게 호응하였다.

[복양 전투 교착]

여포를 연주목으로 추대한 후, 조조가 급히 회군하여 복양에서 100여 일간 교전했으나 가뭄과 황충으로 결판을 내지 못했다.

여포를 연주목으로 추대하고 조조에게 반기를 든 후, 조조는 급히 서주에서 회군하였다. 여포는 동군 복양현을 거점으로 삼았고, 유리한 상황에서 백여 일을 복양 전투에서 조조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가뭄에 황충이 덮쳐 곡식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어느 쪽도 결판을 내지 못했다. 결국 여포는 산양군으로 이동하였다.

195

[조조에게 패배 및 비극적인 최후]

2년간의 전쟁 끝에 조조에게 패배하여 여포와 함께 유비에게 투항했다. 원술에게 원군을 요청하러 가던 중 부하들에게 살해당했고, 진류에 남겨둔 가족들까지 몰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95년, 2년간에 걸친 조조와의 전쟁 끝에 결국 패배하였다. 여포는 도겸 사후 서주를 통치하던 유비에게 투항하였고, 장막도 여포를 따라 유비에게 의탁하였다. 이때 동생 장초는 진류군 옹구현에 남아 가족을 돌보게 했으나, 조조가 이 옹구현마저 공격하였다. 장막은 원술에게 원군을 부탁하러 가던 도중 자신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했으며, 진류에 남아있던 장초와 가족들도 모두 몰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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