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종 (1706년)

조선 문신, 종친, 덕흥대원군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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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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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신, 종친, 덕흥대원군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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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자 종친으로, 덕흥대원군의 8대 사손입니다. 젊은 시절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집안이 위도에 정배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영조의 명으로 신원된 후 돈녕도정을 역임하며 왕실의 제사를 받들었습니다. 아들 이영이 숙종의 서자 연령군의 양손자로 입적되었다 파양되는 특이한 가족사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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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

[이형종 탄생]

조선 후기 문신 이형종이 증 이조판서 이명회와 평산신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증 이판 이명회의 장남으로 1706년(숙종 32) 6월 7일 탄생하였습니다. 본관은 전주, 휘는 형종, 자는 성백이며, 덕흥대원군의 8대 사손입니다.

1722

[신임사화 연루 및 아버지 정배]

이형종의 종증조와 백부가 임인사화에 연루되면서 집안 친족들이 연좌되었고, 아버지 이명회 또한 부안현 위도로 정배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722년(경종 2) 이형종의 종증조 충정공 이홍술과 백부 이명좌가 임인사화에 연루되어 집안 친족들이 연좌되었습니다. 아버지 이명회 또한 연좌되어 부안현 위도에 정배되었으며, 이형종 본인도 집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였습니다.

1725

[가족 신원 및 돈녕도정 제수]

영조의 명으로 신임사화에 연루되었던 이형종의 친족들이 모두 신원되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승계하는 돈녕도정에 제수되었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이형종이 그 뒤를 이어 돈녕도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725년(영조 1) 3월 2일 영조의 명으로 신임사화에 연루되었던 이형종의 친족들이 모두 신원되었습니다. 이형종의 아버지는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승습하여 받들도록 명하여 돈녕도정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망하였고, 이형종이 뒤를 이어 돈녕도정에 제수되어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1734

[영조의 친향 후 가선대부 가자]

영조가 덕흥대원군묘에 친히 제사를 지낸 후, 이형종에게 가선대부 품계를 더해주었습니다.

1734년(영조 10) 영조가 덕흥대원군묘(덕흥궁)에 직접 제사를 지낸 후, 이형종을 가선대부 품계로 가자하였습니다.

1735

[동지중추부사 및 부호군 제수]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고, 이후 부호군을 거쳐 돈녕도정을 역임하며 관직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735년(영조 11) 5월 18일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0일에는 부호군을 거쳐 돈녕도정 직을 수행하였습니다.

1740

[부총관 및 동지돈녕부사 제수]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임명된 후, 같은 해 동지돈녕부사로 제수되어 주요 관직을 맡았습니다.

1740년(영조 16) 1월 5일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7월 14일에는 동지돈녕부사로 제수되었습니다.

1759

[이형종 별세]

54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1759년(영조 35) 윤 6월 10일 향년 5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788

1788.05.22 사후 29년

[아들 덕분에 사후 증직]

아들 이풍이 영귀하게 되자, 사후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추증되었습니다.

1788년(정조 12) 5월 22일 아들 이풍이 높은 관직에 오르면서, 이형종은 사후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증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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